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끝났다. 1월이 엊그제라고 느낄 정도로 정말 빨리 지나가버렸다. 허무하게 나의 20대의 마지막이 끝났다. 막상 회고를 작성하려고 하니 내가 올해에 뭘했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우리 서비스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2020년 하면 생각나는 것은 2월에 갔었던 스페인과 나의 건강이 안좋아진 두 번의 사건이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외출할 때는 무조건 마스크를 쓰는게 일상이 되고나서는 어디 갈 수도 없어서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게 없는 것 같다. 1년 간의 사진을 확인해보면서 기억을 더듬어본다.
올해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너무 많은 스트레스와 엉망 진창인 수면 패턴 때문에 발생했다. 특히 팀원을 매니징하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쌓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새벽 4시, 5시가 되서야 잠을 잤고 오전 9시에 일어났다. 결국 모든 요소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안좋은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난 건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나는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니 너무 슬펐고, 의욕이 많이 떨어졌다. 아홉수라는게 정말 있는건가 싶기도 했다. 자주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평범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마음을 다잡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좋게 생각하면 나는 이 계기로 다른 사람들보다는 일찍 건강을 신경쓰게되었다. 장기적으로 미래의 나는 더 건강할 것이다. 담배를 끊었고, 술을 끊었고, 카페인을 끊었고, 이제는 일찍 자려고 노력한다.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기에 이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팀 매니징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지금은 배운대로 팀을 매니징하면서 팀원과 이야기 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솔직하게 이야기하여 생각을 공유한다. 아직 리더가 되기에는 아직도 배워야 하는 것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내가 크게 한걸음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2020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MWC(Mobile World Congress)에 우리 회사가 운좋게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해외에 우리 서비스를 직접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다 떠나서 해외에 나간다는 설렘과 한번도 가보지 못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의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결국 행사가 취소되고 말았다. 아직 중국을 제외한 다른나라에는 코로나가 퍼지기 전이었다. 예약했던 비행기 표가 취소가 안되면서 대표 형과 의논해서 빠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어차피 비행기 표 취소도 안되고, 같이 가기로 했던 다른 한국팀들의 호텔도 취소가 되지 않았다. 일일이 연락해서 취소되지 않는 호텔을 모두 양도 받고, 다음날 회사로 출근해 모든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7박의 호텔 숙소도 확보했고, 비행기표의 절반을 지원해줄테니 스페인 가고 싶은 사람은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사정이 있는 두 명의 팀원을 제외하고 10명의 팀원과 스페인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비행기도 실컷 타봤다. 성인이되고 처음 가보는 유럽이었고, 처음 가보는 스페인이었고, 처음 가보는 바르셀로나였다. 스페인 바로셀로나는 관광객들로 엄청 붐볐고, 햇살은 따듯했고, 음식은 맛있었다. 가우디 투어로 책에서만 보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가보고, 가우디 공원도 가보고, 펍에서 바르셀로나 경기도 보고, 꿀대구도 먹어보고,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노을도 보고, 샹그리아도 먹고, ZARA 쇼핑도 하고, 마지막 날에는 몬세라트 투어도 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더욱 즐거웠고, 시간은 빨리갔다. 우리는 해외 여행의 막차를 탔다. 이제 해외에 나갈 수 없어 더 그리운 것 같다.
올해 하반기에는 팀 문화, 리더, 팀 매니징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느낀점은 책을 통해 배우는 점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도 책을 읽는 시간을 내는 것은 참 어려웠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한 권을 3개월 동안 읽었다. 전에는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을 내가 모두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 완벽하게 이해하고 꼼꼼히 읽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그 감정, 생각과 인사이트가 더 중요하고, 실패해도 좋으니 그것을 당장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아직도 3개월 전에 처음 펼쳤던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새해에는 더 많은 책을 더 빨리(한 번 책을 펼쳤을 때 더 많이) 읽기로 다짐했다.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
올해 개발 공부는 많이 못했던 것 같다. 특히 프로그래밍 기초 공부를 많이 못했다. 그렇다고 유니티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다. 올해는 개발 관련해서 성장이 없었다고 느껴진다. 오히려 성장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뒤로 퇴보했다고 생각한다. 사용하는 에셋들을 번들화 하기위해 공부했지만 결국 프로젝트에 적용하지 못했다. 내년 목표를 잡을 때, 유니티 실력을 어느 정도 높이는 것을 목표 중 하나로 잡았다. 크게 에셋 번들과 UI 시스템 리팩토링, 그리고 데이터와 뷰 분리를 목표로 잡았다.
