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일

wony·2022년 9월 26일

22.09.26
정글 수료 후 46일이 지났다.

항상 밀린 회고를 정리했었는데 더 잊혀지기 전에 남겨보려 한다.

시작하기 전에 기대했던 만큼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열심히 공부한다는 거, 많이 배운다는 거 이 또한 능력이고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공부도 하고싶은 과목만 하고, 짧은 목표만 세워봤었고, 어려운 걸 풀어내는 건 좋아했지만, 아주 한정된 분야였다. 열심히 살아오긴 했지만 그 시간들이 다 학문적인 것들을 배운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을 배우고 써먹으며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영양에 있을 때도 인생을 실컷 배웠지 책을 잡고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랬던 나에게 하루종일 앉아서 진득하게(?) 공부해야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걸 못한다는 걸 끊임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모르는 건 배우면 되는데 라고 싶게 말하기에 어려웠고, 나도 나의 속도가 답답했다. 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못해도 된다고 위로하고 싶지 않았고, 이렇게 오래 앉아서 공부하는 걸 별로 안해봐서 그렇다고 여러번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것들을 내가 뭐가 부족하고, 뭐가 안되는지를 계속 봐야했고 나아지지 않으면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자리부터 지키고 보자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체력은 있었다. (기숙사+자취 경력도 있었고, 사람들하고도 금방 친해져서 다른 적응의 어려움은 없이 공부 적응하는데만 힘을 쓰면 되는 거였다.)
밀도가 낮아도 집중이 안돼도 앉아있자. 그래서 한 자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알자 생각했다.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앉아있을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매 과제마다 일주일은 부족했고 방대한 양을 머릿속에 때려넣고 있는 게 느껴졌다. 휩쓸려 가버릴까봐 겁나기도 했다. 제대로 새겨놓고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했다. 듣고 아~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 이게 아니면 저렇게 되겠구나, 정말로 이해가 돼서 이제 아는 것이 되어 전에 했던 것들 이제 하게될 것들과 이어질 수 있길 바랬다. 그래서 봤던 것도 또 보고, 관련된 것도 찾아보고 그렇게 공부했던 것 같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진다.. 얼른 지금 시점으로 돌아와야겠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도 하고 과제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수동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하나도 그렇지 않았다. 해야할 일로 주어진 건 정글페이지 하나랑 엑셀 시트 몇줄이 다 였다. 물론 핀토스 가서는 깃북도 하나 생겼지만(영어로된..ㅎ). 하나같이 알아서 공부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가끔 누가 이거 보면 잘 나와있더라 하고 공유해주는 강의나 링크는 정말 감사했다. 아낌없이 나눠주는 동료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끔 이해한 것들을 잘 설명해주는 것 정도였다. 더 알려주고 싶어서라도 더 빨리 하고싶었던 것 같다. 무튼 수동적인 시간이 아니었다. 뭘 공부해야 할지 찾아서 하고, 뭐가 더 필요할 지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면서 뇌운동을 실컷했던 시간이었다.
의장님이 생각하는 근육을 키워야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답을 보고싶을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연습, 그걸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운동이랑 같은 맥락이다. 이 악물고 버티거나 쉬지않고 달리다 보면 한계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무거운 걸 내려놓고 싶고, 멈춰서 숨돌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차면, 이미 근육에 온 신경이 가 있어서 뇌가 생각할 산소가 부족할 것 같은데도, 하나만더, 반바퀴만더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순간에 근육이 성장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당연했다. 잘 모르겠고, 어렵고, 답 보고싶고 그만 생각하고 싶을 때, 그 때 한번 더 물고 늘어지는 거, 조금 더 고민하는 거, 다시 생각해보는 거 그런 걸 연습했다.

