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1946년 충남 대전 출생,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 후 서독 뮌스터대학 디자인학부에서 디자이너 학위 취득 및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였다.
책을 다 읽고 이원복 교수님에 대한 소개를 보니 책에서 쉽게 다루는 서양 철학에 대한 얘기가 괜히 만들어진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저자에 대한 소개란..
1. 철학의 뿌리와 의미를 찾아서 -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 철학은 '필로소피아(
philosophia
)라는 그리스 말을 옮긴 것이다.
- 필로소피아는 '지혜를 사랑한다' 라는 의미로
philo
: 사랑하다, 좋아하다. sophia
: 지혜, 지식
Ex. Francophilia : 프랑스를 좋아하는 사람
Philharmonic :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Philomath : 학문(특히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
얼핏 이전까지는 philo
가 지혜나 지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책을 통해 내 지식을 바로 잡아준 기회가 되었다.
-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란 인간의 지혜로서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창조하여 조정하는 전지전능한 신의 지혜가 아닌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지식, 깨달은 지혜
를 가리킨다.
- 동양에서 '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세기 말로 일본의 학자 니시아마네가 '필로소피아'를 '철학'으로 번역한 것이다.
- 니시아마네가 사용한 용어는
'희철학'
'철'의 의미는 현명함, 지혜로움이고, '희'는 희망, 바람이란 뜻이니 '희철학'이란 현명해지기를 바라는 학문, 지혜로워지기를 바라는 학문이라는 뜻이 된다.
과학, 학술, 기술 등의 용어도 모두 니시아마네가 만들었다. 19세기 메이지 유신을 통해 동양에서 가장 먼저 개화한 나라인 일본에서 자기 식으로 명칭을 붙이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에서도 쓰이는 용어로 자리매김하였다.
철학이 다루는 것?
2. 서양 철학의 기본틀 : 고대 그리스 철학
아테네는 왜 철학의 중심이 되었는가?
- 그리스 인들은 기원전 800년경부터 지중해 전역에 수많은 도시를 세우며 식민지를 개척하여 기원전 6세기경부터는 전 지중해 연안에 빛나는 고대 문명을 꽃피운다.
- 정치 권력은 도리아 왕의 독재로부터 점차 귀족에계로, 그리고 다시 참주(=왕과 같으나 권력을 물려주지 않고 당대에 한해 지배하는 독재자)에게로 넘어갔고, 드디어 시민(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시민은 현대의 시민이 아닌, 선별적인 특권층
)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주의 제도로 넘어가게 된다.
- 이는 지중해를 근거로 하는 무역과 상업이 크게 발달하여 시민들의 부와 실력이 증강하면서 정치에 대한 영향력도 커졌기 때문인데,
- 그리스 인들이 세운 여러 도시 국가들 가운데 가장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곳이 아테네였다.
- 아테네는 안정된 경제와 민주 정치를 발판으로 황금기를 맞이, 독특한
민주주의(DEMOCRACY)
라는 정치 제도를 채택하였다.
- 국가의 중대사는 약 500명의 시민들로 구성된 국가 평의회에서 논의했는데, 모든 시민은 단지 두 번에 한해 국가 평의회 의원이 될 수 있었고, 반대로 모든 시민은 평생에 한 번은 평의회 의원이 되어 봉사해야 할 의무(
환경이 중요한 이유
)를 지녔다.
- 이처럼 아테네 시민들은 누구나 정치 이념과 도덕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다. 즉,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 문화적인 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조리 있게 밝히고 상대방을 설득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
인 철학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꽃핀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소피스트의 등장
- 아테네 시민들은 정치에 직접 참여하게 되고, 실질적인 국가의 주인으로서 풍요로운 경제,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이에 자연히 더욱 높은 교양과 품위를 지니고 싶어했으며, 이러한 욕구를 채워 주는 전문 지식인들이 쏟아져 나와 활동하였으니 이들을
소피스트
라고 한다.