앱 개발 뿐만 아니라 웹 개발도 신경써야 하면서 3년전에 공부했었던 HTML, CSS를 다시 공부하고 지금은 리액트를 천천히 공부하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라 신선하고 재밌다. 시간이 부족해서 우리 웹 서비스 개발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웹 개발이 굴러가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하고 언젠가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날이 올 수 있어서 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리액트 프로젝트 3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올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한 것 같다. 20대의 마지막인 29살이 되면서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같이 늘었었다. 25살에 창업에 뛰어들면서 앞만보고 달려왔다.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웠고, 3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지금의 서비스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아직 나는 학생이었고 나는 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내 커리어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창업을 시작할 때는 무작정 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고, 개발을 배워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때에는 처음 창업할 때 서비스의 초기 버전을 만들어 서포팅 한다는 마음이었다. 회사가 점점 커지면서 경력에 비해 높은 직책을 맡게되었고, 이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 나는 실력이 그만큼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팀을 매니징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팀문화를 만들어나가면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은 부족했고 배워야 하는 건 너무 많았다. 나는 좋은 개발자가 되고 싶은건지 팀 리더가 되고 싶은건지 성공해서 부자가 되고 싶은건지 헷갈렸다. 주변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개발자로 취직하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개발을 공부한지 3년이 되었는데 3년차 개발자라고 할 수 없다고 느꼈다. 신입 개발자로 취직할 수 있는 마지막 즈음이라고 생각하니 더 불안해져서 고민도 많이 늘었었다.
그렇게 고민이 많던 올해가 다 갈 즈음 우리 회사에 같이 창업 기숙사에 살았던 친구가 본인이 공동 창업한 회사를 나와서 우리 회사에 합류했다. 그 친구 덕분에 회사 전략을 다시 고민했고 C레벨들과 이야기를 하며 목표 깃발을 다시 꼽았다. 3년차쯤 되니 관성으로 지금까지 하던대로 하던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제는 이 회사의 미래가 조금 더 뚜렷해졌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미래의 내가 뭐가되든 내가 창업한 회사에서 더 성장하고 이 회사를 더 키우자고 생각했다.
나는 신입 개발자로 취직하고 싶었던 이유를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을 못가본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불안함이라고 결론내렸다.
올해 회사가 많이 성장했다. 12명이었던 팀원이 총 26명까지 늘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꺼라고 예상했지만 결국 작년 대비 2배의 매출을 달성했다. 올해 초, 글로벌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별다른 홍보 없이 해외 사용자가 많이 늘었다. 미국과 인도네시아에서 협력사의 연락이왔고, 좋은 반응이 있어 해외 사업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또 좋은 기회로 울산 청소년 과학 탐구 연구회를 운영하고 계신 협력 교사 한 분과 연결되었다. 아두이노와 코딩 교육을 찾아보다가 우리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서비스를 많이 좋아해주시고, 피드백도 적극적으로 해주셨다.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서비스의 방향을 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고, 하나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 서비스 개발 팀원도 많이 늘어나면서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적용시켰고 시스템화 했다. 이에 적응하면서 팀원들도 한걸음 성장했다. 우리 서비스의 목표를 다같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서비스 개발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팀원도 많이 늘었고 그에 맞춰 시스템도 준비가 되었다. 마침 우리들의 새 보금자리로 이사도 했다. 달릴 준비는 모두 되었다.
12월 29일부터 2020년 회고를 작성했지만, 작성하다보니 벌써 해가 넘어가버렸다. 막상 작성하다보니 꽤 할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한 해가 통채로 사라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쨋든 생각해보면 이런 저런 나쁜 일도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다. 2021년이 되던 찰나 나는 평생 처음으로 진실되게 기도를 했다.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느덧 내 나이가 아빠가 결혼한 나이를 넘어섰고, 부모님도 같이 늙어간다는 것도 몸소 느끼고 있다. 어쨌든 건강이 제일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걸 잃을 수 있다는 걸 다시 느끼면서 2021년에는 건강하게 아무탈 없이 보냈으면 좋겠다.
2021년에는 나만의 목표를 수치화해서 작성해보려고 한다. 2021년 회고는 얼마나 목표를 달성했는지 정량적으로 확인해볼 계획이다. 아무튼 2020년은 잘 가고, 2021년 잘해보자.
서비스를 운영하고 계신가보네요. 작년 한 해 정말 고생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