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어릴적 꿈은 검사였다. 꿈을 꾸게 된 것에는 복잡한 동기가 있었겠지만 거기엔 내 성격도 한 몫 했을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불의를 보면 피가 끓는다. 세상에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너무 많고, 저지른 죄에 대해 밝혀내고, 증명하며 정의를 집행하는 직업이기에 내 꿈은 검사였다.
이야기 내내 모든 등장인물은 세 타입으로 나뉘어진다. 잘못을 저지른 소년, 피해를 입은 소년, 그리고 어른들. 소년판사의 이야기니만큼 이야기는 잘못을 저지른 소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저지른 죄에 대해 소년범을 혐오하는 소년판사가 열정적으로 올바른 판결을 내리려 애를 쓴다. 마지막으로 모든 케이스의 끝에는 우리가 잊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는 듯 피해를 입은 소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죄는 만들어지는 것인가? 그렇다면 죄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지만 만든 자는 벌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죄를 진정으로 만드는 것은 죄를 만든 인간인가, 아니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인가? 이 첨예한 갈등은 이야기의 처음과 끝까지 함께한다.
참으로 오래된 갈등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모든 악한 행동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환경 탓에 일어나는 것인가? 지난 모든 인간의 문명, 학문 그리고 귀납적 추론으로 미루어본 결과 해당 논쟁의 결론은 대단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귀결되어진다. 누군가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고 여길 것이며, 누군가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고, 또한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살아가며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열역학 제 2법칙 : 고립 자연계의 엔트로피는 역전될 수 없다. 조금 응용하자면, 시간은 되돌려 질 수 없다. 죄지은 자의 동기가 무엇이든, 그가 악해서 혹은 그의 상황이 열악해서 일지라도 절대 바꿀수 없는 것은 있다.
피해를 입은 소년의 피해 사실이 사라지는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자체는 기억 속에, 마음 속에 남으며 피해자와 그 가족은 상처를 다른 기억으로 덮으며 가리려는 노력을 계속하며 살아갈 것이다. 감정은 마음이라는 큰 호수에 이는 물결과 같다. 상처라는 큰 돌을 던지면 감정은 크게 물결칠 것이다. 하지만, 금방 물결은 가라앉는다. 그렇다고 호수 안에 큰 돌이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죄지은 소년은 어떻게 되어야 마땅한가?
죄지은 자를 용서하더라도 피해 입은 소년은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사회는 죄지은 소년을 어떻게 심판해야 하는가? 먼저, 심판이란 무엇인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심판이란 무엇인가? 죗값을 달게 받게 하는 것인가? 다시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인가? 죄지은자를 교화하는 것인가? 사회는 너무 욕심이 많아서 세 가지 모두를 원한다. 죄지은 소년이 죗값을 받도록 하고 싶고, 다시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고 싶으며 죄지은자를 교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보인다. 세 가지 목적에는 쏟을 수 있는 노력이 한정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에 더 많이 투자하고자 하면 다른 항목들은 수준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죄지은자를 교화하기 위해 가벼운 형벌을 내리자면, 앞으로의 일을 방지할 수 없으며, 죗값을 충분히 부여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또, 가능한 한 무거운 형벌을 내린다면, 죗값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는 비난은 피할 수 있으나, 죄지은 자가 교화되었다는 기대를 하기 힘들다.
애초에, 법적 제도가 죄지은 소년을 교화할 수 있는가?
이 물음표 하나가 낳는 갈등은 소년심판이라는 시리즈의 모든 러닝타임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죄의 근원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을 확장시키고자 싶었다. 여기 죄를 저지른 소년이 있다. 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죄를 저지른 소년 본인? 소년의 보호자? 아니면 이 사회 전체?
작가는 죄의 책임이 죄를 저지른 소년 뿐만 아니라 소년의 보호자, 나아가 사회 전체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소년의 성품이 악하여 죄를 저지른다면 죗값을 치루어 마땅하다. 소년의 상황이 좋지 못하여 죄를 저지른대도 죗값을 치루어 마땅하다. 모든 상황이 좋지 못한 이들이 감히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단 그들 뿐만이 아니라 그 상황을 만든, 악한 성품을 치유하지 못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죄를 지은 소년으로부터 미루어보아 사회적 제도를 정비하고 법을 개정하여 반성해야 한다. 죄의 근원은 생각보다 사회 깊은 곳에 있다.
주인공은 열정 넘치는 소년판사이다. 누구보다 진실을 알고자 하며, 누구보다 소년범을 혐오하며, 누구보다 이성적인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 시리즈가 히어로물처럼 모든 소년범을 때려 잡는 그런 완벽한 시리즈였으면 좋았겠건만 그렇지 않다. 주인공도 한낱 인간일 뿐이다. 아들을 잃어 한없이 슬퍼하고, 몸을 혹사시켜 건강이 좋지 않으며, 사회 전체를 움직일 힘도 없는 그냥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기에 굳건한 신념 하나로 그저 믿고 행동할 뿐이다.
사람들은 명확한 것을 좋아한다. 애매한 것은 좋아하지 않고 모순이라면 질색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그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것이 사회이다. 사회는 흡사 매와 비둘기 떼의 합과 같이 행동한다. 매와 비둘기 수가 비슷할 때 매는 비둘기를 잡아먹어 그 수가 줄어든다. 비둘기가 적어지면 매는 먹을 것이 사라져 그 또한 수가 줄어든다. 매가 줄어들면 잡아먹힐 위험이 줄어들어 다시 비둘기 수가 증가한다. 비둘기 수가 증가하면 매 또한 먹을 것이 많아져 그 수가 다시 증가한다.
죄지은 소년에 대한 완벽한 심판은 있을 수 없다
안타깝지만 완벽한 심판은 없다.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인 주인공, 소년 판사는 그저 아등바등하며 최선의 판결을 내리려 애쓸 뿐이다. 불완전한 인간과 그의 집단인 사회는 문제가 생겼을 때 여러 해결책을 시도한다. 개선하고 효과가 있으면 정착시킨다. 하지만, 편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존재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면 또 다시 개선하고 효과가 있으면 정착시킨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기에 인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저 계속해서 시도-편법의 사슬을 이어나갈 뿐이다.
등장인물 중 부장 판사는 자신의 모든 재판에 대해 회고록을 썼다. 왜 더 나은 판결을 내리지 못했는지, 왜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하지 못했는지 모든 재판에 대해 반성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한 그조차 완벽한 모습을 끝내 보이진 못했다. 시리즈 내내 나오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 죄지은 소년, 피해입은 소년, 그리고 어른들의 시선은 죄지은 소년을 향해 있다. 그리고 저지른 죄에 집중한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저지른 죄에서, 죄지은 소년에서 벗어나 피해입은 소년, 그리고 어른들 그리고 그들을 넘어서 사회 전체로 향한다. 소년심판은 죄지은 소년을 심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죄의 근원인 사회 전체에 대한 제도적인, 법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또한, 소년판사인 본인 조차 그 심판의 대상에 포함된다.
소년은 그렇게 심판한다
내 어릴적 꿈은 검사였다. 그땐 완벽한 인생이, 진리가 그리고 정의가 있다고 믿었으며 항상 완벽한 해결책과 판결이 있다고 믿었다. 한때 검사를 꿈꿨던 소년은, 이제 인공지능을 연구한다. 미지의 영역이며 시행착오와 개선 그리고 반성의 연구 영역을 연구한다. 세상에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따라서, 완벽한 인생도 없으며 절대 변하지 않을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으로 해결하려 시도하며 편법의 사슬을 끊어내려 사력을 다할 뿐이다. 참으로 낭만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