- 그들은 이 도시, 저 도시로 떠돌아 다니며, 입장료를 받고 강의하거나, 돈을 받고 개인 지도에 나서는가 하면, 아예 학원을 열어 말재주를 가르치기도 했다. 초기의 순수한 마음은 차츰 돈과 지식, 말재주를 바꾸는 지식 상인처럼 변질되고(
요즘말로 사짜라고 해야하나..
), 강의 내용도 본질이나 진리가 아닌 권력의 속성과 설득의 기술로 변해 갔다.
- 트라시마쿠스에 이르면 소피스트들의 궤변은 절정에 이른다.
- "정의는 강자를 위해 있다", "힘이 정의를 만든다!" "권력에 대한 투쟁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덕에 관한 모든 논쟁은 공허하다" 등 정의는 바보들이나 내세우는 것이며 인간은 오직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만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 소피스트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이기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 땅에 떨어진 도덕을 되살리기 위해 소크라테스가 나서기까지 궤변과 말장난, 허무주의에 가득 찬 소피스트들이 아테네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였다.
- 소피스트들에 대한 대단히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소피스트들이 남겨 놓은 중요한 철학사적 의미는 분명히 존재한다.
- 소피스트들의 사상은 인간들이 자의식을 갖도록 하는 데 확고한 영향을 끼쳤다.
- 인간의 왜 사는가?, 존재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인간에 대한 철학이 없었다. 프로타고라스가 주장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관점이 지금까지
우주와 자연으로 향해 있던 인간의 시선을 인간 자신에게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소크라테스
- 소피스트들의 전성기인 시대에서 자란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받는데, 그 내용은 그가 가장 '현명한 자'라는 것이다.
- 신전에 입구에 적혀진 글귀인 그노티 사우론(
너 자신을 알라
), 소크라테스는 인간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고 그 깨달음 위에 참다운 지식을 획득할 것과 그 지식을 행동으로 실천함을 추구 하였다.
- 극도의 개인주의와 향락주의가 보편화되고 이를 합리화하고 부추기기까지 했던 소피스트들이 아테네 정신을 장악하던 시대에, 소크라테스의 등장은 국가와 개인 사이에 새로운 도덕과 윤리 관계를 세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소크라테스가 요구한 것은 참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선한 행동
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한 행동이고 무엇이 참된 지식인가?
- 과거의 참된 지식은 신의 지식이며, 선한 행동이란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었다.
-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요구한 참된 지식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은 무지하다는 전제 위에 사색과 참구, 그리고 대화로 얻어 낸 깨달음에서 비롯된 지식이며, 그 참된 지식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 바로 선한 행동이다.
- 과거에는 모든 선과 악을 신이 결정해 주었지만, 이제는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개인 스스로가 결정을 내려야 하므로 소크라테스에 이르러 도덕은 내면화하는 사고, 이른바 윤리적 사고의 출발이라는 역사적인 국면에 접어 들었다.
플라톤
플라톤의 철학은 흔히 '동굴의 비유'로 소개된다. 이는 그의 가장 중요한 저술인 '국가론'에서 나온다. 이 동굴에는 평생 동안 벽만을 바라보게 묶인 죄수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옆 사람조차 볼 수 없고 오로지 동굴의 벽에 비쳐진 그림자만을 볼 수 있다. 뒤는 돌아볼 수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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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자들은 죄수들의 등 뒤에 있는 불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 그림자들을 실체라고 믿는 죄수들은 그림자 외의 세계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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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림자의 실체는 전혀 엉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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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죄수가 묶인 기둥에서 풀려나 그림자를 만드는 불꽃을 보게 된다면 처음에는 차라리 가짜의 모습을 보는 것이 편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고통스러운 스스로의 노력으로 바깥 세상으로 나와 해를 바라보게 된다면 자신의 허위와 착각에 빠진 생각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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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빛의 세계'로 비유하는 것이 바로 이데아이며 우리가 느끼며 사는 현실 세계란 그림자처럼, 실체가 아닌 다만 상으로 묘사된 허구의 세계이며, 그 상을 만드는 진실된 존재가 바로 이데아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인식론
- 한 예로 '아름다운 여인'을 들어 본다면, 의식의 가장 낮은 상태는 '추측'의 상태로 추측의 대상은 상이며, 그림, 영화, 조각 같은 실체가 아닌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 그럼에도 '추측' 상태의 사람은 영상을 실체로 오해한다.
