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02. 언더테일의 내러티브는 왜 혁신적인가?

Game Design Lab·2025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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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테일은 인디 게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게임이다. 1인 개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관련 논의가 오가고 2차 창작물이 쏟아져 나오는 등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팬들이 언더테일을 인상 깊은 게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언더테일을 열광적으로 즐겼지만, 이 게임의 성공 비결은 전통적인 RPG 장르의 흥행 공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령, 혁신적인 고화질 그래픽, 화려한 디자인, 방대한 선택지 시스템과 같은 요소들은 이 게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더테일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게임 플레이를 선보이며 플레이어들을 성공적으로 끌어들였는데, 여기에는 언더테일만이 가진 독창적인 내러티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글에서는 언더테일의 내러티브가 어떤 방식으로 기존 게임의 관습을 탈피하고 혁신적인 구조를 갖추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수많은 플레이어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게 만들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 스포일러 주의 ⚠️

이 글은 게임 언더테일의 스토리와 엔딩에 대한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모든 엔딩을 경험한 후에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1. 적응형 스토리텔링

언더테일에는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중립, 불살, 몰살이라는 세 가지 루트가 존재한다. 플레이어가 가장 먼저 접하는 중립 루트를 완료하면, 플라위가 등장하여 이 게임 세계에 더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암시한다.

이후 플라위는 플레이어에게 '아무도 죽이지 않고 엔딩을 보는 것'이라는 불살 루트의 조건과, 심지어 '해피 엔딩마저 리셋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 메타적으로 조언하며 게임을 재시작하고 다음 루트를 탐험하도록 유도한다.

주목할 점은 이 불살 루트와 몰살 루트가 단순한 스토리 분기에 그치지 않고, 각 서사 방식에 부합하는 게임플레이 형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불살 루트

불살 루트에서 플레이어는 적들을 물리치는 대신 '자비를 베푸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로 인해 전투 방식은 전통적인 RPG의 '공격' 중심에서 특정 행동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퍼즐 게임'의 형태로 변화한다. 공격을 통한 승리가 불가능해지면서,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어떻게 설득하고 구원해야 할지 전략적으로 탐색하고 고민해보게 된다.

중간중간 캐릭터들과 우정을 쌓는 과정 역시 작은 퍼즐이나 미션 형태로 제공된다. 이런 방식으로 게임은 전투의 템포를 늦추고 플레이어가 서사에 깊이 몰입하고 캐릭터들과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준다.

특히 최종 보스인 아스리엘과의 전투에서는 플레이어가 패배하여도 전투를 끝까지 이어나갈 수 있는데, 이는 플레이어의 감동적인 서사 경험을 ‘게임 오버’라는 시스템적인 요소로 방해하지 않으려는 디자인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몰살 루트

반면, 몰살 루트에서는 정반대의 플레이 형태가 요구된다. 플레이어가 각 지역의 모든 몬스터를 '몰살' 해야만 스토리가 진행되며, 이에 따라 몬스터와의 전투가 게임플레이의 주요 메커니즘이 된다.

이 루트에서는 전반적인 플레이 과정 속에서 전투를 제외한 다른 요소들이 점점 사라진다. 플레이어가 괴물을 몰살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노우딘부터 모든 NPC들은 자취를 감춘다. 이는 불살 루트에서 캐릭터들과 우정을 쌓기 위해 중립 루트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미션들까지 수행하는 경험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플레이어의 경험에서 전투를 제외한 나머지 내러티브 요소들을 삭제하는 결과로 작용한다.

이렇게 전투에만 몰입한 플레이어에게 '불멸의 언다인''샌즈'가 차례로 등장하는데, 이들과의 전투는 다른 루트보다 현저하게 높은 난이도를 보여준다. 이 높은 난이도는 단순히 레벨 디자인적 요소를 넘어, 플레이어가 괴물들을 몰살하는 '악당'이라는 서사적 위치를 상징한다. 이 보스들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며 주인공을 막아서는데, 이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윤리적 피드백으로 작용한다.

게임플레이를 통해 완성되는 서사

이처럼 언더테일에서는 불살 루트와 몰살 루트의 게임플레이 방식이 스토리텔링의 방향과 완벽한 시너지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과 서사에 깊이 몰입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플레이 방식 자체에 개연성과 윤리적 의미를 부여한다.

