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시작하며 주변인들에게 조언을 많이 받았는데, 그중 인간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지인이 학습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다며 추천해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학습과 일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학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마인드셋을 해볼 수 있었다.
읽으면서 꼭 내용을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읽은 직후에 하지 못하고 이렇게 늦게나마 작성해본다.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의 조각들과 기억을 더듬어보며 독후감 작성을 해보도록 하겠다.
그들이 필사적인 노력을 중단하고 자기 자신의 체험을 통해 배우는 자신의 내적 역량을 믿었을 때, 신기할 정도로 쉽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강요된 형태의 학습과 자연적인 학습 간에는 학습 성과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있는데, 이는 어린아이의 성장 과정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학습을 한다. 새로운 것을 궁금해하고, 직접 시도해보고, 적극적으로 탐구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점점 강요된 형태의 학습에 익숙해지며, 스스로 호기심을 느끼고 탐구하는 경험이 많이 줄어들게 된다. 우리는 모두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지만,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멈추어버린 듯 하다.
테니스 코치와 학생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관찰해보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변화의 방법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학생이 코치에게 다가와 자신의 불만을 호소한다. "서브에 파워가 없어요." "백핸드에 문제가 있어요." 그러면 코치는 "그래요? 어디 한번 봅시다"라고 말하고 학생의 스트로크를 지켜본다. 그리고 코치는 자신이 아는 올바른 스트로크, 즉 모델과 학생의 스토로크를 비교해본다. 그 모델은 코치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 또한 그의 코치로부터 배운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델을 기준으로 코치는 학생의 스트로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한다. 실제 스트로크와 모델 간에 차이가 발견되면 학생의 스트로크를 모델에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된다.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코치는 다양한 지시를 하는데, 이 다양한 지시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해선 안 될 것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한 발을 더 내딛고 앞발에 무게를 실으며 공을 쳐라." "백스윙에서는 그렇게 라켓을 높이 치켜들지 마라." "팔로 스루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
'바른 것'과 '그른 것'을 배운 학생의 행동은 대체로 예측 가능하다. 공을 칠 때마다 "좋았어", "틀렸어"라고 말하는 코치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학생의 역할은 점점 단순화되어간다. 들은 대로 치면 된다. '바른 것'을 하고 '그른 것'을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라켓을 끌어당기는 것이 늦다고 지적당한 학생은 빨리 끌어당기려고 노력한다. 학생은 움직임이 어색하고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느끼지만 코치는 그의 행동이 자신의 지시와 부합하기 때문에 "좋았어"를 외친다. 학생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점점 익숙해져버린다. 코치는 계속 '바른 것'과 '그른 것'을 외치고, 학생은 들은 대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코치는 다시 "좋았어", "틀렸어"라고 판결을 내린다.
이러한 과정은 학생의 내적인 열망과 학습에 대한 책임의식을 약화시키지만 학생도 코치도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이 방법의 구조적인 문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다. 그들이 아는 레슨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적인 열망과 학습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즐겁게 학습에 임했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기초적인 원리와 도달해야 하는 목표를 알려준 후 스스로 문제 해결을 고민하고 실행하도록 자율성을 부여받았을 때 주도적이고 즐겁게 학습에 임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하면 안 되지' 하는 지시를 듣고 따르는 것보다 스스로 이루고자 열망하고 탐구할 때 더욱 효과적인 학습이 일어나게 된다.
도대체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공을 칠 때, 학생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학생의 머릿속에서도 대화가 일어나고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코치라는 외부의 대상과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신과의 대화다. 그의 머릿 속에는 마치 코치처럼 명령하는 듯한 강력한 어떤 음성이 있을 것이다. '라켓을 빨리 끌어당겨!' '공을 향해 뛰어가!' '팔로 스루를 어깨 높이까지 해!' 공을 치고 나면, 공을 친 솜씨와 선수에 대한 평가가 이어진다. '최악의 샷이었어!' '이렇게 터무니없는 백핸드를 하다니!'
나는 생각했다. '이런 내면의 대화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이것이 학습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학습을 방해하고 있을까?' 위대한 스포츠 선수에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 순간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물으면 그들의 대답은 모두 같다. 그 순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으며 마음은 평온하고 경기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내면의 생각을 두 가지로 나눈다.