- 다음 수준은 '신념'으로, 그 대상은 실물을 갖는다.
- 그러나 신념도 역시 감각 지각의 불확실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추측과 신념의 상태는 '의견' 차원을 넘지 못한다.
-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알고 있어야 한다. 즉, 아름다움의 개념이 있어야 한다.
- 플라톤은 이것을 오성이라고 불렀고, 개념을 '아는 것'이므로 지식에 속한다.
- 아름다움의 개념은 모든 대상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어야 하며, 모든 개념 위에 있는 최고의 개념을 플라톤은 형상, 즉 이데아라고 불렀다.
- 플라톤은 이데아 중의 이데아, 최고의 이데아는 바로 선이라 하였고,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선을 행하라는 주장에 대하여
- 선이 무엇인가를 논리적으로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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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배제한 정신적인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사랑이라는 이데아를 일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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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인식의 대상을 가시계와 가지계로 나누었고, 모든 대상은 실체와 이데아를 지닌다는 이원론을 주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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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은 형상과 질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형상과 질료는 구분되어야 하지만, 이 두가지는 생각으로만 구별할 수 있을 뿐 실제로는 구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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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사물의 형상을 그 물체의 정체성이라 했고, 질료를 그 사물의 개체성이라고 불렀다. 모든 풀이나 망치는 동일한 형상, 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똑같은 질료를 지닌 두 가지 사물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질료는 '오직 하나뿐'인 개별화의 원리이며 이렇게 질료와 형상을 지닌 개별적인 사물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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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비물질적인 가지부, 물질적인 가시부로 2원론을 내세웠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개체가 형상과 질료를 지니 실체라고 주장함으로써 다원론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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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예술 철학에 대해 이데아의 실패한 복사품에 불과한 실체를 베끼고 흉내내는 데 지나지 않는 모방의 모방이라 부정적이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언제나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어 그 고통과 슬픔을 모방하는 예술가들은 관객들을 잠시 그런 감정에서 해방시켜 주고 관객의 영혼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 효과
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논리학의 창시
-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의 하나가 바로 논리학의 창시였다. 논리학(Logic)이라는 말은 뒷날 스토아 학파가 붙인 말로서,
- '생각(사유)'이라는 보이지도 않고 애매모호한 것을 언어와 기호로 분석하는 학문적인 증명 방법이다.
- 플라톤의 철학은 위대하지만 그의 지식과 주장은 증명할 수 었다.
-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철학을 '학문적으로' 기호와 문자로 증명해 냈던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 헬레니즘 시대란 아테네 시대처럼 그리스 문명이 도시 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으로 비롯된, 그리스 문명이 주도하는 세계화 시대를 뜻한다.
- 로마 제국은 거대한 세계 제국을 이룩했지만 그 문명의 뿌리를 그리스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로마 문명도 헬레니즘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헬레니즘의 특징은 더 이상 단일 민족 문화에 머무르지 않고 거대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이질적이며 다양한 계층과 문화가 뒤섞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 따라서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은 더 이상 아테네 시대처럼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되었다.
스토아 학파
- 스토아 학파는 키프로스 출신 제넌이 창설한 학파이다. 그리스 건축은 큰 건물인 경우 기둥이 둘러싸고 있어서 기둥과 벽 사이에 복도가 생기는 데 이것을 주랑이(=기둥이 늘어선 낭하)라고 하며 그리스 말로는
스토아(stoa)
이다.
