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고 있는 책이 너무 어렵다고 지인에게 푸념했다. 고전역학이 지배하는 단순 물질 관점의 세계에서 벗어나 양자역학의 관계적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 설명했다. 내가 관계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최근에 읽은 어린왕자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미 이야기였다. 작은 별에 잘난 척하는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가 있었다. 나중에 어린왕자는 장미보다 아름다운 수많은 꽃들이 지구에 있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작은 별에서 너무나 특별했던 장미가 실은 평범한 존재였단 허탈함 때문이었다. 슬픔에 빠진 어린왕자에게 여우는 말했다. 장미가 특별해서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작은 별의 장미가 특별한거라고. 장미를 바라봤다는 물리적 현상에 표현과 맥락이 더해져 울림과 감동이란 의미가 재탄생하는 순간이였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쏟아지는 인풋을 처리하지 못한 뇌는 종종 과부하에 걸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다보면 그 끝엔 자원 착취와 환경 파괴가 더는 없는 이상을 그리게 되고, 인간은 없어져야 하는 존재고 가장 효율적인 로봇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류와 그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떠올리며 허탈함과 공허함을 느낀다. 허무한 감정을 만드는 원인은 뭘까? 그 기원을 파악하고 물길을 바꾸면 나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면 그리고 관계 기반으로 물질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저자의 주장을 곱씹어 보고, 음미해보며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은 이렇다.
“왜 하필 내가 사는 한국은 사람들이 물질 만능주의, 겉으로 드러나는 스타일과 외모에만 치중하고 내적인 것엔 관심없는 세상일까?”
“빨리빨리 문화, 경쟁 문화, 출산율 0.69, 집값 폭등 시기에 살고 있지?”
“왜 하필 AI는 내가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일거리들을 잠식하려고 하지?”
"수명은 늘어나고, 은퇴시기는 빨라지고, 노후가 너무 불안한 현대인 아닌가?"
“자연에게는 없는 문제다”.
인플레이션이든, 출산율이든, 뭐가 됐든 물리적인 현상 자체는 아무런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물리적 뿌리를 가진 무언가로부터 내 뇌의 관성적인 처리 방식, 문화 등이 첨가되어 주관적인 의미를 만들어 낸다. 세상은 고요한데 내 뇌에서만 난리법석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행이 아니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세상을 온통 검은색으로 덮어버릴 것만 같던 근심걱정들이 자연에게는 해결된 문제일 뿐, 나에게만 국한된 문제라는 해석과 의미를 재창출할 수 있는 것 역시 나라는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