궁극적으로, 언더테일은 스토리텔링과 게임플레이라는 게임이 줄 수 있는 두 가지 핵심 재미 요소를 각각 상징하는 서로 다른 분기를 만들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는 혁신적인 서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2. 메타픽션

‘메타픽션’은 허구적 이야기나 작품을 의미하는 ‘픽션’에 일정 수준의 자기 인식을 갖는 작품을 뜻하는 ‘메타’를 결합한 용어다. 이는 작품 스스로가 '허구'임을 인지하고, 이야기 내부에서 그 사실을 노출하며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언더테일은 이러한 메타픽션 기법을 활용하여 전통적인 게임 시스템을 서사의 핵심 요소로 승격시키며, 이를 통해 플레이어의 행동에 깊은 윤리적 책임감을 부여하고 기존 장르적 관습을 뒤집는 반전을 보여준다.

시스템 기능의 서사적 활용

일반적인 RPG 게임에서 세이브와 로드는 플레이어가 실패를 만회할 때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에 불과한 시스템적 기능이다. 그러나 언더테일에서는 이 기능들이 주인공이 가진 능력인 '의지'와 관련된 것으로 묘사되며, 서사의 핵심 요소로 승화된다.

특히, 플라위와 샌즈 같은 캐릭터들은 플레이어가 시간을 되돌리거나 저장된 시점으로 돌아오는 반복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해 이를 드러낸다. 이들은 이전 회차의 행동을 언급하거나, 게임 상황을 저장하고 로드하는 메커니즘을 오히려 역이용하여 전투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샌즈와 플라위는 ‘플레이어가 게임 외적인 요소로 게임 세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게임 내부에서 드러내는데, 이는 제4의 벽을 허물어 현실과 게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와 함께 실패를 겪어도 끈기 있게 다시 시도하는 플레이어의 행위까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인정하며, 그에 맞춰 수차례 플레이어를 막아서는 샌즈나, 플레이어처럼 여러 번 게임을 경험해본 플라위가 등장해 플레이어의 경험과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이룬다.

장르의 해체와 윤리적 책임

나아가 언더테일은 전통적인 RPG의 문법 자체를 메타적으로 공격하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이 던지는 도덕적 질문에 관해 심도 있게 고민해보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RPG 장르에서 자주 접하는 수치를 얻는데, 게임 후반부에 이 수치들이 전통적인 의미가 아닌 다른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반전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적을 처치해 얻는 EX집행 점수(Execution Points)로, LV폭력성 레벨(Level of Violence)로 드러난다. 이는 플레이어가 성장을 위해 당연시했던 ‘몬스터를 처치하는 행위‘를 윤리적 악행으로 규정하며, "RPG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을 해쳐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특히 '몰살 루트'의 엔딩을 본 이후에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리셋하더라도 그 흔적이 영구적으로 남아 이후의 모든 엔딩의 순수함을 훼손한다. 이런 방식으로 언더테일은 다른 게임들에서 ‘리셋’이 주는 면죄부를 거부하고,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이 게임 세계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현실적인 책임감을 보여준다.

언더테일은 이와 같이 여러 방식으로 메타픽션을 활용하여 '언더테일이라는 게임 속 서사''그것을 조작하는 플레이어의 행동과 윤리'라는 두 차원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낸다. 이 과정에서 게이머는 단순히 한 작품의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게임 속 세계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는 윤리적 주체로서 함께 게임에 참여하고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플레이어는 언더테일이라는 게임 속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여 주체적으로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결론

결국 언더테일의 혁신적인 내러티브는 단순한 잘 짜인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요소들을 해체하여 모든 요소가 하나의 주제 아래 최대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재조립한 결과물이다.

언더테일은 '적응형 스토리텔링'을 통해 플레이어의 선택을 세 가지 주된 루트(중립, 불살, 몰살)로 나누고, 각 루트에 걸맞은 상이한 게임플레이 경험(퍼즐 혹은 학살)을 제공함으로써 스토리와 게임플레이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

여기에 '메타픽션'이라는 장치를 추가해, '세이브', '로드', '리셋', '레벨 업'과 같은 게임의 근본적인 시스템마저 서사의 핵심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플레이어의 반복적인 시간 조작 행위와 폭력적인 선택(몰살 루트)을 캐릭터들이 인지하고 반응하게 만들어 "게임을 리셋한다고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강력한 윤리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플레이어가 게임 속 세계에 대한 영구적인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언더테일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하는 행위란 무엇이며, 작품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의 소비자였던 게이머를 게임 세계를 함께 경험하는 윤리적 주체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독창적인 내러티브 구조야말로 언더테일이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플레이어에게 깊은 성찰과 감동을 안겨준, 가장 혁신적인 인디 게임 서사로 평가받는 핵심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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