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말하는 감자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신차려 보니 3년차 개발자라는 거북한 타이틀을 달게 됐다. 그리고 짬이 찬 직장인은 뻔뻔해지고 꼰대력이 차오르기 마련이다.
내 인생도 똑바로 못 살면서 다른 사람 인생에 영향끼칠 수 있는 말을 왈가왈부하는 건 조심스러웠는데, 어차피 인터넷엔 똥같은 콘텐츠들이 넘쳐나길래 덜 냄새나는 똥이길 기대하며 나도 글을 쓴(싼)다.
⚠️ 인터넷 콘텐츠는 잘 걸러들어야 똥독이 옮지 않는다. 이 글도 마찬가지.
프론트엔드 개발 '취준'에 맞춰져 있다.
장난치나? 싶은 당연한 말인데 의외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취준생들이 자주 보인다.
특히 프론트엔드 개발의 경우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다보니 어릴적 잊혀진 내 미적 영혼을 되찾겠다는 것마냥 혼을 담아 디자인에 쏟아붓는 사람이 있다. 흥미유발이 더 중요한 개발입문 단계에선 오히려 좋다. 그러나 취직이라는 현실장벽에 부딪혀볼 생각이라면 팀 프로젝트에서 "내가 디자인할게!" 보다는 "너가 디자인 해!" 하는 자세가 유리하다.
개발자 취준생이 디자인에 몰두한다는 건 개발과 디자인 양쪽을 얕잡아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개발이고 뭐고 예쁜 게 더 중요하지" 든 "디자인 까짓 거 내가 취준하면서 좀 열심히 한 거랑 비벼지지 않나?" 든 둘 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쁘다' 는 너무나 주관적인 데 비해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는 어마어마하다. 적당한 CSS 원리를 파악했다면 개발 공부에 집중하자.
게임 개발이나 기획만 열심히 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코딩테스트랑 면접해보면 뽀록난다.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 방향을 틀거나, 일단 취직하고 고민하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잘 만들어진 UI 라이브러리 쓰는 법 배우는 게 낫지 CSS 나 디자인 연구를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점점 프론트가 API서버나 k8s 같은 인프라도 관리하길 원하는 추세에 다른 공부할 것도 많다.
너는 내 wannabe. 하지만 너무 사랑하면 독이 될 수 있다. 팀에 실력자 인턴이 들어온 적이 있는데, 과제는 개발 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이걸 어떻게 이 시간 안에 했지??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그런데 발표 내용의 상당부분이 디자인 시스템 설계를 어떻게 했는지에 맞춰져 있었고, 우리팀이 쓰고 있는 라이브러리와 설계에 관련된 질문에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청난 실력자임에도 합격전환이 되지 않았다.
우리팀이 쓰는 기술이 정답이란 게 아니다. 그저 '취직'을 목표로 한다면 본인의 선호보다 목표하는 곳이 원하는 것을 분석하고 관련 기술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게 좋단 얘기다.
트렌디한 라이브러리나 패러다임을 취업 주력무기로 휘두르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본다.
웹 개발자를 뽑는데 머신러닝, 딥러닝 등 데이터 분석 할 줄 안다고 하면 "와 쩔어요!" 가 아니라 "얜 뭐지" 라는 반응이 나올 확률이 높다. 이건 애초에 트루 러브도 아니다. 그냥 어디서 주워들었거나 발가락 끝만 살짝 담궈보고는 마치 내 것인거마냥 입을 터는 것이다. 그나마 이 유형의 러브는 여기저기서 까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이 유형의 사람이 면접을 통과해 취업이 돼도 문제인 게, 뽑은 회사도 개뿔도 모르는 곳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지원한 분야랑 맞는 거랑 트루러브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취업' 을 하려는 거라면 사랑 고백만으론 부족하다. 증명해야 한다.
왜 증명을 해야할까? 내가 지원한 팀은 사랑하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 기술(라이브러리, 패러다임, 디자인 아키텍쳐 등)을 그 팀이 이미 사용중
이라면 그것을 사용하게 되기까지의 역사와, 실무에서 쓰면서 알게 된 좋은점, 싫은점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있을 것이다. 지원자가 어설픈 사랑고백을 한다면 깐깐한 예비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 어디까지 아나 파고들 수밖에 없다. 팀이 사용중이 아님
이라면 더 곤란할 수 있는데, 일단 취준생이 흔히 오해하는 것이 "내가 지원한 저 팀은 현직 개발자니 기술 트렌드를 다 꿰고 있을거야! 당연히 이것도 잘 알겠지?" 라고 생각하는거다. 아니다. 고3 수험생이 수능을 치는 순간 머리가 리셋되듯, 대부분의 개발자도 취업하는 순간 취준생 때의 열정을 상실한다. 실무적으로도 팀에서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그 패러다임이 필요가 없어 관심이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아직 성숙하지 않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신나게 얘기하면, 정말 아는 게 없거나 관심이 없어서 마치 딥러닝 얘기가 나올 때처럼 반응이 미적지근할 수 있다. 또 변화하는 것에 방어기제가 있는 인간의 본능상 우리팀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대체 기술을 쓰고 있다면, 더 공격적으로 어떤 다른 점이 있어서 사용해야하는지 집요하게 물을 수 있다. 어설픈 사랑은 되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취업공고에서 말하는 '기본기' 는 사실 구직자, 구인자 모두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건 추월차선이지만 좀 재미없고 오래걸리더라도 정도를 걸어 문을 두드리는 게 서로에게 안전한 것이다.
내 성격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굳이 왜 하냐는 쪽에 가깝다. '당연한 얘길 왜 해?' 나 '본인 인생 본인이 책임지겠지' 같은 생각을 기본탑재하고 산다. 그럼에도 이 쓰나마나한 글을 쓴 이유는 그런 내가 보기에도 요즘 분위기가 좀 가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잘못하고 있는 게 없고, 오히려 내 취준 때보다 훨씬 능력있는 사람들이 한 타이밍 늦었단 이유로 좋은 시장을 놓쳐 나같은 꿀빨러보다 자신이 못하다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채찍질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이 글 내용과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채용시장 타이밍이 몇 년 전만큼 좋지 않을 뿐이다. 잘 맞는다는 조건 하에 개발자는 정말 괜찮은 직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이 취준기간을 잘 버텨 같이 꿀빨았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