- 스토아 학파란 말도 여기서 비롯된다. 제논이 주로 이 주랑(스토아)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Red eye, Cold pizza, No sleep" 이 실리콘밸리 초기 창업자들의 일상을 표현하는 말인 것 처럼, 현재 굴지의 IT 기업들은 모두 창고에서 시작했다. 제넌이 창시한 학파도 주랑에서 모여 키워나간 것이 예나 지금이나 큰 일의 시작은 밑바닥에서부터 아득바득 올라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 주랑이 있는 건물은 신전, 관청 등 주로 고귀한 신분이나 시민 계급이 이용할 수 있는 장소이다. 세계 제국이 된 뒤, 지중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이방인, 이민족들, 그리고 낮은 계급 가문의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건물 안이 아닌 주랑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이는 스토아 철학이 고귀한 신분의 귀족이나 도시 국가 시민의 철학에서 벗어난 지중해 연안 전체에 걸친 세계 국가의 '대중 철학'이었고 그런 만큼 귀족적인 전통 철학과의 대립이 격렬했음을 의미한다.
3. 신학과 철학의 조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아우구스티누스
- 르네상스 시대의 기독교 철학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지성'으로 신을 해석하려는
주지파
와 합리성을 떠나 개인적인 신앙을 더욱 중시한 주신파
가 대결하였다.
- 이 논쟁을 조정하고 절충함으로써 초기 기독교 교리를 확립한 사람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였다.
- 그는 신을 지성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신은 영구 진리를 창조하는 영원한 지성을 지닌 존재로, 인간의 신앙과 의지에 대해서 그는 아담은 스스로의 의지로 금단의 과실을 먹었고 이로써 인간은 원죄를 지은 것이다. 인간이 이 원죄로부터 사함을 받는 유일한 길을 예수를 믿는 신앙뿐이다 라고 해석했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에서 신이 인간을 성자와 죄인으로 나누었다고 주장했다.
- 그리고 인간의 영원한 벌은 아담의 처벌로 시작되었으며, 원죄라는 무거운 짐이 나약한 인간을 내리누르고 있다고 하였다.
- 이 영원한 벌에서 구제받기 위하여 인류는 악의 유혹에 저항해야 하고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한 원죄 논리는 기독교 국가에서 종교가 저지르는 끔직하고 잔인한 행위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4. 데카르트에서 칸트까지 : 계몽주의 철학
계몽주의 시대
- 모든 것에서 신을 기본으로 한 중세의 질서를 깨뜨린 것은 갈릴레이를 비롯한 과학자들이었다.
- 그들은 엄격하게 자연 과학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토론과 논쟁 대신에 실험을 통해 이론을 증명해 나갔다.
- 그들이 이룩한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이성을 깨우는 밝은 빛이 되어 드디어 계몽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 계몽이란 무지 몽매한 시민들을 계발하여 각자가 스스로의 판단 아래 능력을 발휘하도록 이끄는 것을 뜻한다.
- 이는 곧 17세기부터 서서히 시민 계급이 실력 있는 계층으로 등장하면서 국가 권력과 개인의 자유, 권인 관계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좀더 새롭고 바람직한 사회 건설을 모색하는
'사회계약론'
으로 나타난다.
-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나'는 자연의 일부 였고, 중세 철학에서 '나'는 신의 창조물임과 동시에 신을 섬기기 위한 도구였지만, 르네상스기의 철학자들은 '나'를 찾아 머나먼 여행을 한 끝에 과학의 힘을 빌려 신으로부터 벗어났다.
- 그리고 계몽주의 시대에 이으러 '나'는 무대의 주인으로 등장하며 신을 조연으로 밀어 내는 데 성공했다.
데카르트
- 데카르트는 합리론의 창시자이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절대로 확실한 것'을 찾기 위해 사색을 시작하였다.
- 그가 사용한 방법은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철저히 회의하고 의심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방법적 회의'라 하였다.
- 이런 식으로 의심하게 되어 이 세상에서 절대로 확실하다고 믿을 것이 없다면, 오직 하나 남은 것은 ...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 의심하고 앉아 있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절대로 확실하다
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 왜냐하면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의심할 것도 회의할 것도 없는, 그야말로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세계이니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Cogito, ergo sum!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절대 확실한 존재로서 신 대신 자아(나)를 철학의 중심으로 세우게 된다.
