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디자인 시스템의 MCP 서버를 구축하며 UX의 본질에 대해 다시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떠올린 생각들을 정리한 것으로 AI 시대에서 개발하고 설계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서 줄곧 사람을 위한 설계를 해왔습니다. 사람이 화면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어디서 실수하고 또 어떻게 학습하는지를 확인하면서 인간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설계해온 것이죠.
하지만 최근 디자인 시스템의 정보를 제공하는 MCP(Model Context Protocol) 서버를 구축하며 꽤나 낯선 경험을 했습니다. 설계한 구조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빈번하게 소비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닌 AI 에이전트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에이전트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 인공지능이 더더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보를 조합해가며 사람 대신 판단을 내리는 중간 사용자의 역할을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UX는 사람만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AUX(Artificial Agent as a User Experience)라는 개념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AI 에이전트가 시스템의 의도를 오해 없이 이해하고, 도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계적 사용자 경험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구축한 디자인 시스템의 MCP 서버도 AUX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활용하기 편한 UX를 고민하며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컴포넌트와 디자인 토큰들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정보의 구조와 관계를 설계하는 것이 MCP 서버의 본질인 셈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에이전트가 더 쉽고 정확하게 정보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들을 구조화하고 조합하는 작업은 겉보기에는 사람을 위한 UX 설계와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두 UX는 전혀 다른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UX가 사용자의 감각과 경험을 전제로 해석을 돕는 설계라면 AUX는 해석 자체를 최소화해 오해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설계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구현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용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 사람의 UX | 에이전트의 UX(AUX) |
|---|---|
| 감각, 맥락, 경험 기반 | 구조, 제약, 규칙 기반 |
| 애매함을 유연하게 해석함 | 애매함을 멋대로 해석함(할루시네이션 발생) |
| 탐색하며 이해를 확장함 | 탐색 자체가 비용이자 오류 |
| 일관적인 것은 편한 것 | 일관적인 것은 안전한 것 |
| 감각, 시각적 애매함이 없는 것이 좋은 UX | 의미적, 논리적 애매함이 없는 것이 좋은 UX |
| 오류는 유연하게 대처됨 | 오류는 증폭됨 |
이렇게 놓고 보면 사람의 UX와 AUX는 마치 서로 반대편에 있는 개념처럼 느껴집니다. 사람의 UX는 유연함을, AUX는 엄격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구분은 어디까지나 단순화된 프레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대비는 UX와 AUX의 본질적인 차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설계 전략의 차이에 가깝습니다.
사람을 위한 UX에서 "유연함"은 종종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사용자가 스스로 맥락을 보완하고, 애매함을 경험으로 메우며,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유연함"이 항상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인터페이스를 두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면서 일관되지 않은 사용 경험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AI 에이전트에게 이 여백은 더 위험합니다. 에이전트는 애매함을 맥락으로 보완하지 않고 가장 그럴듯한 방식으로 추론합니다. 그 결과는 유연함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이며, 창의성이 아니라 할루시네이션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AUX는 UX의 반대편이 아니라 UX가 그동안 명확히 말하지 않았던 전제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존재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UX는 UX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이상을 극단적인 조건에서 드러내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었기에 묵인되던 애매함과 해석의 여지를 에이전트는 그대로 증폭시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AUX는 더 이상 새로운 UX의 유형이 아니라 UX의 본질을 드러내는 가장 냉정한 사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AUX는 가장 극단적이고 서늘한 UX입니다.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거나 불친절해서 서늘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에이전트를 위한 UX는 가장 친절하기 때문에 가장 서늘합니다.
AUX는 감정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명확히 나눕니다. 이 UX에는 “아마도”, “어쩌면”, “이쯤이면 이해하겠지” 같은 여백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모든 정보는 주관적으로 해석되기보다 명료하게 판단 가능해야 하며, 모든 인터페이스는 이해되기보다 오해되지 않아야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서늘함이 UX의 바깥이 아니라 오히려 UX의 가장 안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위한 UX에서도 우리는 오랫동안 일관성, 명확성, 예측 가능성을 좋은 UX의 조건으로 이야기해왔습니다. 다만 사람은 그 조건이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 보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불완전함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AUX는 그 보완 가능성을 제거합니다. 유연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UX의 불완전함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UX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일관성, 명확성, 예측 가능성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AUX는 UX와 같은 방향성을 공유하며, UX의 전제를 숨기지 않는 가장 극단적이고 서늘한 UX입니다.
AUX를 가장 서늘한 UX라고 표현했지만 이 서늘함은 새로운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UX가 오랫동안 말해왔지만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던 전제가 AUX라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전제는 사실 접근성 논의에서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종종 접근성을 더 많은 사용자를 포용하기 위한 설계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실제 접근성 설계의 과정은 무조건적으로 자유도를 늘리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접근성은 사용자가 상황에 맞게 해석하길 기대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설계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포용의 진정한 의미는 확장보다 폐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면 접근성은 사람을 해석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해석하면 안되는 존재로 가정하고 설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고력과 창의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성과 주관적 상상력을 존중하기 때문에 사고의 파편적 확장에 제한을 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UX는 대상이 누구든 해석의 여지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수렴해야 합니다.
혹자는 스크린리더 사용자, 스위치나 키보드만 사용하는 사용자, 인지 장애가 있는 사용자나 노인을 위한 디자인은 분명히 기존 UX를 확장하는 작업이며, 이를 어떻게 폐쇄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접근성을 고려한 설계가 실제로 확장하는 것은 자유도가 아니라 접근 경로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스크린리더를 위한 UI는 시각적 표현을 추가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구조를 더 엄격하게 드러내도록 요구합니다. 스위치 사용자를 고려한 인터페이스는 입력 방식을 무한히 늘리는 대신 모든 기능이 일관된 규칙과 순서로 접근 가능해야 함을 강제합니다. 즉 접근성 설계는 아무 방식으로나 사용해도 된다는 확장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더라도 같은 의미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설계인 것입니다. 이는 해석의 여지를 넓히는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해석의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의 확장입니다. 더 많은 사용자를 포용하기 위해 인터페이스가 허용하는 애매함을 줄이는 선택인 셈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접근성은 개방적인 UX가 아니라 폐쇄적인 확장에 가깝습니다. 규칙을 느슨하게 만들어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더 명확하게 만들어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입니다. 그래서 접근성은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일관성과 보편성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가장 기계적인 설계가 가장 보편적인 설계라는 말은 이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에이전트에게도 친절한 UX는 감각적인 설명이 아니라 일관된 구조와 규칙으로 이루어진 UX입니다. 다만 사람은 그 규칙이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 보완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 불완전함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설계하고 있는 걸까요. 유연함일까요, 예측 가능함일까요. 이번 MCP 서버 작업으로 AUX를 고민하며 느낀 것은 이 질문들이 서로 배타적이지는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람의 UX와 인공지능의 UX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서로 다른 조건에서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둘 모두 해석의 여지를 줄이고 일관적이며 예측 가능한 경험으로 수렴해야 한다는 지향점은 동일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설계하고 있는 것은 더 친절한 화면과 정보 구조, 더 똑똑한 에이전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과 인공지능이 같은 규칙 위에서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 해석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구조, 그리고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을 설계 단계에서 떠안는 인터페이스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UX를 고민한다는 것은 사용자를 다시 정의하는 일이 아니라 해석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생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좀더 개발자스러운, MCP 서버 구축 일지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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