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버블 때 성장한 대기업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자랐다.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은 책에서 IBM이란 골리앗을 이긴 다윗과 같은 Apple이라는 회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이었다. 마침, 또래 사이에서 아이팟 터치가 상당히 유행이었다. 그러다 2007년에 아이폰을 처음 소개하던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 꿈은 그때 결정되었다.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상상도 못 했던 것을 출시하면서 위트있고 마술을 보이는 것과 같이 발표하는 모습에 나는 홀린 듯이 매료되었다.
그렇게 "32살에 스티브 잡스와 같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의 CEO가 되겠다."라는 나의 목표를 설정했다.
32살이라는 나이는 취업 후, 결혼 전 충분히 능력을 갖추었을 때를 의미하지만, 구체적인 나이는 계획을 세우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나중에 바꾸게 될지라도. 그때까지 내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경영, 기획, 브랜딩, 마케팅, 디자인, 엔지니어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일단 도서관에 있는 경영에 대한 책을 하루에 2권씩 읽으며 메모하고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몇 달이 걸리지 않아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전부 읽게 되었고, 나는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비전을 함께할 팀을 만들고 캠페인과 작은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친구들을 끌어들였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조금 알고 있는 팀원을 모집할 수 있게 되어 독특한 컨셉의 커뮤니티를 여러 형태로 도전을 했고 3년이 흘렀다. 들인 고생과 결과물은 있었지만 특별한 성과는 없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 팀원은 결국 탈주소식을 감추었다.
내 또래에 어느 한 분야의 세미-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지닌 사람은 드물었기에 같이 배워나가기로 결심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기라 다른 크루원들과 가장 먼저 디자인, 브랜딩에 대한 스터디를 각각 12주, 8주 동안 진행했다.
그렇지만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도전해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워하던 무렵에 다른 팀원이 나에게 "네가 개발을 해보는 건 어때? 컴퓨터는 우리 중에서 제일 잘 알잖아."라는 말을 건네었다. 그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제일 높은 말이기도 했지만 나는 개발이란 분야에 엄청난 벽이 존재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종로산업정보학교에서 컴퓨터 정보과를 이수했다. 응용 프로그래밍, 웹 프로그래밍, 그래픽디자인, 데이터베이스 4가지 강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응용 프로그래밍에서는 C를 배웠는데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투성이였고것들 투성이였고 다들 그렇듯이 포인터를 만나서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 시험을 위한 암기만 있었다. 데이터베이스도 "엑셀을 어렵게 쓰기. "라는 인식이 있었고, 웹 프로그래밍은 HTML/CSS를 다루었는데 어깨너머 본 것들이 있어서 수월하게 진행했다. 그래픽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총 100명 정도 과 인원들 사이에서 5등 이내의 성적을 유지했었다. 그리고 중반부가 지나서는 선생님들께서도 수업이 힘든 학생들을 돌아다니며 설명해주는 조교 역할을 맡기어주셨다. 교내외 대회도 참여하며 수상도 해보고 자신이 넘쳐있을 때였지만, 사실 그때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로직을 구성하고 이런 것들이 어렵기만 하고 막막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뒤로한 채로 팀원들에게 알겠다고 해보고 전에 있던 팀원이 사용하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스노보드그누보드, 제로 보드로제로보드로 더 많이 알려진 CMS 계열의 RhymerRhymix를 기반하고 있었다. 추가적인 모듈에 HTML/CSS, JavaScript, jQuery, PHP 등을 사용해 프로젝트에 맞게 커스텀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좋다. HTML/CSS는 알겠고 나머지는 뭐지? 싶었다. 일단 넘어갔다. 일단 기획한 것을 만들어 가려고 보니 우리가 다뤄야 하는 값들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있지 않았다. 구글링을 통해 사용자 변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찾아냈고 참고 자료들을 따라 하며 기능을 넣었다. 저장까지는 됐는데 그 값을 다루는 과정은 한참을 헤매다가 PHP와 dis로js로 처리한다는 것을 찾아냈다.
기본적인 사칙연산을 하는 것조차 문법(+프로그래밍 언어의 구조)을 모르는 상태에서 고행이었다. 잘게 나누어서 하나씩 넣어보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변화를 관찰해가며 분명 코드는 더 늘어났는데 화면 속의 값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기이한 답답함을 느끼며 몇 시간씩을 소모했던 것 같다. 정점은 미관 요소를 더하기 위해 jQuery를 적용하는데 단지 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9시간이 걸리거나, 다음 화면으로 값을 전달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지 못해 HTTP의 GET 타입 방식으로 값을 넘기고 받아오는 데까지 꼬박 이틀을 밤을 새웠다. 기한도 기한이지만 답답하고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흡연량이 정말 많이 늘었고 점점 피폐해져서 찾은 방안이 라디오를 틀어 적막한 공기를 깨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고 활력이 되었다.
이제 이 방식으로는 나와 팀이 생각하는 것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복잡하거나 전문적인 기능은 여전히 불가했다. 현실적인 타협을 보며 팀원들과 서비스를 하나씩 도전해나갔다. 주로 메모와 그것을 활용하는 서비스들이었는데 하루의 중요했던 3가지 순간을 간단히 메모하는 '추억 메모, WAWOWAW', 커플 디데이와 데이트 장소와 느낀 점을 함께 작성할 수 있는 '커플 다이어리, AviaryLoviary', 자신의 문화생활을 월간 별로 수집할 수 있는 '월간문화 일기월간문화일기, Library' 서비스를 모바일 웹서비스로 제작하였다.
그동안에는 완성도와 더불어 동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수익화에 대해 리더로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대신 "우리가 직접 사용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보자."를 제안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자금에 보탬이 될 만한 서비스를 도전해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행한 게 History 프로젝트이다. 완성되고 발품을 팔러 다니며 느낀 반응은 "잘 모르겠다."라는 사람이 반, "괜찮은데 아쉽다.", "아주 좋은데?" 반이었다. 그러다 좋게 봐주신 자산 관리 업체 한 곳이 있었고 고객들에게 제공해주면 소비 습관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해서 담당자와 한 달 정도 미팅을 가졌다. 결론적으로는 윗선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너무 아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던 찰나에 지인에게 "너 제대로 개발을 배워보는건 어때? 생활비할 수 있는 돈도 준대."라며 국비지원 과정을 소개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