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최민석·2023년 1월 24일
0

나는 올해 개강하면 3학년이 된다.

내가 소프트웨어학과에 진학한 것은 복합적인 작은 이유들이 합쳐진 것이고,
인생의 어떤 거대한 기념비적인 사건이 야기한 결과는 아니었다.

사족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독백형식으로 풀어보려 한다.

그냥 어릴때부터 게임이 좋았다.

유치원에 갔다와서 아버지와 함께하던 크레이지 아케이드(내 닉네임은 '내이름민석이' 였고, 아버지 닉네임은 '민석이아빠다'였다.), 메이플스토리,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시작한 카트라이더, 카운터 스트라이크, 서든어택(FPS는 내 취향은 아니다. 단지 친구들이 모두 하니까... 따라 시작한 거였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고 아버지가 가장 즐겨하시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알게 되었고, 중학교 1,2학년을 내리 그 게임에 빠져 지냈다. 교내 게임 대회에서 은상도 탔다. 아마 이것이 내 개발에 대한 첫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때 했던 로봇제작 방과후 활동이 있긴 하지만 별 흥미는 없었던 것 같다.)

게임을 하는 것과 개발이 무슨 상관이냐고?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에는 유즈맵이라는 게임 타입이 있었다.

기본적인 게임 방식인 엘리전이 아닌, 유저들이 직접 만들고 탄생시킨 게임 모드들을 플레이 할 수 있는, 지금으로 따지면 로블록스같은 스타 내부의 게임 방식이었다.

포커디펜스, 술래잡기, 톰과 제리,벌처 컨트롤 등등 많은 유즈맵이 있었고 나는 이 방대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도 직접 유즈맵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이 때가 중2였을 것이다.

영어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일개 중학생이 그것을 배우는 과정은 쉽지가 않았다.
일련의 코드 대신 '트리거 - 이벤트'의 과정으로 프로그래밍(나는 이것이 프로그래밍이라고 생각한다.)을 해야 하는 유즈맵 제작 과정에서 나는 온갖 유즈맵 관련 네이버 블로그를 뒤져보고, 지식인에 질문 글도 올렸으며, 유즈맵 제작자 카페에도 가입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즈맵에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고, 그것을 따라 구현해보기도 하고 내가 직접 만든 유즈맵을 테스트하고, 오류를 고쳐갔으며, 다른 유저들이나 내 동생과 내 맵을 플레이 하기도 했다. (E2E?)

맵을 직접 구현하는 과정 자체도 정말 재미있었지만, 내 맵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재밌다는 반응을 내비칠 때의 희열은 주말 내내 나를 컴퓨터 앞에 앉게 만들었다.

정말 온갖 게임을 다 만든 것 같다.
RPG, 리듬게임, 디펜스, RTS, TCG, 스토리게임, 공포게임, 단순 컨트롤게임 등등...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재밌어 할까? 사람들이 내 맵에 빨리 질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 과정에서 컨텐츠 소모속도를 줄여야한다는걸 깨달아버렸다.)

과거의 흔적들🔽

이 때 내가 얼마나 이것에 빠져 살았냐면, 유즈맵에 넣을 음악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Goldwave 사용법까지 따로 익히고 EUD맵을 제작해보고 싶어서 Hex에디터 사용법까지 공부했었다.

아마도 이 때쯤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큰 울림을 주었던 것 같다.
'게임을 하는 사람보다는 만드는 사람이 되는게 어떻겠냐' 라고.

그러다 이 열정이 식게 되었는데 원인은 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학업에 열중... 때문은 아마 아니었을 것 같고, 스타 유저수 감소 혹은 다른 게임에 더 흥미가 생겨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게임이기에 나는 가끔씩 귀성길에 오르곤 했다. 중학생때 만든 맵을 성인이 돼서도 가끔 수정하고 몇 안되는 유저들과 함께 즐기기도 했다.

누가 말했던가 인간의 쾌락의 원천은 '소비'와 '창조'에 있다고, 가난하고 용돈도 많지 않았던 나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창작활동만은 어떤 형태로든 꾸준히 했던 것 같다.

