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말을 좋아하십니까?

Memory With Me (메윗미)·2024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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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감성은 무섭습니다.

여러분들은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사랑해, 보고싶었어, 고마워 등등 들으면 따듯해지는 말들을 좋아하시나요?
기쁨(Joy), 슬픔(Sadness), 두려움(Fear), 혐오(Disgust), 분노(Anger) 등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오늘은 제 이야기와 제 감정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또라이 입니다.

저는 또라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분명 미쳤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저도 처음 자각했을 때, 제가 미친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요 :)

물론 저도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 지경(?)이 된 계기에는 전설의 박교수님이 계십니다.

박교수님 잘 계시죠?

통신을 다루는 학과에서는 신호 및 시스템 이라는 과목을 필수적으로 들으셨을 겁니다.
제가 재학 중인 대학교에는 이 신호 및 시스템를 항상 맡아서 강의하시던, 지금은 정년 퇴임을 하신 저의 지도 교수님이신 박교수님이 계십니다.
이 교수님은 흔히 말하는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교수님 Top 3 안에서 한번도 빼놓지 않고 1등을 맡아오신 그런 분이십니다.

작년에 저도 신호 및 시스템 과목을 들어야만 하는 아주 슬픈 상황에 처했었습니다.
신호 및 시스템 과목은 무시무시한 필수 전공 과목이었기 때문이죠...
저에게는 2가지 선택권이 주어졌습니다.

  1. 박교수님의 신호 및 시스템을 듣는다.
  2. 다른 교수님의 신호 및 시스템을 듣는다.
  3. 자퇴를 한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나요?

저는 1번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스스로에게 남들이 피하고 꺼려하는 어려운 과제를 주고는 대뜸 이렇게 속삭이곤 합니다.

"넌 이것도 못하면,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는 어떻게 버틸 생각이야?"

저 당시에도 저는 같은 질문을 저에게 했습니다.
"너가 박교수님이 무서워서 피한다면, 앞으로 무서운 일은 다 피하겠네?"

그 순간...
고민도 안 하고 저는 박교수님의 신호 및 시스템을 수강 신청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강 첫날 후회했습니다.

훗날 이것은 제 인생의 선택이 됩니다.

개강 첫날, 신호 및 시스템 강의는 인터넷 강의로 대체 되었습니다.

인강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만나서 반갑다.

이걸 보고있다면, 너는 수강신청을 실패한 손이 느린 학생이거나, 이걸 원해서 듣는 또라이 일것이다.
모든 강의는 동영상으로 대체된다.
강의가 있는 날은 무조건 그 주에 올라간 동영상에 대한 질문만 받는 날이다.

질문이 없다면, 오지 말고, 풍경을 보며 산책을 해라.
그게 더 너에게 가치있는 3시간일 것이다.

너희에게 출석과 같은 초등학생들에게나 어울리는 억압은 하지 않겠다.

어차피 너희에게 내가 성인군자 만큼의 좋은 말을해도, 그것을 흡수하는 것은 너네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그러니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너희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셨습니다.

다음 만나는 날까지 무조건 전부 Back To The Future Part II를 보고 수필로 A4 용지 2장짜리 감상문을 써와라.

그 순간...
저는 이 강의를 수강 신청한 저를 원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망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1. 또라이라는 험한 단어를 학생들에게 서슴없이 사용하시는 모습
  2. 초등학생들에게나 어울리는 억압은 싫어하시면서 초등학생들에게나 어울리는 수필 감상문을 과제로 요구하시는 모습

이 두 모습 때문에 저는 그 분을 교수라는 고귀한 직업을 가진 분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 강의만 듣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수강신청을 한 저로서는 이 악물고 싫어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억지부리기 위해 말도 안되는 과제를 주는 것 입니다.

  1. 중학교 중간고사 일주일 전, 오래 달리기에 대한 정보를 A4 용지 4장 분량의 수필로 적어 오라고 하신 체육 선생님
  2. 고등학교 때, 독후감을 A4 용지 5장 이상 써와야만 생기부 독서란에 넣어주신다고 하셨던 담임 선생님
  3. 대학교 중간고사 시즌, 그리스도와 문화 책을 읽고 독후감 8장을 써오라고 하신 교양 교수님
  4. 대학교 기말고사 시즌, 기말 보고서를 20장 제출하라고 하신 전공 교수님

하나하나씩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가 저 강의만 듣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과제를 받으면,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과제를 해갑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짓을 해갑니다.

  1. 오래 달리기에 대한 정보를 A4 용지 12장 분량 수필로 작성해서 가져감.
  2. 독후감을 A4 용지 8장 이상, 8권을 써감.
  3. 그리스도와 문화 책을 구매하여 읽고, 독후감으로 24장을 제출함.
  4. 기말 보고서를 48장 작성하여 제출함.

정말 트집 하나 못 잡을 만큼의 퀄리티와 양으로 당신이 원하신 것이 이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뉘앙스로 과제를 해갑니다.
그러면, 반응이 크게 2개로 나뉩니다.

  1. 미안하다 or 화났니? 라고 물어보시는 분
  2. 정말 감동 받았다고 극찬하시는 분

1번이라면, 그런게 아니라고 사과를 드립니다.
2번이라면, 그러니 다음 학기 애들부터는 이런 과제 제출 고려해달라고, 이런 과제를 요구하시면 애들이 힘들어합니다... 라고 정중히 말씀드립니다.

이번 신호 및 시스템 과제도 당연히 A4용지 3장으로 제출했습니다.
3장이면 적을 수도 있지만, 줄을 매우 촘촘히 쳐서 아마 일반적인 글씨 크기로 작성했으면, A4용지 4장은 넘게 나왔을 겁니다.

교수님도 또라...2....

제 과제를 보신 박교수님은 기존 교수님들과는 다르게 저에게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너 또라이구나?

기분 나빴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가 반응을 하지 못하면서 생긴 어색한 침묵이 10초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말씀을 이어나가셨습니다.

[박교수님]

애들아.
이런 또라이들이 성공한단다.

OO아, 너는 이 강의를 원해서 수강신청 했지?

너는 진짜 제대로된 또라이야.


[강의 같이듣는 제 친구]

교수님.
근데 또라이라는 단어가 저희가 듣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박교수님]

왜?
또라이는 엄청 좋은 말이야.

얘도 또라이
나도 또라이
어쩌면 너도 또라이

세상은 또라이들이 바꾼단다?

우리 같은 공학도들에게는 시간이 많이 주어져있지 않아.
한정된 시간에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록 돈을 많이 받는다.

근데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그렇게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그래서 얘 같은 또라이들이 필요해.

이렇게 고집스럽게 남들이 2장을 요구할 때,
아득바득 이렇게 3장을 깨알같은 글씨로 써오는 이런 또라이 아주 좋아.

그 순간 저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라이가 되었습니다.

도 또라이

박교수님 밑에서 한 학기 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이 블로그에 적을 수 없을 만큼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나에 대해서 더욱 잘 알게된 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저는 대충대충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끝장을 봐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절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일 매일 노력이라는 시멘트행복이라는 물을 섞어 콘크리트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공학에 한 획을 그을 사람입니다.
저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사람입니다.
저는 입니다.

저는 또라이 입니다.

여러분들은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리처드 파인만


2024년 02월 21일
어느샌가 따듯해진 나의 집, 나의 보금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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