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서 개발자가 되기까지

햄햄·2023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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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무원이라는 이력이 별로 특별하다 생각하진 않는다. 바닐라 코딩이라는 (정말 좋은) 부트캠프를 다녔었는데, 부트캠프에서 만난 동기들 또한 대부분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공부하는 분들이었다. 공무원은 그냥 그런 '전 직장'을 쉽고 빠르게 설명할만한 용어일 뿐이었다. 그런데 공무원이었다고 밝힐 때마다, 한번씩 놀라는 분들이 계셨다. 취업 준비를 할 때도 이력서에 공무원이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서류 합격률이 올라갔다. 그래서 내가 왜 공무원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개발자로 전직했는지 (까먹기 전에) 정리해보려 한다.

난 이제 지쳤어요

대학교를 졸업할 때 쯔음에는 모든 경쟁에 탈진해 있는 상태였다. 입시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실패를 계속해서 겪었고, 심각한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치열하게 취업 경쟁을 겪은 후 직장에서 또 고군분투하면서 일하고 싶진 않았다. 적당히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서 '워라밸'을 누리고 모든 경쟁에서 해방되어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이런 나에게 최고의 선택지는 공무원이었다. 5시 전에 칼퇴한다는 학교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면 워라밸을 넘치게 챙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워라밸이라는 신기루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도 많지만 나는 정말 워라밸이 좋은 공무원이었다. 8시 40분에 출근해 4시 40분에 칼퇴하고 퇴근 후엔 일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연차가 쌓이면 연봉과 직급은 저절로 올라갔다. 직장은 생계유지 수단일 뿐이고 나의 '진짜 삶'은 칼퇴 후 누리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처음엔 정말 좋았다. 4시 40분에 퇴근한다하면 모두가 부러워하였다. 그런데 점점 삶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졌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심각하게 지루했다. 매일 똑같은, 단순 반복 작업 몇번만 하면 하루의 업무가 다 끝났다. 어느 날부터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시간이 마치 내가 '죽어있는' 시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매일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서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아무리 빨라도 의미가 없었다. 퇴근 후 삶도 있지만, 일하고 있는 시간도 삶이었기 때문이다. 둘 중 진짜 삶을 고르자면 해가 쨍한 시간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일하는 삶'이 진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와 라이프가 분리될 수 있다는 믿음은 허상이었다. 워크가 곧 라이프고 라이프가 곧 워크였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단지 재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내가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니 내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있는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도 없었다. 자율주행이니 AI니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데, 왜 나는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매일 똑같은 일을 해야하나 하는 현타가 왔다.

평생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기에 '고위 공무원'이 되는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국회의원은 못돼도 지원청장은 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운좋게 만난 지원청장님에게서 과거 일화를 들었다. 힘든 근무지에 가서 매일 자정까지 야근을 하며 성과를 내고...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일단 성장 가능성이 있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부업이라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퇴근 후 여러가지를 시도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공문을 접수하다가 코딩 교육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띄었다. '라떼는 이런 교육 하나도 없었는데'라는 생각과 영어가 난무하는 세상에 영어를 몰라 어려움을 겪는 노인에 대한 뉴스가 동시에 떠올랐다. 요즘 초등학생은 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받는데,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세상에서 노인이 된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영어를 모르는 할머니'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날, 코딩 독학하는 법을 이리 저리 찾아보다 생활 코딩에 접속하게 되었다.

찾았다 내 적성

그 후 나는 개발자라는 내 이상형과 같은 직업을 찾게 되었다. 상방이 뚫려있어 노력하는 만큼 성장할 수 있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재밌기까지 했다. 학교에서 지루하게 일을 하다가도 퇴근 후 새로운 것을 배울 생각을 하면 도파민이 돌았다. 개발자로 전직해야 겠다는 결심이 서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금 떠올려도 내 인생에 그렇게까지 강한 확신을 또 가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개발자로 전직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이 들었다. 아, 이런 것이 적성이구나. 환상처럼만 느껴지던 적성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돌고돌아 나는 결국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개발자가 되었다. 새로운 정보들이 물밀듯 쏟아지고 공부해야할 것은 끝이 없다. 사실 개발을 처음 접했을 때의 재미도 지금은 없다. 꿈에 그리던 개발자가 된 후 뒤쳐졌단 생각에 불안하기도, 학습량에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행복하다.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30대가 되어서야 개발자가 된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공무원이 돼보지 않았으면 장점보다 단점을 더 크게 느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공부할거리를 찾아 고3 마냥 괴로워하며 살아야 행복한 나 자신이 변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행복하면 장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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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own4u 개발자

28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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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5일

안녕하세요. 저도 공무원인데요, 개발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셨던 구체적인 과정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배우셨던 필수 언어나 교재, 영상, 블로그, 학습플랫폼 등등에 대한 조언이요. 메일주소는 jke0829@네이버 입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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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5일

멋지신거 같아요!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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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6일

개발자들이 특히, 치열하게 살고, 자기효능감을 느끼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네요. 저도 그래서 이 업에 만족하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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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6일

개발자들 중에 유독 게으름을 경계하고 부지런히 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서 늘 노력하고 있고, 지금의 삶이 좋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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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6일

저 역시 개발자가 되기 위해 면직했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또 있다니 반갑네요 ㅎㅎ 글 읽는 동안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제가 왜 그만두었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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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7일

초등교사입니다. 저도 개발자로 이직 생각중이네요...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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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7일

가치관이 저와 비슷하신 것 같아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워가요 ㅎㅎ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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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8일

안녕하세요 글 잘읽었습니다!
부트캠프를 특별히 거쳐야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도 공공기관에 재직중인데 공기업이나 공무원같은경우에 보통 독학으로 공부하고 취업하는데 개발자는 독학으로 공부끝내고 부트캠프가는 경우가 많은거 같아서요 독학과 부트캠프가 어떤점이 다른지도 긍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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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9일

진짜 멋있네요
멋진 삶을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군생활이 보람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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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9일

본인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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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0일

반갑습니다 👏 함께 파이팅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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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0일

안녕하세요. 열정이 귀감이 되네요.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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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1일

동기부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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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2일

공무원에서 개발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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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도 교사인데 코딩에 관심이 많아 파이썬으로 입문하고 프론트 앤드를 배우는 중인데 글을 읽고 많이 느끼고 가요. 어떻게 이런 용기가 나셨는지 대단하시네요...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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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2일

저도 지방직 의원면직하고 부트캠프 1달전에 끝난상태인데, 동병상련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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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8일

저도 아직까지 현직 공무원인데 저도 it직업군으로 취업하고 싶어서 이번년도에 퇴사예정인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별도로 준비하셨던 과정을 데이터로 받고싶은데 혹시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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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9일

저도 서울시 공무원 5년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멋사에서 부트캠프 백엔드 교육 받고 있네요.
소위 말하는 한국의 정석 루트에서 탈선한 인생이 되었는데 제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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