유즈맵 개발을 멈추고 난 이후에도,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천성이 무언가를 만드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반수와 군입대 등등으로 인해 창작활동과 거리가 멀어져 갈 즈음, 역설적이게도 군대에서 다시 내 욕구가 불타올랐다.

하필, 군대에서...

중학생 때와 달리 어느정도의 프로그래밍 지식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IDE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트라넷에서는 사실 많은 프로그래밍 언어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파이썬, 자바는 물론이고 온갖 마이너한 언어들도 다운로드가 가능했었다.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는데, 간부의 허가가 있어야 했고 일개 병사가 개발과 관련 없는 부대에서 그것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했다간 사단 정보과에서 연락이 올 수도 있었기에 위험한 도박은 하고싶지 않았다.

작전과에서 작전병으로 근무했기에, 개인 컴퓨터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정해진 범위 내에서) 핸드폰을 받는 저녁시간과 주말을 활용해서 VBA(Visual Basic for Applications)를 공부했다. 왜냐하면 컴퓨터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엑셀(정확하게는 한셀)에서 VBA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군 인트라넷에서는 VBA관련 정보들이 많이 없어서 어떤 공군 친구 아이디로 공군 인트라넷에 들어가 병사들의 관련 게시글을 보고 VBA에 대해 공부했다.

그다지 어려운 문법이 없었기 때문에 금방 익혔고, 나는 여러가지 게임을 만들었다. (사실 당시에는 그걸로 만들 수 있는게 게임 말고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지 못했다.) 테트리스, 레이싱게임, 지뢰찾기, 지렁이키우기 등등

그러다 군 업무와 관련해 쓸 수 있을 법한 기능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당시 정보과장님께서 엑셀로 적 침투 시뮬레이터? 같은 것을 만드셨는데, (자세하게 설명하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을 것 같아 간략하게만 설명함.) 거기에 VBA를 대입해서 더 환상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전과장님께서도 밀어주셔서 나는 일과 후에, 혹은 연등시간에 지휘통제실로 내려가 그 툴을 리팩터링하는 작업을 했다. 그 일로 야근마일리지도 많이 쌓고 대대장 포상 휴가도 받았었다. 거기서 또 다른 보람을 찾았다.

나는 처음 이 과를 선택했을 때,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도 게임 개발자가 하고 싶었다. 이 결정이 바뀔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첫 동기가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도 나는 게임을 매우 사랑한다. 게임을 만드는 그 과정 자체를 너무나 사랑한다. 유니티나 언리얼엔진을 활용해 게임을 만들어보고싶은 마음은 지금도 건재하다.

그러나 게임업계에 있는 현업자분들의 말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자기 자신도 게임 개발이 너무나 재밌어서 이 업계에 왔는데, 실상 하는 일은 자신이 꿈꾸던 일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유지보수 하는 일이 훨씬 많아서 재미가 없다고, 또, 혼자 개발하는 것과 협업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거기서 내 세상은 부서졌다.
정확하게 나는 게임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온전히 '혼자서'게임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스스로 창조한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기능들을 넣고,
내가 원할때 수정하며, 내가 의도한대로 모든 것이 작동하고,
온전한 나만의 피조물이 사랑받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일'이 되면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을 걸 알았다.
인디게임 개발자? 너무나 리스크가 크다. 그리고 나는 겁쟁이이다.

그래서 나는 합의점을 찾기로 했다. 군생활 중 기여한 시뮬레이터처럼, 실제로 세상에 도움되는 무언가를 만들어보자. 내 보람을 거기서 찾아보자. 게임 개발은 취미로만 남기자.

그러나 아직은 정확히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대충 웹 공부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재미있으면 계속 하는 거고~ 재미없으면 다른 쪽으로 넘어 가고~
이유가 같잖고 형편없을진 모르겠지만 난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으니까.
동기는 대충이지만 과정은 대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내 인생은 찍먹 후 부먹의 연속이었으니까.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