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잇 스프린트 회고

Viking_J·2024년 9월 8일

카페에 가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기로 했다. 따가운 햇빛, 끈적한 땀방울을 느끼고 싶었다. 왜일까? 카페 문 앞에서 마음을 바꾼 것부터, 목이 탈 때까지 걸어 다닌 것, 아무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은 것까지, 어쩌면 그게 내 진짜 계획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집에서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나왔으니까.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 벤치에 누워 있으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대답은 역시 “모르겠다”이다. 6개월 열심히 했으니까 일주일 쉰다는 게 내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 진짜 계획은 또 따로 있는 게 아닐까?

부트캠프 동료들의 회고가 문득 떠올랐다. 왜 부트캠프를 했으며, 어떤 식으로 해나갔는지, 어떻게 끝이 났는지 멋지게 적어놓았다. 그러나 나는 의아하기만 하다. 난 왜 부트캠프를 했을까? 시작할 당시에는 여러 가지 답이 있었던 것 같다. “사회로 나가보자”, “혼자는 힘들다” 등등. 근데 지금은 그 어떤 대답도 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6개월 동안 내가 한 건 대체 뭐였을까. 그것도 미스터리다. 프론트엔드 기술을 공부했다. 프로젝트도 3개나 했다. 좋은 사람들도 사귀었다. 하지만 이건 표면적인 사실일 뿐이다. 이 기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여자에게 꽃을 주었다는 표면적인 사실은 사랑을 고백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다행히 6개월 과정을 끝까지는 해냈다. 긴 도로를 과속으로 달려온 기분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어느새 태양이 벤치 뒤로 넘어가 내 눈을 부셨다. 움직인 건 지구인가, 태양인가, 아니면 나인가. 중요한가? 지금 내 눈이 부시는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의식 위로 떠올랐다. 이어서 나는 해가 더 뜨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후덥지근했으면 좋겠다고. 그래, 내가 원하는 건 더위였다.

“덥고 싶다” 요새 이런 욕구를 자주, 강하게 느낀다. 참 이상한 욕구다. 예전부터 더위를 마다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이 욕구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침 내 손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강의>가 들려 있지 않은가. 적절한 유희가 될 것 같았다.

야외 테라스가 있는 술집으로 이동해 맥주 한 잔을 시켰다. 그리고 더위와 여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확히는 그것을 원하는 나에 대해 생각한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 해는 짧아지고 날씨는 선선해지는구나. 나는 그게 섭섭하다. 더워하고 싶다는 나의 욕구는 이렇게 번역된다. “나는 이 여름이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한다.”

정신분석의 기본인 연상 기법을 사용해 볼까. 여름은 옷이 가벼워지는 계절이다. 이 말은 지갑이 가볍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나 역시 지금 가벼운 상태다.
더위는 숨이 막히고 답답한 감각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난 숨이 막힌다. 너무나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참 답답한 심정이다.
더위는 뜨거움이다. 뜨거움은 열정을 연상시킨다. 올여름 나는 열정적인 사람을 많이 만났다. 심지어 열정적인 나 자신까지도.

아 그렇구나, 나는 지금 내 상황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구나. 불안하고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열정적인 지금을. 나는 내 상황을 여름으로 비유하나 보다. 코드잇 스프린트는 한여름이다.

오늘 낮에 야외 벤치에 누워서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이제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여름을 연장시키고 있었구나. 마치 먹는 것까지 운동이라며 잘 챙겨 먹는 헬스인들처럼, 나는 쉬는 것까지가 부트캠프 과정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올여름이 매우 행복했다는 것과 지금 이 상태로 남아있고 싶다는 것. 내가 아는 건 이 두 가지뿐이다. 그래도 이 두 가지만으로도 회고가 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일기라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지만, 회고라고 하고 싶다.

나는 지금 여름이 지나가는 걸 막는 중인데, 다른 스프린터분들은 뭘 하고 계실까? 아마 겨울을 준비하고 계시겠지? 궁금해진다. 나는 겨울에 무얼 하고 있을까?


쿠키 글

라는 생각에 잠겨 집에 가는 중었다.
그런데 한 아저씨가 나를 향해 소리를 치며 뛰어오는 게 아닌가?
“학생! 계산하고 가야지!!”
나는 그 아저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 이제 학생 아닌데…’.
나는 자주 내가 현대 사회에서 살아 갈 수 있는 놈인가 의심스럽다.
그래, 나는 이제 학생도 아니고, 직접 계산도 해야 하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왜 계산을 까먹었을까?
이제 잘 쉬었으니까 다시 열심히 해야한다는 계시임이 거의 확실했다.

"망상은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충분한 동기를 갖고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작은 실수를 전조로 해석하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의도의 징조로 실수들을 평가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만 갖고 있었더라면, 많은 실망들과 고통스러운 경악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 태도는 과학을 옆으로 우회해서 미신적인 생각을 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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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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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2일

"눈이 부셔서" 라는 의미가 이거구나ㅎㅎㅎ 항상 지나가듯 너가 계속 더웠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 것도 생각나구,,ㅋㅋㅋ 열정적이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채종민이 있어서 스프린트 기간이랑 집가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어. 같이 따뜻한 겨울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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