5개월 동안 뇌근육이 트레이닝 받은 느낌이랄까. 근육이 좀 생기긴 했으려나.
생각하는 습관은 늘 추구하던 방향이다. 하지만 그만하고 싶을 때 한번 더 라는 건 연습하지 않고는 하고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도 정글은 앞으로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줄인다고 줄여도 길어져 버렸다..허허

쨌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거, 막연하지만 부딪혀보는 거, 끝까지 해보는 거, 다 나한텐 정말 의미있고 힘이 되는 경험들이었다. 혼자가 아니었던 것도 크다. 살면서 막막해질 때마다 이때를 떠올릴 것이다. 이 귀한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이렇게 요란한 감동과 울림을 안고 정글을 마쳤다.
그때부터가 현실이었다. 지원서를 쓰고 취업을 해야했다. 여기까지 해야 끝났다고 할 수 있는 건데.. 생각보다 쉽게 맥이 풀렸던 것 같다.

수료식 마치고는 남아서 면접준비도 하고 알고리즘 문제도 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코로나도 걸리고.. 코로나 전까지는 나았던 거 같다. 사람들이라도 있었으니.

대전을 떠난 지는 딱 한 달이 되었다.
대구에서 2주 안산에서 2주를 보냈다.
대구가서는 노트북은 안 펼쳤던 거 같다. 스터디 덕분에 조금 공부하나 했지만 그거도 잠깐이었고. 빨리 올라오고 싶었으나 그럴 여건도 안됐다. 그래서 마음을 달리 먹었다.
깔끔하게 2주 동안 대구에서 해야할 일들을 다 해놓고 올라가자. 엄마 폰도 바꾸고 집 인터넷이랑 tv도 바꿨다. 오래 못 본 사람들과 밀린 밥도 먹고 회포도 풀었다. 학교도 놀러가고, 엄마랑 데이트도 하고, 잠도 많이 잤다.
사실 잠은 정글에서 미루고 살았던 게 몰려오는 듯 싶다. 가끔 하루종일 잠만 자기도 한다.

자알 놀고 안산에 올라왔다. 여기도 쉽지않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벌레라고 대답한다.

청소하고 짐풀고 매일 당근을 드나들며 방을 꾸렸다. 공부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며 여기저기 카페를 다녀보고 있다. 이디야나 투썸, 스벅도 갔었고 스터디카페도 순회중이다. 안산천을 따라 중앙동까지 왔다갔다 하는 길이 40분 정도 걸리는 데 걸을만한 것 같다. 바람쐬기도 좋고.

. . .

늘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이번 만큼이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가장, 제일, 역대급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정짓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정글만큼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고 정말 하얗게 불태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좋았고, 힘들어도 즐거웠고, 헤어지는 것도 아쉽고, 밀도 높았던 그 시간들이 꿈같기도 했다. 이쁜 추억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큰 자극이 되었고, 뭐든 시작할 수 있는 용기도 충전됐다. 정글에서의 열심을 이어가야한다.

5개월동안의 하루와 46일동안의 하루는 너무 달랐다.
밀도로 표현하자면 너무 비어있었고, 농도로 표현하자면 언제 섞였는지 물밖에 안남은 것 같다. 지쳐서 쉬는 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다음이 있어야(충전했으면 잘 써야) 쉼도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하루치 후회하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달렸던 걸 생각하면 정글이랑 다르다고 자꾸 곱씹는 것도 똑똑한 짓은 아닌 거다.

여전히 하루도 버리지 말 것!

열심히 쓰자 아까운 시간ㅠ
그냥 시간이 양적으로 버려진다기보다, 팔팔한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지나가는 시간이 아깝다고해야하나.. 뭔가 열심히 살때의 기분좋음을 계속 느끼고 싶다. 그러니 열심히 생각하고 움직이고 다시 없을 이 시간을 부지런히 누려야 한다.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의 합격소식이 조금씩 들려왔었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반가운 소식이 좋았다. 고생했고 잘돼서 기뻤다. 나도 빨리 만나고 싶다. 다시 타들어갈수있는 곳에서 선한 자극이 되어줄 동료들과 하루빨리 신나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이 너무 많다..
하고싶은 말의 반도 못담았지만..
이러니 자주 쓰라구.. 밀린 거 한번에 다 쏟아내지 말구...

두서없이 적었지만 그냥 올리련다.
정리된 것만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부숴야 자유롭게 뭐든 빠르게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뭐든 하면 된다. 부지런히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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