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퇴직 이후 많은 회사들을 알아봤다. 작은 회사들은 솔직히 말해 연봉을 맞춰주지 못할 것 같아서 몇 번의 이직 제안을 받았음에도 진행을 하지 않았다.
- 맨 처음 지원한 곳은 배민이었다. (지원한 곳들을 모두 밝히진 않겠지만, 큰 곳이니까 여기만 써 본다) 사실 갈 생각이 많지는 않아 면접 준비를 많이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많이 떨었고 조금 실수를 했던 것 같다. 면접의 전체적 분위기가 개발 역량보단 시니어리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의외였고, 조금 질문이 산발적이고 겉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React에 대해 꽤 깊은 질문들을 많이 받아서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들을 잘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고, 원하는 답변이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긴 하지만)
- 미국의 모 AI 스타트업 이름을 따라한 (나중에 알았음) 스타트업에서 제안이 와서 지원했었는데, 전체 진행은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세부적인 미묘함은 있었어도) 오퍼레터까지 나온 상황에서 갑자기 채용을 거부하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뭔가를 실수한 것인가 했다) 나의 경우 한 회사를 진행하면 다른 회사는 진행하지 않는 편이고, 거의 두달동안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격이 있었다.
- 합리적인 의심으로는, 개인적인 일신의 사유를 밝혔는데 그게 원인이 된 듯 하다. 그래, 애 볼 시간에 회사 일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하는 젊은이를 뽑고 싶은 마음 이해합니다.
-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차라리 다행인 것 같다. 여러가지 문제를 떠나, 애당초 그 회사에선 나를 왜 뽑는지에 대한 이유가 불분명했다. 그냥 내가 경험이 많고 할 줄 아는 게 많으니까 뽑으면 어떻게든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지, 같은 느낌에 가까웠던 것 같다. 한편으론, 나는 그들의 미션은 그다지 공감하기 어려웠다. 정확히는 우리는 아직 잘 모르지만, 알아나갈거에요 같은 식의 태도였는데...
- 구직자들은 한국의 AI 분야 스타트업들을 조심했으면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시점에서는 블록체인이랑 다른 점이 거의 없다. (ChatGPT 나도 좋아하지만, OpenAI를 제외하면 현재 의미있는 프로덕트를 내고 있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차이라면 블록체인은 마케팅을 통한 토큰의 현금화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이 뭐가 문제인가요?' 나는 그 분야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몸 담은 수많은 개발자들에 '급격히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경고하고 싶다. 물론, 주어진 리스크를 이해하고 감수한다면 상관은 없다.
- AI 분야에 관심도 있고, hype도 타 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UX 측면에서 많이 기여햘 수 있다는 생각에 AI 회사들을 계속 알아왔으나, 현 시점에서는 적잖은 회사들의 비즈니스 프랙티스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API 비즈니스면 어떻게 비용을 낮출 것인가? 앱 비즈니스면 어떻게 기존 앱들과 차별점을 둘 것인가? 대체로 답변이 그냥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정도이다.
- 물론, 멀리서도 길이 보이지 않아 그냥 앞으로 가야만 할 때도 있다. 정말 그 '길'을 찾는다면 그 탐색 방식에 의문을 가진 내가, 대서양 건너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만큼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API 비즈니스와 앱 비즈니스는 닷컴 시절처럼 실증된 것이 전혀 없던 때와는 다르다고 보기에, '하다보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같은 접근은 조금 신중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 컴퓨팅 파워의 제약을 말할 수 있는 전문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으나, 이전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와 다르고, 또한 데이터에 대한 weaponization, 국경화가 트럼프 이후 계속되어오고 있다. 데이터와 인프라, 둘의 폭발적인 stream을 당겨올 수 없다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런 이유로 나는 빅테크에 대해 늘 긍정적이었다.
- 어쨌든,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그동안 일,일,일만 해오던 커리어에 좀 큰 공백기가 생겼다. 하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 시기에 뭐 하셨나요 하고 나중에 물어볼지도 모르겠다만... (궁금한 분들에게 이 포스트가 답변이 되길 바란다)
- 구직자들에게는 매우 가혹한 시절이다. 나는 아예 안될 것 같은 곳들은 아에 지원도 하지 않았고 (특히 코딩테스트나 CS 지식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 곳들), 주로 경력적인 부분이나 과제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녀서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과제 전형을 보는 곳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멘탈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주변 분들은 수십군데에 지원하고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힘들어하는 분들을 봤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 해내더라. 개발자 취업시장이 아무리 어려워도 다른 분야보다는 낫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 어쩌다 보니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물론 인간도 하나의 개체이기에 그것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에 지배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어진 환경을 뛰어넘어 엄청난 일들을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세상이 아무리 문제가 많고 어려워도 조금씩 세상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개발자가 된 측면이 없지 않다. (어릴 때부터 발명가들을 동경했다)
- 여러가지 구직 여정을 끝내고 나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이제 충분히 좋은 솔루션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상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는가? 를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가령, Whisper -> GPT API 같은 수많은 데모들이 at scale으로 확대되면, 해외에서 언어의 장벽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 왜냐하면, 아무리 완벽한 엔지니어링의 보좌가 있더라도 API가 오고가는 일은 수많은 실패의 가능성을 머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 소통을 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요청에 실패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를 한 번이라도 듣게 된다면, 그것을 다시 행하겠는가?
- 사람들이 아날로그를 계속 선호하는 것은, 그것이 80%, 99.999%가 아닌 100%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서비스들(사실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통제권을 유저에게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서 불안감을 느낀다.
- 세상이 별로 바뀌지 않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기술 중심적으로 생각해서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에 대한 고려는 늘 부족하다. '유저 스토리', '유저 피드백' 을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한데, 회사라는 협업의 환경에서는 '내가 이렇게 골똘하게 생각해낸 완벽한 설계, 그렇지만 데이터는 부족한 무언가'는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수많은 유저 피드백을 통해 만들어진 근본적으로 잘못된 제품' 보다 얼마든지 나을 수 있다는 건 발명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