셀프1 : 타인에 의해 학습된 외부의 지시에 의해 형성된 생각들
셀프2 :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스스로 하는 생각들
이 생각들은 서로 배타적이다. 셀프1의 목소리가 커질 때도, 셀프2의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다. 둘중 어떤 하나가 더 옳고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셀프1의 목소리는 세상의 규율과 타인의 지시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셀프2의 목소리에는 자유로운 나의 욕구가 담겨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이 셀프1에서 온 생각인지, 아니면 셀프2에서 온 생각인지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의 인용문은 셀프2를 왜 자유롭게 표출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여기 하나의 활력, 생명의 힘, 에너지, 태동이 있다. 그것들은 당신의 동작을 통해 외부로 나타난다. 이 우주에 당신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이 표현도 오직 하나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이를 표현하지 않으면 그냥 사라져버린다. 당신이 아닌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영원히 그것을 가질 수 없다. 그 표현이 좋은지, 가치 있는지, 다른 표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상관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게 직접적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며, 또 언제나 표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그것을 표현할 재능이 있는지, 또 잘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자신을 열어두고 자신을 이끄는 충동을 생생하게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위한 문을 활짝 열어둬라.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이 울렸던 부분이다.
우리 개인이 가진 활력, 생명의 힘, 에너지, 태동. 그것은 단 하나 뿐이며, 내가 표출하지 않는다면 그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표현하지 않은 존재는 사라지고, 나 대신 그 누구도 나의 것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럼 세상은 영원히 그걸 가질 수 없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 개인의 표현은 너무 많이 감추어지고 위축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의도적으로, 비의도적으로 다른 이들의 의중을 살피게 된다. 내가 세상의 흐름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무언가 혼자 엇나가는 건 아닌지를 살피며 자연스럽게 사회에 스며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이 가진 개성의 표출이 줄어들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좋아할 만한 것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타인의 관심사를 끊임없이 살피게 된다. 타인에 대한 관찰과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남들이 좋아할만한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과 ‘나의 표현을 담은 것’을 만드는 것은 같은 결과물을 만들더라도 다른 진정성이 담겨있다.
내 안에 있는 나만의 개인적인 세계가 정말 특별하고 빛나는 것일 수 있다. 모두가 마음 속에 그러한 것을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직접 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고, 언제 빛을 발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과를 알고 싶다면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그저 하는 수 밖에 없다. 인생의 불확실성은 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설렘과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인지, 신뢰, 그리고 선택
셀프1의 방해사이클을 부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느 날 나는 기존의 레슨법이 선수의 행동, 즉 반응에만 초점을 맞추고 근본적인 문제인 인식의 왜곡은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됐다.
결국 문제는 인식에 있었다. 플레이어는 공을 위협으로 인식했고 이 왜곡된 인식이 여러 잘못된 행동의 원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만일 코칭을 통해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또 자신의 실력이나 행동을 스스로 평가하지 않고 단지 있는 그대로 관찰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의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아주 멋지고 새로운 학습방법과 코칭법이 만들어졌다. 이 방법의 핵심 원리는 (1) 비非평가적 인지awarenes, (2) 셀프2에 대한 신뢰trust, (3) 수행하는 사람에 의한 선택choice으로 요약된다.
'바른 행동을 하고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지도가 학생의 자연적인 학습을 방해하고 있음을 인식한 후, 나는 학생들이 그런 지도 없이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학생들이 날아오는 공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인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백핸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하자. 나는 그에게 "백핸드의 교정을 잠시 미뤄두고 우선 날아오는 공을 관찰하는 데 집중해봅시다. 예를 들어 라켓에 공이 맞는 순간 공이 상승 중이었는지, 수평비행 중이었는지, 또는 하강 중이었는지 관찰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바꾸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관찰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한다.
"라켓에 맞는 순간 공은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수평이었습니다." "이번 것은 공이 최고점에서 떨어져 날아오는 중이었습니다." 학생의 음성에서 그가 객관적인 관찰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 순간 그는 비평적인 심리 상태에 있지 않다.
자연적인 학습은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비평가적 인지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직접적인 지시가 아닌 스스로 관찰하고 인지하며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본인의 해결책을 도출하여 시도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통해 더 좋은 방법을 스스로 선택해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은 후 어떠한 문제들에 직면할 때, 그것을 인지하는 연습을 먼저 해보았다. '현재 어떤 상황인지부터 파악해보자, 이 사람은 이런 입장이고 이 사람은 이런 입장이구나, 지금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이걸 저런 방향으로 해결하는 게 필요하구나.' 비평가적 인지를 연습하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지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 실제로 큰 도움을 주었다.
