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협력하는 객체들의 공동체

KIMA·2023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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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객체지향을 검색하면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물을 유사하게 소프트웨어 내부로 옮겨오는 작업이라는 설명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설명은 객체지향의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유연하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객체지향 분석, 설계를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객체지향은 단순히 실세계를 소프트웨어 안으로 옮겨 담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사용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신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장에서는 객체지향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잠시 동안만 실세계의 모방이라는 과거의 인습에 얽매일 예정이다.

협력하는 사람들

커피공화국의 아침

회사원들은 출근 전 카페에 들려 커피를 사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1. 손님은 주문대의 캐시어에게 다가가, 주문할 음료 종류와 사이즈를 말하면서 원하는 음료를 주문한다.
2. 손님은 금액을 결제하고 캐시어로부터 영수증과 진동벨을 받은 후 주문대를 빠져나온다.
3. 손님의 주문을 받은 캐시어는 미리 준비된 컵의 옆면에 음료의 종류를 적은 후, 카운터 옆에 있는 테이블에 일렬로 놓는다.
4. 바리스타는 컵 하나를 들어 옆면에 적힌 주문 내역을 살펴본다.
5. 바리스타는 커피 머신으로 돌아가 주문된 커피를 제조한다.
6. 바리스타는 제조한 커피를 주문대 우측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 놓는다.
7. 캐시어는 진동벨을 울려 커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손님에게 준비가 끝났음을 알린다.
8. 손님이 진동벨을 캐시어에게 반환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컵을 가져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손님은 커피를 주문하고, 캐시어가 주문을 받고, 바리스타가 커피를 제조한다.
바리스타의 제조가 끝난 커피는 다시 캐시어에게 전달되고 캐시어는 손님에게 진동벨을 울리고 손님은 해당 커피를 가져간다.
이렇게 커피 한잔을 주문하는 작은 이벤트를 완성하는 데도 여러 사람의 조율과 조화가 필요하다. 커피를 주문하고 제조하는 과정은 역할, 책임, 협력이라는 사람의 일상 속에 항상 스며들어 있는 세 가지 개념이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 낸 것이다.
역할, 책임, 협력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덜컹거리는 차를 정비하기 위해 들른 정비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간 식당,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역할, 책임, 협력이 존재한다.

요청과 응답으로 구성된 협력

일상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개인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버거울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사람 혹은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요청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요청과 응답을 통해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은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든다.
협력의 성공은 특정한 역할을 맡은 각 개인이 얼마나 요청을 성실히 이행하는가에 달려 있다.

역할과 책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과정 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카페에서 손님이 주문한 커피를 제조하기 위해 캐시어와 바리스타가 협력하는 과정 속에는 손님, 캐시어, 바리스타라는 역할이 존재한다.

역할은 협력에 참여하는 특정한 사람이 협력 안에서 차지하는 책임이나 의무를 의미한다.
손님은 커피를 주문하는 책임, 캐시어는 손님으로부터 주문을 받는 책임, 바리스타는 주문된 커피를 제조하는 책임이 있다.

그렇다. 역할이라는 단어는 의미적으로 책임이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사람들이 협력을 위해 특정한 역할을 맡고, 역할에 적합한 책임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몇가지 중요한 개념을 제시한다.

  • 첫째, 여러 사람이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손님 입장에서는 자신이 주문한 커피를 마실 수만 있다면 어떤 캐시어가 주문을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 둘째, 역할은 대체 가능성을 의미한다.
    • 첫번째 예시와 같다.
  • 셋째,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요청을 처리하는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 커피 제조를 요청받은 바리스타는 카푸치노의 거품을 이용해 커피 표면에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 수도 있고 아메리카노으 향을 좀 더 향기롭게 만드는 방법을 알지도 모른다.중요한 것은 커피를 제조한다라는 동일한 요청을 받더라도 바리스타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요청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러한 동일한 요청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다형성이라고 한다.
  • 넷째,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회사에 출근하면 사원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의 부모로서의 역할과 누군가의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을 수행한다.

