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지만, 나는 설렌다.
지금부터는 코드스테이츠에서 코딩 공부를 하게 된 나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서른 살이 넘으면 끝날 줄 알았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안고 있지만, 은퇴 후에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며, 자격증도 따고 박람회도 다니는 부모님을 뵈니, 나의 현재 나이와 상황에서 이 고민이 '직업, 진로' 등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생애주기에서 항상 고민하는 숙명적인 주제가 아닌가 한다.
어릴 적부터 모두가 왜 똑같은 길을 따라가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내가 왜 이걸 하는지' 스스로에게 그 이유를 설득하지 못하면 잘 움직이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도 부모님을 좋아하는 모범생 타입이고, 안 했으면 안 했지 어설프게 하는 건 싫어서 굳이 굳이 모든 과목에 '내가 왜 이 과목을 공부하는지' 이유를 붙여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곤 했다.
예컨대, 언어 과목은 우리말이니까. 세계 지리는 나중에 여행 다니며 써먹으려고. 한국 지리와 근현대사는 우리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서. 영어는 더 큰 무대에서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 생각을 주고 받기 위해. 나에게 특화된 이 방법은 나에게 잘 먹혔다.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다면, 그 확신은 곧 슬럼프나 매너리즘에서 나를 구해주는 구원자가 된다.
20대 나의 모든 고민은 치열하게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 사람인지, 내가 지켜왔고, 지켜나가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지, 나의 어떤 부분을 더 성장시키고 싶은지'. 감사하게도 여러 대륙에서, 나라들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여행해 볼 기회가 나에게 많이 허락되었다. 갓 성인이 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백지와 같았던 나는 스폰지처럼 다양한 사고방식을 흡수하며 오늘의 나를 빚어내었다.
얼마나 백지였냐 하면, 처음 유럽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친구들이 말하는 하우스 뮤직이 집들이나 집에 초대해서 트는 음악인 줄 알았다. 그러다 뉴욕 재즈 공연에서 내가 재즈를 제법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깨닫고, 호주에서는 내가 대자연과 식물을 가까이 할 때 마음의 큰 평화를 얻는다는 것도 알았다. 뉴욕에서 인턴을 하고, 미국 바이어를 상대로 해외영업을 하고, 호주에서 이민을 고려하며 살아보니, 사람들 사는 모습은 어딜가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 그래서 이제는 현재가 아닌 곳을 선망하지 않으며,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법을 배웠다.
난데없이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어제 친구와 오랜만에 문자를 주고 받는데, 친구가 이전에 하던 일로 재취업을 하려고 학원에서 기초부터 다시 배우면서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 하기에. 요즘 부트캠프에 집중하고 있는 나는, 친구의 고민에 깊이 공감하며 '전망, 흥미, 적성' 이 셋이 크게 밸런스가 어긋나지 않으면 계속 해보라고 말해주었다.
항상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하는 나이기에, '내가 지금 왜 코드스테이츠에서 코딩 공부를 하고 있는지' 나도 나에게 자주 묻는다. 그리고 친구에게 한 말이 줄곧 나의 대답이었다. 항상 몸 담아보고 싶었던 IT 직군에서, 호주에서 혼자 독학하고 밋업에 나가며 꾸준히 이어온 흥미와, 어설프게 일하는 건 싫어하는 내가 아직 나가 떨어지지 않은 걸 보니 적성도 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해외영업 일을 좋아했는데, 매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 좋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stakeholder 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이 매번 새롭고 재밌었다. 바이어와, 해외 공장 임원분들과, 해외 현지인 직원들과, 나의 팀원들과, 다른 부서의 동료들까지. 그래서 제품이든 서비스든 프로덕트를 만들어내는 일은 나의 흥미와 적성을 사로잡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보니 이어갈 수 없는 경력이라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코딩을 배우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계속 내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가고 싶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분야로 커리어를 옮겨가기로 숙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컴퓨터? 비전공자? 코딩? 수학? 이과? 이런 단어들이 특히 문과생에겐 다소 무섭게 다가오지만, 코딩을 '프로그래밍 언어' 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직 배우는 중이지만, 언어를 배우는 느낌이라 재밌게 공부하고 있다. 매트릭스에 나오는 11010101 이런 게 아니고, 사람 말에 가깝게 진화된 프로그래밍 언어. 그리고 유치원 시절부터 논리연산 문제는 좋아했기에, 잘 모르는 것도 붙들고 있으면 어떻게든 이해를 하고 만다.
더불어 사람 구경을 좋아하고, 뭐든지 '왜?' 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아하는 나는 꾸준히 UX/UI에 대해 관심이 있고 - 사실 처음 밋업을 나간 곳은 UX 세미나였다 - 드러난 현상 아래 감춰진 원인과 동기들을 탐구하기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내가 짜는 코딩 로직을 스크린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외에, 서비스가 사용 될 시나리오와 그 속에서 사용자의 경험을 최적화 하기 위한 고민이 함께 녹아있는 프론트엔드 직군은 내게 매력적이다.
30대가 된 나의 고민은 나에서 주변으로 확장되었다.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던 환경과,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많은 기회들은 내가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라서 주어졌던 것은 아니란 것을 안다. 내 안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발굴하고 연마해서 주변을 이롭게 하고, 더불어 나와 주변 모두가 행복함으로 인해 행복한 사람이길 바란다. 나는 그런 길 위에 있고, 그래서 이 길이 나를 데려다 주는 곳이 늘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