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1982) : 시대를 앞서간 수학자의 지혜

이향기·2022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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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지은이 : 히로나카 헤이스케
  • 제목 : 학문의 즐거움
  • 옮긴이 : 방승양
  • 출판사 : 김영사
  • 초판 발행일 : 1992년 12월 1일
  • 최종쇄 발행일 : 2002년 3월 15일 (개정 2판 5쇄)
  • 출간 연도 : 1992년
  • 원문 출간 연도 : 1982년
  • 페이지 : 246쪽
  • 가격 : 6,900원

작가 소개

  • 히로나카 헤이스케

    벽촌 장사꾼의 열다섯 남매의 일곱 번째 아들. 유년학교 입시에서 보기좋게 물먹고, 한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곡절 많던 소년.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통을 들고, 대학 3학년이 돼서야 수학의 길을 택한 늦깎이 수학자.
    끈기 하나를 유일한 밑천으로, 미국 하버드로 건너가 박사를 따내고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까지 받은 사람. 골치 아픈 수학에서 깨달음을 얻은, 즐겁게 공부하다 인생에도 도통한 평범하고 희한한 수학자. 1931년 일본 야마구치 현 출생. 교토대학교 이학부를 거쳐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음. 브랜다이스 대학, 컬럼비아 대학 교수 재직.
    1970년 복소 다양체의 특이점에 관한 연구로 필드상 수상, 일본 문화 훈장 수상. 하버드 대학과 교토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교토 대학 수리해(數理解) 연구소장 역임. 교토 대학 명예 교수. 하버드 대학 명예 교수. 수리과학진흥회 이사장.
    저서로 '科學の知惠 心の智慧' 등 다수가 있다.

저자
교수엔지니어/분석가
학자실무자
지식 생산자/창조자지식 사용자/응용가
미국 유학생유학 못간 애
1931년생1993년생

꽤 오랫동안 대학생 및 고등학생 권장도서이며, 많은 과학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추천도서로 꼽았던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나와 저자의 상황이 사뭇 달라서인지 나에게는 아주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당 책의 첫 출간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라는 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1931년에 태어나(나보다 62년 미리 태어나심) 미국에 유학을 간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책인지 알 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태도들이 더 이상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 책이 처음 발간된 후 30년 동안 이러한 생각들이 많이 보편화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 책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반가운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 책은 나에게 두 가지 큰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 창조란 무엇인가?
    • 내가 창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던가?
    • 창조는 꼭 해야하는 것인가?
  • 내 주변에도 배울점이 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

창조, 꼭 해야하는 거니?

퇴근 1시간 전 오후 4시, 사무실에 앉아 오늘은 레몬 마들렌을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한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8시 까지 출근하고 8시간 가까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 눈도 뻑뻑하고 머리도 지끈거린다. 천근만근 퇴근한 후에 급하게 마들렌 반죽을 만들고 휴지시킨다. 노트북을 펴고 블로그에 들어가서 죽기 전에 읽어야할 책 리스트를 정리해본다. 그 때 찾아둔 수학자 박형주의 서재에 들어가 끌리는 책들을 책 리스트에 추가해둔다. 더 추가할 책 없나? 유튜브 책 추천 영상도 휙 둘러본다. 아, 왜 나는 맨날 책을 찾기만 하고 읽지는 않는 거야? 읽고 있던 세계사 책을 펼쳐든다. 블로그에 어떤 내용을 정리해야 할까?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뭘까? 여러가지를 생각하며 책을 읽는다.

대체 나는 왜 이러는 걸까? 회사에서 바등거리는 것으로는 나의 용암같은 에너지를 다 써버릴 수 없는 걸까? 나는 이러한 나의 행동에 대한 답을 창조에 대한 욕구에서 찾았다. 나는 무언가 창조하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낀다. 비록 마들렌 레시피를 새로 개발해내는 경지는 아닐지라도, 나는 내 손끝에서 만들어진 상큼한 레몬 마들렌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내가 책을 써내려 갈 수는 없더라도, 남의 글을 읽고 나는 이런 걸 느꼈어요!!하는 작은 소회 정도는 기록해두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소소한 노력들은 결국 창조라는 본능에 가까운 욕구 때문은 아니었을까?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책 학문의 즐거움에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움, 창조, 도전, 자기발견 \cdots. 이 중 가장 먼저 나의 이목을 끌었던 주제는 창조이다. 히로나카가 2장 창조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계속해서 "창조가 꼭 의무인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창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라는 반골의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는 창조라는 주제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도, 나와 직접 관련된 행위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니 결국 창조라는 것은 그리 특별한 것도, 나와 대단히 동떨어진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히로나카 헤이스케와 같이 자신의 일에 소명을 느끼고 그 분야에서 창조를 이뤄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창조에 대한 열망은 본능에 가까우므로..)

