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가는 길 - (1) 폴란드에서 통합 시험

주싱·2024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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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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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로 가는 길

위성의 본체와 탑재체를 통합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동료들과 10일간의 폴란드 출장 길에 오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폴란드 브로츠와프로 향하는 14시간의 비행이 괴롭게 느껴진다. 이번 프로젝트는 (여느 프로젝트가 사실 그렇지만)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어떻게 잘 견디며 여기까지 온 우리가 대견하다. 그들과 처음으로 우리 제품을 연동해 보며 감격의 순간이라고 자축해 본다. 드디어 그들을 만났다.

플랫폼인 본체

인공위성은 크게 본체와 탑재체라는 두 서브 시스템으로 이루어 진다. 본체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 비유해 보면 운영체제에 해당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은 다양한 종류의 탑재체가 필요로 하는 위성의 일반적인 기능을 서비스한다. 몇 가지 주요 기능들을 살펴보자. 위성 본체는 첫째, 태양 전지판을 사용해 위성에서 필요로 하는 전기를 배터리에 충전한다. 그리고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를 각 서브 모듈들에게 공급한다. 전기가 없으면 위성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둘째, GPS 신호를 받아 위성의 위치 뿐아니라 현재 시간을 동기화한다. 위성은 지상에 있는 사용자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위성에 전기가 잘 공급되더라도 위성과 지상의 시간이 동기화 되지 않으면 제대로된 미션을 수행하기 어렵다. 셋째, 위성의 자세를 제어한다. 위성은 여러 상황에 따라 여러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태양 전지판으로 전기를 충전할 때는 태양을 지향해야 하고, 지구 촬영 미션을 위해서는 목표 지역을 카메라가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 또한 위성은 발사체로부터 최초로 사출 될 때 흔히 위성이 뱅글뱅글 도는 문제(Tumbling)가 발생하는데 이때 다시 위성이 돌기를 멈추고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도록(De-Tumbling) 위성의 자세 제어를 수행해야 한다. 넷째, 위성 본체는 지상으로부터 명령(Telecommand)을 수신하고, 위성의 미션 수행 결과 이미지 및 수집 데이(Telemetry)를지상국 지상으로 내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위성 본체에도 안테나가 탑재된다. 다섯째, 탑재체와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컴퓨터 시스템의 운영체제는 운영체제 만으로 최종 사용자의 요구를 만족하지 못한다. 운영체제는 애플리케이션을 서비스 하기 위한 인프라와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위성 본체 역시 탑재체가 특정 미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인프라와 그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대략 위성 본체의 주요 기능을 정리해 보았다.

애플리케이션인 탑재체

탑재체는 수행하려는 미션에 따라 다양한 일을 한다. 가장 일반적인 미션은 고객이 관심을 가지는 지구의 특정 지역을 촬영하는 것이다. 고객이 지구를 촬영하는 목적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군사적인 목적을 가지고, 다른 누군가는 비지니스를 위한 데이터를 얻거나, 환경 보호 같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지구의 특정 지역을 관찰하고자 한다.

Falcon 9 (라이드 공유 서비스)

www.spacex.com/vehicles/falcon-9

우리와 협력하는 본체 업체는 폴란드에 있다. 그들의 본체와 우리의 탑재체를 통합하고 시험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우리의 위성을 우주로 쏘아올려 줄 라이드 공유(Ride Share) 서비스인 SpaceX의 Falcon 9에 실어 보내어야 한다. SpaceX의 라이드 공유 서비스는 하나의 위성 발사체에 작은 규모의 여러 위성들을 한 번에 실어 우주로 향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 처럼 Falcon 9은 우주로 날아갔던 1단 부스터를 지상에 다시 랜딩시켜 재사용한다. 이로 인해 발사 비용이 저렴해졌고 발사의 기회도 더 빨리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었다. 지금은 이 같은 SpaceX의 라이드 공유 서비스가 대중화 되었지만 과거에 위성을 발사하는 일은 오늘날과 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일론 머스크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세운 기업의 업적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 없다.