목표를 자신이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을 한 배경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은 자연적 학습의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학생은 자신이 스스로 학습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학습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되며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학생은 전통적인 지시와 통제의 학습방법에 심리적으로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습의 선택권을 갖게 되면 학생은 학습에 거의 저항하지 않는다. 자연계에서 모든 생물은 누군가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면 그에 본능적으로 저항한다. 인간도 그렇다. 저항 행동은 때로는 직접적이고 때로는 간접적이지만 어떤 형태든지 목표 달성을 방해한다.
명령과 통제의 학습방법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은 종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질 때 당황스러워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것을 선택해도 코치가 그에 대해 잘했다거나 잘못했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의사결정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수용하고 결정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스스로 선택해서 배운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학습하고 있는 것을 점점 이해해감에 따라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 학습방법은 학생의 태도와 감성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테니스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상생활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한마디로, 학생들에게 학습과 변화에 대한 선택권을 넘겨줌으로써 그들은 한층 더 즐겁고 멋진 삶을 살게 되었다.
책은 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학습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대할 때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은 가장 중요한 태도이다. 학생들에게 학습과 변화에 대한 선택권을 넘겨줌으로서 그들이 한층 더 즐겁고 멋진 삶을 살게 되었다는 말이 참 좋았다. 인생에서 이러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건 정말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인지는 현재 상태를 확실히 아는 것이고, 선택은 장차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또 신뢰는 타고 난 자신의 역량을 믿는 것으로 선택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변화는 고통스러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변화는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타인에 의해 통제되거나 평가받지 않으면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바로 체험experience itself하는 것이다. 셀프1의 방해가 없을 때 변화와 진보는 가속적,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변화는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타인이나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수행해야 하는 변화는 저항이 일어나게 하고, 이러한 저항은 목표 달성을 방해한다. 반면 하고자 하는 의지가 내 안에서 일어날 때, 스스로를 믿으며 목표를 세우고 나만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즐겁게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종종 강한 집중의 상태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무념의 상태에서 플레이하는 것playing in the zone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상태를 셀프2 포커스Self2 Focus 라고 정의한다. 이 수준의 집중에 이르면 노력하지 않아도 최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집중의 구조를 이해한다면 무엇을 하든지 더 좋은 성과를 얻게 되고, 더 빨리 배우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일을 자유롭게 즐기는 궁극의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순하게 집중하려는 훈련만으로는 셀프2 포커스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집중은 잘 유지되지 않으며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이런 학습은 근본적으로 재미가 없으며 길게 볼 때 효과적이지도 못하다.
무리한 집중과 흥미에 의한 자연스러운 집중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차이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 또는 눈으로 파리를 좇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셀프 포커스의 예를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집중의 이면에 있는 순수한 욕구다. 고양이는 파리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아이는 놀이에 빠져 있다. 욕구가 주의를 집중시킨다.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따르게 되면 셀프2 포커스가 자연적으로 일어난다.
스포츠 분야에서 일어나는 셀프2 포커스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공부, 일, 요리, 청소 등 무념의 상태로 몰입해서 무언가를 하다보면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버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억지로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하며 '집중해야지'라고 되뇌이는 것과는 아주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그저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순수한 욕구가 집중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되어준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그의 놀이와 일에 관한 독창적인 책 『권태와 불안을 넘어Beyond Boredom and Anxiety』에서 이 상태를 '플로우 상태Flow State'라고 불렀다.