- 이렇게 되면 나는 세계 밖에 존재하며 내 앞에는 내가 인식하는 근거가 되는 세계가 펼쳐진다.
subject vs object
- 데카르트는 이러한
나
를 근원(기본)으로 자리한 존재
라는 라틴 어 Subjectum
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 Sub - : 바탕, 기본, 근원, 밑
- -jectum : 놓여 있는 것
- 이를 주관(主觀)이라고 번역하였다.
- 반면에 내 앞에 놓여 인식되는 세계를
앞에 놓인 것
이라는 뜻의 라틴 어 Objectum
으로 표현하였고, 이를 객관(客觀)이라고 번역하였다.
데카르트가 설정한 이 주관과 객관의 틀은 지금까지도 서양 철학의 기본이 되고 있다.
서양 철학 : 나(주관) - 인식 - 내가 아닌 모든 것(객관)
동양 철학 : 인간 - 관계 - 인간
존 로크
- 로저 베이컨 이래, 영국의 철학은 경험론의 전통을 이어 왔다.
- 영국의 대표적인 경험론자인 존 로크는 플라톤 철학(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고, 성장하면서 경험에 의해 악에 물들음
)에서 벗어나 경험론적 전통을 확립한 철학자이다.
- 인간은 백지와 같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상태로 태어났고, 성장하면서 경험에 의해 선해지고 악해지는 것이다.
로크의 사회계약론
- 로크는 인간이 원래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 인간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 지킬 것은 지키고 양보할 것은 양보할 줄 아는 사회적 존재로 보았고, 그래서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에서도 자신의 생명, 자유, 재산의 소유권을 지키며 이를 침해하는 상대에게 저항하고 처벌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 생명, 건강, 자유, 재산을 자연 상태보다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개개인은 자신에 대한 처벌권을
국가나 군주 등 공권력에 위탁하고 세금을 내며 대신에 자신이 보호받는 다는 계약
을 맺는다고 주장하였다. (홉스의 사회계약론과 같은 부분)
- 그러나 공권력이 개인의 소유권, 자유 등을 침범한다면 백성, 신민들은 복종을 거부하고 저항하며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저항권
과 혁명의 권리
를 갖는데, 이 이론이 바로 영국의 명예 혁명,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등 근대 시민 혁명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조지 버클리
- 영국의 경험론자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사람이 조지 버클리로, 아일랜드 출신의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 교수를 지내고 뒷날 성공회 주교가 된 성직자이다.
- 이름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까지 널리 알려져, 그의 이름을 딴 도시와 대학교(
버클리 시, 버클리 대학교
)가 생길 정도
임마누엘 칸트
- 근대 철학의 토대를 만든 사람은 데카르트지만 칸트가 없었다면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갔을 것이다.
- 철학을 신학과 과학으로부터 독립시켜 고유한 영역에 자리매김하게 했다.
- 인과성을 부정한 과학과 이에 근거한 인간의 인식 자체를 부정하는 흄의 주장은 "'계몽'이라는 이상을 깨뜨리는 위험한 것이다!"라고 흄의 주장을 반박하여 자연과학의 가능성을 보호하려 했다.
- 이러한 칸트의 철학은 대표적 저서
순수 이성 비판
에 잘 나타나 있다.
- 칸트 철학의 핵심은
아 프리오리(a priori)
로 라틴 어로 '무엇에 앞서는'이란 의미.
- 인간의 사고는 비록 경험을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지만, 경험을 토대로 하면서 경험보다 앞서 존재하는 인간 사고의 기본 구조, 즉
아 프리오리
한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이를 칸트는
아 프리오리한 지식
, 선험적(先驗的) 지식이라고 한다.
- 즉 지식은 경험과 함께 시작되지만 지식이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 왜냐하면 경험은 인식의 재료, 즉 소재만 우리에게 주는 데 그치기 때문이지 경험이 인식의 객관성과 보편 타당성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
- 따라서 자연 사물의 인과성과 보편 타당성은 우리가 경험하기 이전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며, 인식의 대상을 인과성과 보편 타당서이라는 아 프리오리한 인식 원리에 의해 인식하게 된다고 하였다.
- 칸트는 이런 인과성을 인정함으로써 자연 과학의 성립에 근거과 정당성을 부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