환경 시험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SapceX는 라이드 공유 서비스를 이용할 위성 업체들에게 어떤 기준에 맞는 시험과 결과를 요구한다. 발사체 하나를 여러 위성이 공유하기 때문에 한 위성의 문제는 다른 모든 위성에게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발사체에 실려진 위성들이 우주로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진동이 발생하는데 이때 단순하게는 위성 조립에 사용된 여러 부품들이 분리될 수 있고 (볼트가 풀린다거나) 분리된 부품이 다른 위성들을 망가뜨릴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SpaceX는 자신의 라이드 공유 서비스에 탑승할 위성에 최소한의 기준을 통과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수준에서의 요구일 뿐이다. 실제 위성은 고도 500km 이상의 지구 궤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곳에는 우리가 사는 대기권 안 보다 훨씬 높거나 낮은 온도에 노출되고, 진공 상태에서 컴퓨터가 동작해야 하며, 나쁜 경우 우주 방사선을 맞을 수도 있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면서는 대게 이런 종류의 문제들은 정상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프로그래밍을 한다. 우리는 이런 환경에 위성이 잘 견뎌내는지 시험해야 힌다.

하늘을 나는 꿈

비행기가 이륙하고 잠시 후 구름 위를 지나가는 것을 본다. 신혼 여행 이후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나에게 이런 광경은 신기하다. 어릴적부터 무난한 생각을 하면 자란 나인데 하늘을 바라볼 때면 종종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최근에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는데 30대 정도까지만 해도 하늘을 보다가 문득문득 하늘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엉뚱하게 하곤 했다. 그 꿈이 문득 이루어진 건 아닌지 생각했다.

비행기가 촬영한 영상

이코노미 좌석인데 비행기 내부 시설 중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좌석 마다 스마트 패드 같은게 하나씩 있는데 영화도 볼 수 있고 어떤 메뉴에 들어가니 비행기 외부에서 촬영한 실시간 영상을 볼 수 있다. 그 중 한 대의 카메라는 비행기 아래의 지구를 수직 방향으로 촬영해 주고 있었는데 내가 종종 보던 위성 영상과 흡사해서 유심히 보게 된다. 아, 우리 위성이 우주로 가서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겠구나! 비행기가 촬영해 주는 지구의 모습이 자주 구름에 가리기도 하는 걸 보며 보통 외부에 공개되는 위성 사진은 아주 좋은 조건에서 찍은 사진임을 깨닫게 된다. 생각 보다 지구의 곳곳은 구름에 많이 가려있었다.

위성이 촬영한 영상

비행기가 촬영해 주는 지구 영상을 한 참 보다가 비행기가 찍은 이런 영상도 위성 영상처럼 판매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좋은 성능의 카메라를 사용하면 훨씬 해상도가 높은 영상을 촬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내 비행기가 촬영하는 영상은 지역도 시간도 제한적이란 것을 깨닫는다. 겨우 비행기 항로에 있는 지역을 비행기가 운행하는 시간에만 촬영할 수 있다. 위성은 반면 지구의 모든 지역을 촬영할 수 있다. 위성은 지구의 남극과 북극을 축으로 하는 극궤도를 하루 종일 순회한다. 그래서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는 지구의 곳곳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 스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위성도 한계가 있다. 위성 역시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지역을 실시간으로 찍을 수는 없다. 한 대의 위성이 원하는 지역을 지나갈 때 까지 한 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많은 위성 기업들이 더 많은 위성을 발사해서 가능한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으로부터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원하는 장소를 촬영하려고 한다. 또한 위성이 아무리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를 촬영한다 해도 지구에 데이터가 내려오는 것은 지상국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지상국 또한 충분히 운용하여 가능한 실시간으로 지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눈으로 보는 것

폴란드에 가서 위성 본체의 여러 부분들을 실제로 보고 왔더니 위성의 모습이 더욱 한 눈에 그려지는 것 같다. 전력을 관리하는 EPS(Electronic Power System)의 동작도 시험하고, GPS 모듈과 GPS 위성을 시뮬레이션 하는 모듈도 보고, ADCS(Attitude Determination Control System)가 위성의 자세를 제어하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본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게 참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험난했지만 한 걸음 진보했다

두 회사가 만나서 한 제품을 통합하는 이 시험에는 여러 험난한 과정들이 있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제품을 통합하는 것 만큼 우리의 생각을 통합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우리는 많은 트러블을 겪었고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한 걸음 진보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음 스텝은 회사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나는 이번 폴란드 출장을 통해 굉장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과 팔꿈치를 부딛히며 일하는 경험은 새로웠다. 영어를 더 잘했다면 그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고 그들을 설득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더 넓은 세상과 대화하기 위해 즉시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로 한다.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의 대로가 끝내 열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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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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