플로우 상태에서는 내적 순서에 따라서 한 행위가 끝나면 다음 행위가 이어진다. 행위자가 어떤 의도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상태에 있는 사람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한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흘러가는 것을 경험한다. 그 흐름 속에서 그는 자신의 행위를 통제하고 있다. 그 흐름 속에는 나와 내가 아닌 것, 자극을 주는 것과 반응하는 것,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거의 없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에 민감해지고,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화나게 만드는 것에 민감해진다. 욕구가 집중을 이끄는 것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욕구의 선택을 의미한다. 어떤 욕구에게 먹이를 주고, 어떤 욕구를 굶길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셀프2의 자연스러운 욕구에게 먹이를 주면 안정을 얻고 성취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셀프1의 욕구에게 먹이를 주면 자기방해가 강해지고 내적 갈등으로 산란해질 것이다.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여러 감정이 있다. 두려움, 불안함, 지루함 등. 하지만 어떤 감정을 우리가 우선시 할지, 어떤 욕구에 먹이를 주고 어떤 욕구를 굶길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난 안 될 거야' '너무 불안해' 라는 생각에 먹이를 자꾸 주면, 우리는 무기력해지고 쉽게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일단 한 번 해보자'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에 먹이를 주고 실제 행동까지 이어가게 되면, 여러 시도 끝에 이루어낸 작은 성공 경험들이 모여서 결국 더 큰 성공과도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집중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
집중을 유지한다는 것은 집중을 절대로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중을 잃는 순간을 짧게 만드는 것이다. 즉, 집중 훈련의 목표는 빨리 집중 상태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집중을 절대로 잃지 않는 게 아니라, 집중을 잃어도 빠르게 다시 집중 상태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것. 하루의 일과가 망가졌을 때, 계획한 일이 틀어졌을 때도 빠르게 다시 돌아와서 다시 그 다음 단계를 이어가는 것, 포기하지 않고 다시 루틴 안으로 들어오는 것. 회복 탄력성이 중요하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무너질 수 있기에 빠르게 극복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연습을 하자.
중요한 것은 일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이 지루하다고 인정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재미있고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면서도 당신은 평정을 잃지 않는 침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내적 환경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지루하거나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루하고 하찮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주변 환경과 무관하게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정할 수 있다. '저는 지루하고 하찮은 일을 해요' 라고 말하면 '저 사람은 지루하고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일 안에서 이런 즐거움을 찾고 있고, 제가 하는 일은 이런 면에서 중요해요' 라고 말하면 '저 사람은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즐거워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그 일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니 현재 나의 일 속에서 내가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일지 찾아보자. 같은 일이어도 나의 태도가 바뀌면 일에서 배우는 것이 많아지고, 나의 감정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일이 나에게 괴로움과 고통만 주고 있고, 더 지속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면 그만두고 나에게 더 맞는 일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경청의 어려움
타인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대화가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마음속으로 상대의 말에 대꾸하거나 상대의 말에 감정이 자극되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또 상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결론짓고 듣는 척만 할 때도 있다. 그의 말에 동의해야 할지, 또는 반대해야 할지를 대화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미리 생각하기도 한다. 혹시 우리는 자신의 주의를 내적 대화에 거의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셀프1의 통제를 중단시키고 상대방의 말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면 어떻게 될까? 상대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자신이 할 말을 미리 준비해서 머릿속에서 리허설해보는 것이 필요할까? 잘 들으려고 노력하면 상대방은 자신의 이야기에 완전하게 주의를 집중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도 말하고 듣는 데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원활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읽으며 뜨끔했던 부분이다. 개인의 경험이 쌓여가며 점점 더 자신의 생각이 굳어짐을 느낀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자신의 잣대와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타인을 다그치거나 조언을 하기도 한다. '진정한 경청'이라는 게 이루어지지 않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생각과 이야기만을 입밖으로 꺼내고 있는 것이다.
대화할 때 상대방이 내 말에 온전히 집중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듣는 척을 하며 속으로 다른 내적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우리는 모두 느낄 수 있다. 다른 내적 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면, 결국 겉으로 떠도는 피상적인 대화만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정으로 경청하고,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해 대화하면 더욱 깊은 수준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으며 가장 깊게 깨달았던 것은 '상대의 호의를 얻는 방법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였다. '사람들은 모두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호의를 얻고 싶다면 상대에게 질문을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리액션을 하라.'
