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에 학교 졸업 준비와 취준을 병행하면서 졸업은 못하면 안되니 취준은 사실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다. 졸업에 빡집중해서 무사히 학위는 받았다. 근데 지난 10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름의 보호와 혜택을 누려오던 나는 더 이상의 박사 생각은 당장에 없었기에 진짜 사회로 던져진 거였다. 매번 찾아오는 과제와 시험에 지친다고 투덜대던 것도 이젠 없었다. 누구 하나 돈 벌라고 등 떠밀던 사람도 없었고, 스스로 내 갈 길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실은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사실 '될 대로 되라지 뭐' 라는 안일한 생각이 날 지배하고 있었다.
웃자고 한 이야기고, 될 대로 되라지 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서류도 정말 열심히 썼다. 근데 서류를 쓰면서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나열해보니, 내가 원하는 직무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내가 선택한 랩실이고, 교수님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근데 난 AI를 하려고 왔는데.. 연구실에서 쓴 논문을 제외하고 보았을 때 프로젝트들은 그것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도 서류를 안 내고 후회하기 보다는 서류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는 게 후회 없을 것 같아 내가 일하고 싶은 곳에 무작정 서류를 들이밀었다. 역시나 탈락. 나 같아도 안 받아준다. AI 하고 싶다고 하는 놈이 프로젝트나 공모전 경험은 죄다 UX 관련이니 안 받아주는 것이 당연하다.
서류를 지원하고 하나둘씩 탈락 연락을 받고 사람들도 취준을 핑계로 잘 안 만나고 생활 패턴은 망가져갔다. 매일 3시에 자서 10시에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끼니는 매번 불규칙했다. 운동한답시고 하루에 한 시간 걸었지만 이마저도 대충대충 걸었다. 덕분에 살은 찌고 자존감은 내려갔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잘못은 사회에서 찾기 시작했다.
"나는 잘못 없어. 너희들이 안 뽑는 거야. 너희들이 많이 뽑지 않아서 내가 취업을 못한 거야."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투덜대도 그 누구 하나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스스로 갇혀갈 뿐이었다. 어느 순간 현타가 왔다. 그걸 깨달은 게 아마 4월 초쯤이었던 것 같다. 일어나서 씻고 거울을 봤을 때, 관리하지 않아 푸석한 피부, 먹고 앉아만 있어서 살은 쪄있는 나를 보고 충격을 먹었다. 항상 주변에서 뭐 이리 걱정없이 사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긍정적이었던 나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표현했고, 어느 순간 주변에서 너 변했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가 되었는가? No
적어도 남들 다 하는 것을 나도 하고 있는가? No
회사들의 기준이 높은가? 내가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가? 내 능력이 부족하다
여기서 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능력은 부족하면서 열심히 구걸중이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정신을 차리고 늘 앉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취업 포털들을 크롬에 띄웠다. 그러고는 천천히 분석했다. 내가 부족한게 무엇인지, 채워 나가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실무 경험 부족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이를 채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나갔다.
빨간 차 이론이라는게 있다. 최근에 알게 된 정말 좋아하는 내용인데,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는 길에서 빨간색 차 몇 대 봤어?" 라는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그리 주의깊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대강의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빨간 차를 기회로 치환해보자. 내가 기회를 탐색함에 있어서 관심 있게 바라본다면, 모든 기회를 잡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매력적인 기회 몇몇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데탑 전원을 키고 무작정 취업 포털을 뒤적거렸다. "취업" 키워드를 넣고 구글링을 어디까지 했을 정도인지 까먹을 정도로 종일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확실히 관심을 가지고 정보들을 찾아보니 머릿속에 정리가 되기 시작했고 자아 성찰이 되었다. 스스로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뭐라도 당장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것은 네이버 커넥트재단의 "Boost Course: AI 엔지니어 기초 다지기" 였다. 2개월간의 온라인 과정이었다. 비록 2년간의 석사 과정 동안 개인 연구로 AI를 연구했고, 기초 지식은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전공과목으로서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에 AI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교보문고에 무작정 가서 손에 잡히는 책으로 공부했다. 열심히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완벽한 지식인지 스스로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초 과정임에도 신청해서 최근까지도 듣고 있다. 이제 마지막 한 주를 남겨 놓고 있는데, 생각보다 개념 정리를 차곡차곡할 수 있었다.
근데 2개월 동안의 온라인 과정이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이고, 경험을 해서 남겨 놓기에는 커리큘럼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선 신청해놓고 더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SK네트웍스 AI 부트캠프 광고 배너를 봤다(역시 구글 AD 알고리즘은 신이다). 사실 부트캠프에도 관심이 많았다. 머신러닝 부트캠프, 데이터 분석 부트캠프 등등 요즘 수많은 부트캠프들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훌륭한 부트캠프들도 많지만 사실 철지난 유행이라고 치부했었다. SSAFY 같이 대기업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의미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SK네트웍스에서 진행하는 부트캠프를 보게 되었다. 교육은 9 to 6으로 진행되고, 가장 핫한 LLM을 활용하여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약간은 프론트엔드 느낌의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경기 남부에 사는 나로서는 1호선을 쭉 타고 갈 수 있는 독산역 근처였다. 그렇게 신청을 했고, 최종 합격을 하게 되어 6개월 동안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정말 눈 깜박할 새 지나갔다. 매일 매우 규칙적인 패턴으로 등원을 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하원을 했다. 매일 공부한 내용을 정리했고(마음 아프게도 네이버 부스트 코스와 병행 중이라 몇 번 빼먹었다...) 집 가면 안 하는걸 알기에 매일 학원에서 9시 반까지 남아서 불 끄고 문 닫고 나왔다. GitHub도 새롭게 만들었고 난생처음 내 손으로 웹 어플리케이션도 만들어봤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동안 스스로 조금씩 바뀌었다. 남 탓만 하던 내가 자기반성을 하였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많은 동료를 만나다 보니 도로 긍정적인 내가 되었다. 띵띵 부었던 몸도(사실 살찐 거 맞는 듯?) 다시 빠졌다는 소리를 요즘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여전히 새벽 6시에 일어나야만 하는 경기도 거주자로서는 쉽지 않은 일정이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좀 보수적이라 틀에 박힌 일정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덕분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매일 아침에 등원하면 인사해주시는 매니저님, 동료 친구들, 강사님. 모두에게 너무 너무 감사하다. 자칫 잘못했으면 평생 남 탓이나 하면서 방구석에 처박혀있었을 내가 나올 수 있게 해준 SK 네트웍스에게 감사하다. 아직 5달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지만, 전혀 외롭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다.
글을 다 쓰고 처음부터 편집해왔는데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중간 중간에 이미지랑 콜아웃도 넣었는데 마지막 두 섹션에서는 이 조차 넣지 않아서 읽기만 하자니 좀 힘들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계신다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ㅎㅎ 이상 5월 회고는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