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기억하고 싶은 날의 이야기

Hi! I'm JENNIE·2022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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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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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에 적은 글이지만 꼭 기억해두고 싶은 날의 이야기라 기록해두려 한다.
꽤 상세히 적을 예정이라 글이 길 수도 있다.


이번주에는 아주 설레는 일이 있었다.
내가 왜 그동안 즐거워하는 일을 하면서도 답답함을 느꼈는지를 단번에 깨닫게 한 그런 일이었다.

금요일 저녁, 신나게 불금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강남역 한복판에서 몇몇의 사람들을 만났다. 사실 몇 주 전부터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아는 분의 제안을 받아 시작되었는데 어떠한 플랫폼을 만드는 일에 프론트엔드 개발을 맡고 있다. 사실 개발자로 참여하고 있다기에도 부끄러운 것이, 나는 아직 자바스크립트를 배우기 시작한 지도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개발 초보 신생아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를 좋게봐 준 사람들 덕분에 실제로 배포될 서비스에 기획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처음 시작할 때는 이걸로 뭘 해보자거나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보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색다른 이력을 적어보고자 하는 마음 뿐이었다.

실제로 제안해 준 대표님 D도(우릴 고용했으니 대표님이라고 하기로 했다)이력서 넣고 면접도 보러다니면서 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 플랫폼은 잘 될거고 곧 투자를 받으면 스타트업 회사를 세워 자신이 채용할 것이며 월급도 당연히 줄 것이라고 했다. 그 전까지는 붙잡아 둘 명목이 없으니 다른 회사에 취직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는 다른데 가지 않고 자신과 이 일을 계속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 나는 사실 D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차피 취업준비를 해야했던 나는 공유오피스 이용료와 식비를 지원해준다는 말에 덥석 승낙했다. 그것만 해도 어디냐!

그리고 같이 제안 받은 W가 있는데, 나와 부트캠프 동기이며 그 역시도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한 초보 개발자이다. 하지만 부트캠프에서는 실력이 꽤 좋은 편이어서 그가 일찍이 D에게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나를 D에게 추천한 것도 바로 W다. 부트캠프 기간 동안 W와 나는 같이 프로젝트를 했거나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어서, 처음 W의 전화를 받고 꽤 놀랐었다. 왜 나를?

W는 나의 질문에 믿을만한 사람이 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지만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신이 없는데, 내가 같이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믿음직스럽고 잘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 때문일까? 나는 그 말에 꽤 기뻤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제안하자 D도 바로 ok했다는 것에서 더 기분이 좋았다. 나는 결국 신이 나서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렇게 신나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D의 아이디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W와 내가 기획, 디자인부터 시작했다. 나름의 기획서를 작성하고, 디자인에 ㄷ자도 모르면서 Figma도 처음 써보며 그림을 그렸다. 당연히 생각보다 매우 오래 걸렸으며 실제로 코드를 치기 시작한 건 신난지 2주가 지난 후였다. 이미 그때 우리는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이게 뭐라도 되긴 되는건가. 우리끼리 만든 이게 실제 사용자가 사용한다고? 이러다 접을 것 같은데. 그냥 빨리 취업 준비나 해야겠다. 속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처져있던 3주 차. 우리의 텐션만큼 일의 진행 속도도 매우 처져있었다. 그런데 D와 W, 나 셋만 있던 슬랙에 4명의 사람이 갑자기 연달아 들어왔다. 누구지?

알고보니 연차가 있는 개발자 분들과 마케팅, 운영 등을 담당할 사람들이었다. D가 어디선가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중 가장 놀라운 사람은 CTO로 온 개발자 K였다. K는 합류와 동시에 우리가 둘이서 끙끙대던 일을 혼자, 단 3일 만에 끝냈다. 물론 2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시간이었...다고 해두자

K의 코드는 빠르면서 간결했고 나에겐 굉장한 충격이었다. 이래서 주니어 10명보다 경력자 1명이 나은거구나.... 하며 잠시 현타도 왔으나 난 0년 차인걸? 어쩔겨? 하는 마음으로 K의 코드를 뜯어보았다. React를 이렇게 쓰는 거구나! 이게 컴포넌트의 재활용이구나. 폴더 구조를 이렇게도 하는구나. 내 코드는 이렇게 리팩토링할 수 있구나! 나는 가만히 앉아서 공짜 교본을 얻은 것이었다. K가 만들어 둔 컴포넌트를 활용하니 우리도 속도를 올려 페이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얼굴도 모르는 K를 살짝 존경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뭐 하는 사람인지, 원래 7년 차 개발자는 다 저렇게 될 수 있는건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D가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그게 바로 이번 주 금요일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처음에 말하고자 했던 금요일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금요일에 만난 사람은 나까지 총 7명이었다.

모두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프로들이었고, D는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소개도 받아가며 이 사람들을 모아왔다. 모두 이 플랫폼이 재밌을 것 같아서 참여하기로 했다고 했다. 일만 하기도 바쁠 텐데 개인적으로 또 시간을 내어 자신이 관심있는 일에 참여하다니. 게다가 그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특히 K는 기획이 너무 괜찮고 3일 했는데도 너무 재밌다며 개발자로서 꼭 잘 되게 만들거라고 했다. 난 분명 콜라만 마셨는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집돌이인 D로 인해 회식은 늘 2시간 컷이다. 너무 좋은 대표님이지만 이 날만은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용기를 내 K와 개발자 분들께 잠시 프로젝트와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는지 물었다. 모두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고, 우린 밤 10시가 넘도록 카페에서 맥북 하나를 열어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K는 주니어인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많아 보였고, 실제로 그 잠깐동안 신세계를 여럿 알려주었다. 우리도 나름 초기세팅을 한 입장에서 기획과 디자인, 사용한 기술에 관해 설명했다. K는 Figma만 보고 만들면서 의아한 부분이 있었는데 우리의 디테일한 기획의도를 듣고 완벽히 이해했다며 '그럼 더 잘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 곧 부자 되겠는데요?' 라며 우릴 더 신나게 했다(ㅋㅋ) 2주간의 고통이 뿌듯함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도파민, 아드레날린.. 뭐 그런 것들이 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집에 가면서도 들뜬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W와 1시간 동안 우리 진짜 열심히 해보자며 호들갑을 떨고, 새로 온 팀원들에게 잘 부탁 드린다는 슬랙 DM을 보내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얘네 왜 이러나 싶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정말 그때는 진심이었다(🫣). 정말 잘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좋게 봐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주고 싶어졌다. 이거 마치 소개팅 날 맘에 든다고 영어유치원 예약하는 거랑 같은 것 아니냐며 웃었지만,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나는 많은 걸 얻을 것이다. 또, 아직 아무 것도 없이 단 7명의 사람이 모였을 뿐인데도 열정이 가득한 공간에 있으니 나는 웃기게도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내가 일을 하면서도 계속 묘하게 결핍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거였구나!를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월급도 나름 괜찮고 남들도 꽤 멋지게 알아주는 일 보다도, 내가 즐거울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일, 열정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것 같다.

인서울 4년제 공대를 졸업하고는 승무원을 한다고 할 때도, 5년의 경력을 뒤로한 채 30살이 넘어 다시 개발을 배운다고 할 때도 주변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공부한 게 아깝다.', '경력이 아깝다.', '계속 하던 거 하면 좋을 텐데 굳이?' 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나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행복했다. 비행기에서의 생활은 즐거웠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까운 것도 없었고 후회 되는 것도 없고, 그 시간들은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이제는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뿐이다. 5년 뒤, 10년 뒤에는 또 다른 것이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때도 나는 그때의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앞으로의 내가 계속 행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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