이렇듯 경청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타인의 말을 들을 때 경청하는 척만 하고 나 스스로 내적 대화를 하고 있진 않았는지 돌이켜보았다. 대화를 할 때 나의 내적 대화를 잠시 꺼두고, 상대방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여 경청하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셀프1으로 듣는 것과 셀프2로 듣는 것의 차이를 하나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다. 어느 회사의 팀 미팅에 참석했을 때다. 팀에는 중년의 관리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녀는 종종 나의 셀프1을 자극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언제나 충고였다. 누군가가 걱정이나 문제점을 말하면 그녀의 입에서는 "이 방법으로 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말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나의 셀프1은 말하고 있었다. '요청받지도 않았는데 충고를 하다니... 참, 마음에 안 드는군.' 그녀는 판단하기를 좋아했다. 그녀의 거슬리는 태도에 신경쓸수록 대화 내용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토의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셀프1은 이미 이렇게 결론지었다. '이 회의는 완전히 시간 낭비야!'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는 회의를 중단했다. 나는 한 참석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미팅에 활발하게 참여했고 미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내가 그 관리자로 인해 매우 불편했다고 말하자, 그도 그녀의 그런 행동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대한 토의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그녀를 압니다. 그녀가 그렇게 충고를 즐기는 것은 부담스러운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에 있는 관리자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며, 또 열정이 있는 분입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 둘은 한 자리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미팅을 했고 전혀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부분도 정말 좋았던 부분 중 하나였다. 나도 다른 사람이 해주는 조언을 들으며 '이 사람은 정말 자신의 생각이 강하다' '내가 조언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나에게 충고를 하려하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위 예시에 나온 미팅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많은 도움을 얻어간 참석자처럼, 그 말들 속에서 내가 배우고자 한다면 배워갈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충고와 조언은 호의와 걱정하는 마음 속에서 나온 것일 거고, 본인이 해온 경험 속에서 유의미한 지혜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미 마음을 닫고,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면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해도 좋지 않게 들린다. 그러나 그 안에서 좋은 면을 보려고 하고, 더 다가가고,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면 같은 상황 속에서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나의 잘못을 인지하는 것, 타인의 조언을 듣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타인의 조언을 듣고 단순히 기분 나빠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 타인의 조언 속에서 배울 것을 찾고 수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얻어가는 게 다를 것이다. 대화, 미팅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통용되는 중요한 개념인 것 같다. 상황이 어떤지보다 그 상황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
우리는 대부분 일을 처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잘 예측하지 못한다. 반복적으로 하는 일의 소요시간조차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익숙하지 않은 일이나 처음 해보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일과 시간과의 관계를 좀더 정확하게 인지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또 우리의 일정 계획은 한결 정확해질 것이다.
2, 3년 전 나는 과중한 업무로 인해 한때 고생을 했다. 당시 나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나는 그 프로젝트들이 왜 지연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수행해야 할 프로젝트의 목록을 작성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률을 발휘한다고 해도 주어진 시간의 두 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가진 시간의 양을 잊고 있었다. 나에게도 하루는 변함없이 24시간인 것을. 그때의 상황을 은행에 저축한 돈으로 비유해보자. 내 시간 계좌에는 240달러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세 사람에게는 100달러씩을, 그리고 다섯 사람에게는 40달러씩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부도를 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 나에게 또 와닿았던 부분이다. 열정이 앞서서 다 할 수 있다며 이것저것 일들을 벌여놓고, 결국 몇개는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포기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 해야 할 일을 타임 테이블로 나누어 계획해두고 일을 시작하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무런 변수가 발생하지 않고 내가 최대의 능률을 발휘하는 상황을 예측하고 시간 분배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아무리 집중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외적인 변수와 예상하지 못한 추가 작업들에 미리 정해둔 계획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일에 소요되는 시간을 객관적으로 직접 측정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이러한 작업들을 할 거고, 내 생각에 A 작업은 2시간, B 작업은 3시간, C 작업은 1시간이면 될 것 같아. 각 작업의 예상 시간을 적어두고, 실제로 작업에 소요된 시간을 측정해보자.' 예상 시간을 늘리거나 단순히 더 빨리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실제 작업에 대한 비평가적 인지를 실행해보았고, 그 결과 내가 계획을 너무 빠듯하게 세우고 있었던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류의 작업을 할 땐 더 빠르게 할 수 있고, 어떤 류의 작업을 할 땐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후 일정 계획을 세우는 방식을 조정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 이젠 그걸 인정하고 중요한 일에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퇴근 후에 운동 한 시간, 공부 두 시간, 작업 한 시간 하고 자야지!' 라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을 때 매번 새벽을 넘겨서 잠을 자고, 피곤한 상태에서 이것저것 하느라 결국 모든 것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도 못했다. 결국 가장 나의 목표와 가까운 하나를 몰두해서,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볍게 적어보려다가 뚱글이 되어버렸지만, 학습을 하면서 생각해보면 좋을 부분이 많아서 개발 블로그에도 작성해보았다. 글을 많이 안 쓰다보니 글쓰기 실력이 부족해진 것 같다. 앞으로 책 기록도 꾸준히 남겨보도록 하겠다. (_ _ )
책을 자세히 적어주셔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마지막의 [시간관리]는 공감이 많이 되었는데요.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섣불리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를 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되돌아봤습니다.
몇 주 전이 딱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ㅎㅎ
나를 알고 적당히 덜어낼 줄 아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19년도 출판된 책이던데, 마주치면 꼭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