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 할거냐 🙄

모빈켈은 소위 말하는 '네카라쿠배토당야'를 등지고 야인(野人)으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적이 있습니다. 한 동안 여러 스타트업을 전전하면서 용병으로 살아가기도 하고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간 크고 작은 스타트업에서 필요한 기술을 구현해주고 다녔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과거에 겪은 여러개의 스타트업에서 느낀 바를 적어 보려고 합니다.

❤️ 소개팅 스타트업 C에서

모빈켈이 야인으로서 가장 처음 만난 스타트업은 소개팅을 서비스 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투자 없이 꽤 성공적인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데이터 드리븐, 데이터 엔지니어링, 데이터 의사 결정과 같은 데이터 방법론은 '안 하면 좆된다'라고 뿌리 깊게 박힌 상식인데요. C 회사도 마찬가지로 '데이터 드리븐'과 '고객 집착'이라는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둘 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개념인데? 그렇습니다. 모두 아마존의 Leadership Principal에서 따 온 것입니다. 아마존은 너무나도 성공적인 기업이니 아무래도 이 곳을 모델링 한 것 같았습니다.

🚚 이커머스 C 회사도 아마존을 거의 베껴오다시피 해 면접부터 문화까지 모두 아마존과 닮아 있죠.

그러나 이런 수치와 통계들이 어떤 의사 결정을 위한 수단이 되기 보다는 그저 하루 하루 고객이 얼마나 우리 회사에 관심을 주는지 살피는 용도에 불과 했던것 같습니다. 투자사가 있는 회사였다면 이런 지표들이 대표에겐 압박으로 다가오지만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C 회사는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 보다는 지표, 통계 집착 모습을 보여줘서 실망스러웠어요.

결국 '고객 집착'과 '데이터 드리븐'은 끔찍하게 합쳐져 '데이터 집착'이 되어서 DAU에 일희일비하는 리더들의 모습만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매일 아침 주식창 확인 해 보고 이내 쓴 표정을 짓는 무직 백수와 같은 모습이 떠올라서 C 회사는 그리 오래 있지 못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 유니콘이 되고 싶은 스타트업들

스타트업에 가게 되면 어떤 의사 결정을 할 필요가 있을 때 A/B 테스트를 꼭 듣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정말 귀에 못이 박히게 언급 될텐데요. 문제는 모빈켈이 만난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유니콘 기업이 되자'가 아니라 '유니콘 기업처럼 따라해서 멋있는 회사 처럼 보이자'인 곳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이 오히려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곳 보다 더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의사 결정 하나를 하기 위해 AB 테스트와 온갖 데이터 수치와 통계와 지표를 활용하려고 하는데요.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대기업보다 더 많은 절차와 미팅을 갖게 되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모빈켈은 스타트업이라면 온갖 이권 다툼과 데이터 분석에서 자유로워져 따분한 수학 모델링보다는 직관에 의해 Let's Go 할 줄 알았지 대기업보다 많은 팀과 사람을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데이터 수학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확률 통계를 근본있게 공부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학부 전공은 자연계, 이공계가 전혀 아니지만 대학원에서의 짧은 6~12개월의 '소프트웨어 경영' 같은 다소 잡종스러운 요상한 석사 학위를 딴 사람들이 회사에서 '데이터 드리븐'을 외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 요즘은 코딩 학원에서 PO, PM 마저도 13주 만에 만들어 내기 때문에 놀라운 사실이 아니긴 합니다.

모빈켈이라고해서 통계학을 전공한 것은 아닌데요. 그러나 유저 1천명을 절반씩 나눠서 A/B 테스트를 진행한 뒤에 A 모델의 리텐션이 0.2% 높다고 주장하며 주요 기능이 롤백 당하는 모습을 보면 어이없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데이터로 어떤 의사 결정을 하고 싶은게 아닙니다. '데이터 놀이'를 하고 싶은 겁니다. 타운홀 같은 현장에서 모두를 앉혀두고 차트를 보여주고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멋있는 발표로 구성원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지 데이터의 본질을 알려주고 싶은게 아닙니다.

구글에서는 이렇게 한다더라, 에어 비앤비에서는 저렇게 한다더라, 수 많은 최신 방법론과 셀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명언을 발표하고 있지만 왜 유니콘이 되지 못하는 걸까요?

👄 테크 포르노

개발자 세계에서는 새롭고 높은 수준의 기술을 소개하는 것은 마치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과 닮아있습니다. 모빈켈이 이를 '테크 포르노'에 비유하는 것은, 이러한 기술 과시가 마치 야동처럼 개발자의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인데요.

예를들면 1억개의 소켓을 핸들링하고 대규모 분산 병렬 큐를 멀티 테넌트 클라우드로 운영하면서 동시에 IaC로 인프라를 관리하고 고도화 된 CI/CD 파이프라인이 있어서 단 한 번의 커밋으로 전 세계 유저에게 동시에 카나리 배포 된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는 엔지니어들에게는 마치 야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수천명의 유저조차 확보하지 못한게 현실임을 감안하면 PostgreSQL 조차 사치입니다. AWS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빈켈이 겪어 본 스타트업은 VPC가 5개 씩이나 필요하지도 않고 서브넷을 수십개로 나눠서 네트워크를 운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EKS, ECS을 가질 필요도 없었습니다. 정말 잘 다루는 사람이 있는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당장 이 벨로그라는 서비스도 react-router만으로 여태 성공적인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Next.js도 최신 클라우드 엣지 컴퓨팅도 없습니다.

물론 누구나 AWS RDS에서 Auto scaling 되는 인스턴스를 보면서 흥분하고 싶겠지만 쿼리와 데이터 액세스 패턴만 잘 설계하면 한 달 만원이면 떡을 치고도 남습니다. 그 돈은 차라리 모빈켈 글 쓰기에 기부해서 보태세요 👍🏿

이런 문제는 기술 발전의 속도와 개발자의 심리적인 욕구와의 괴리감에서 비롯됩니다. 새로운 기술들은 매우 흥미롭고 혁신적이지만 나와 우리 회사의 주제 파악을 해야합니다. 고도로 복잡한 기술들을 쓴 기업들은 그런 상황에 마주했기 때문에 도입 한 것이지 그런 기술을 썼기 때문에 유명 기업이 된 것이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을 뼛속 깊이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모빈켈은 개발자들이 물고 빠는 '네카라쿠배'나 'FAANG'에서 함수형 프로그래밍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훌륭한 엔지니어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NoSQL만 주창하는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유니콘에 근접했던 한 스타트업 대표도 "우리는 다음 일을 결정하는데 데이터 분석을 사용 해 본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실제로 최신 기술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기본이나 잘 하라는 뜻입니다.

🌚 끝

저는 스타트업에서는 기본적인 컴퓨터 과학, 수학 이론 보다는 실리콘 밸리에서 유행하는 최신 개념들을 좇으면서 일은 안 하고 떠드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러다가 논박 당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취향'이라던가 '정답은 없다'와 같은 말로 논점을 흐립니다. 그 사람들은 항상 이처럼 말로 떼워 넘기기 쉬운 것들만 쏙쏙 골라 자신의 실력을 포장 하기 바쁩니다.

대기업에서는 개성이 부재한 조직을 봐 왔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철학이 부재한 조직을 많이 봐 왔습니다. 모빈켈은 신입 개발자들로 부터 커리어 문의를 많이 받았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 갈지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기술 컨퍼런스나 무슨 스터디 모임에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마음 속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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