소박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창조의 기반이 아닐까? (p.108)

창조 시 주의할 점

지금까지 나는 나의 연구 태도 혹은 생활 태도로서 우선 사실 그대로 파악할 것, 가설을 세울 것, 대상을 분석할 것, 그래도 길이 막혔을 때는 대국을 볼 것, 이상 네 가지를 나 자신에게 타이르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 더 나아가 사고하거나 창조할 때는 단순 명쾌하게 되도록 노력할 것을 중시하고 있다. (p.136)

창조하려면 먼저 배워야한다

창조라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나 배경이 되는 지식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이뤄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조금 지루하고 고되게 느껴지더라도,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언어와 도구가 되는 지식과 기술들을 익히고 연마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기술을 초월하라는 말은 이미 기술을 습득한 사람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이지, 아직 초월할만큼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p.129)

그러나 수학은 어디까지나 철학이 아니다. 수학이 철학적인 측면에서 공헌하더라도 그것을 수학의 업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수학에는 명확하게 기술적인 측면이 있다. 또한 수학만이 독특한 기술이 존재한다. 철학이 없어서는 안되지만, 그 철학이 지상에 돌아와서 수학적인 기술 속에서 구축되지 않으면 수학의 업적이 되지 못한다. 나는 그러한 뜻에서 수학은 기술을 초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p.130)

체념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라!

창조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부터 동기부여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을 이기려는 마음, 시기 질투의 마음은 창조의 정신 에너지를 빼앗아 갈 뿐이다. 그저 모든 욕심과 잘하려는 마음에서 체념하고 문제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창조를 위한 정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길이다. 또한 작은 성공 경험들에 취해 있지 말고, 항상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 소심의 자세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경쟁의식이 이와 같이 좋은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는 비교적 적다. 대부분의 경우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갖고 있는 정신 에너지 중 창조에 쓰이는 부분의 비율이 경쟁의식으로 인해 질투로 변형됨으로써 상당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정신 에너지는 사고 에너지, 창조 에너지 등을 포함한 에너지인데, 그것이 남과의 우열경쟁에 소모된다면 그만큼 창조 에너지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과 경쟁함으로써 자기가 도달하려는 목표의 초점이 흐려지고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p.98)

그런 우수한 사람들을 일일히 질투하는 것은 아무런 동무도 안 된다.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그러한 영재들에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하거나, 그들이 나와는 상대가 안 될 정도의 재능을 보였을 때 나는 혼자 이 노래를 부르면서 체념하곤 했다. 체념한다고 해서 모두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질투심이 안 생긴다. 그리고 남을 질투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기의 정신 에너지가 조금도 소모되는 일이 없고 판단력도 둔해지지 않는다. 결국 그것이 창조로 이어져 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체념하는 기술을 알아두는 것, 그것은 창조하는 데 관련되는 정신 에너지를 제어하고 증폭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p.99-100)

"상대가 안 돼서 포기했어요."하고 포기하고, "난 바보니까요." 하고 바로 앉아 보는 자세는 학문을 떠난 일상생활 속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체념의 기술이나 바로 앉는 지혜는 큰 실수를 범한 충격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p.103)

가설을 통한 연역적 사고

나는 미국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자네들은 지금 어떤 것을 연구하고 있나?" 그러면 그들은 우선 자기가 세운 가설을 설명한다. 그런데 같은 질문을 일본 학생에게 하면 대부분이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대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는 "기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미국 학생들의 사고방식은 먼저 가설을 세워서 그것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연역해 보고, 안 되면 그 가설을 바꾸면 된다는 식이다. 반면에 일본 학생들은 무언가를 먼저 공부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시해지면 방향을 바꾸거나 지금까지의 방법을 개선하는 식의 연구 태도를 가지고 있다. (p.118)

그러나 가설을 세워서 열심히 연구하는 사이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발견이 생긴다. 따라서 나는 잘못된 가설일지라도 가설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뜻에서 젊은 독자 여러분이 앞으로 창조적인 일을 하려고 한다면 가설을 세워서 연역하는 사고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권하고 싶다. (p.118)

단순 명쾌하게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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