역할, 책임, 협력

지금까지 설명한 실세계의 커피를 주문하는 과정은 객체지향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개념을 거의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 사람 = 객체
  • 요청 = 메시지
  • 요청을 처리하는 방법 = 메서드

이제 커피 주문이라는 협력 관계를 통해 알아본 역할, 책임, 협력의 개념을 객체지향이라는 문맥으로 옮겨보자.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며 협력하는 객체들

사용자가 최종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시스템의 기능은 객체들이 성실히 협력한 결과이다.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은 더 작은 책임으로 분할되고, 책임은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객체에 의해 수행된다.
객체는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는 도중에 다른 객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시스템은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객체로 분할되고 시스템의 기능은 객체 간의 연쇄적인 요청과 응답의 흐름으로 구성된 협력으로 구현된다.

객체지향 설계는 적절한 객체에게 적절한 책임을 할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책임은 유연하고 재사용 가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설계 요소이다.
객체의 역할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여러 객체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역할은 대체 가능성을 의미한다.
  • 각 객체는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 하나의 객체가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협력 속에 사는 객체

객체는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아주 작은 기능조차 객체 혼자 감당하기에는 복잡하고 거대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다른 객체와의 협력을 통해 구현하게 된다.
협력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객체이다.
결국 협력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객체의 품질이다.

객체는 협력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하며, 두 덕목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 첫째, 협력적
    • 객체는 다른 객체의 요청에 귀 기울이고, 다른 객체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 외부의 도움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려고 하는 전지전능한 객체(god object)는 내부적인 복잡도에 의해 자멸하고 만다.
    •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객체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지는 객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심지어 요청에 응할지 여부도 객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 둘째, 자율적
    • 협력적 덕목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객체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지는 객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심지어 요청에 응할지 여부도 객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상태와 행동을 함께 지닌 자율적인객체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면, 그 행동을 하는데 필요한 상태도 함께 지녀야 한다.
예를 들어 커피를 제조하는 바리스타가 제조 방법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필요한 행동과 상태를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객체의 자율성은 객체의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객체의 사적인 부분은 객체 스스로 관리하고 외부를 차단해야 하며, 객체의 외부에서는 접근이 허락된 수단을 통해서만 객체와 의사소통 해야한다.
객체는 다른 객체가 무엇을 수행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자율적인 객체로 구성된 공동체는 유지보수가 쉽고 재사용이 쉬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한다.

협력과 메시지

객체지향의 세계에서는 오직 메시지라고 하는 한 가지 의사소통 수단만이 존재한다. 한 객체(송신자)가 다른 객체(수신자)에게 요청하는 것을 메시지를 전송한다고 말하고, 다른 객체(수신자)로부터 요청을 받는 것을 메시지를 수신한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객체는 협력을 위해 다른 객체에게 메시지를 전송하고 다른 객체로부터 메시지를 수신한다.

메서드와 자율성

객체는 다른 객체와 협력하기 위해 메시지를 전송한다.
수신자는 먼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 후, 미리 정해진 자신만의 방법에 따라 메시지를 처리한다.
이처럼 객체가 수신된 메시지를 처리하는 방법을 메서드라고 부른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메서드는 클래스 안에 포함된 함수 또는 프로시저를 통해 구현된다. 따라서 어떤 객체에게 메시지를 전송하면 결과적으로 메시지에 대응되는 특정 메서드가 실행된다. 메시지를 수신한 객체가 실행 시간에 메서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이것은 프로시저 호출에 대한 실행 코드를 컴파일 시간에 결정하는 절차적인 언어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다.

메시지와 메서드의 분리는 객체의 협력에 참여하는 객체들 간의 자율성을 증진시킨다.
커피를 주문하는 협력 과정에서 커피 제조를 요청받은 바리스타는 커피 머신을 이용해 커피를 제조할 수도 있고, 수작업만으로 커피를 제조할 수 있다.
커피 제조를 요청한 캐시어는 바리스타에게 커피가 제조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커피를 제조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
외부의 요청이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메시지와 요청을 처리하는 구체적인 방법인 메서드를 분리하는 것은 객체의 자율성을 높이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것은 캡슐화라는 개념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객체지향의 본질

다음은 객체지향의 개념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 객체지향이란 시스템을 상호작용하는 자율적인 객체들의 공동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 자율적인 객체란 상태행위를 함께 지니며, 자율성있는 객체를 의미한다.
  • 객체는 시스템의 행위를 구현하기 위해 다른 객체와 협력한다. 각 객체는 협력 내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며, 역할은 관련된 책임의 집합이다.
  • 객체는 다른 객체와 협력하기 위해 메시지를 전송하고, 메시지를 수신한 객체는 메시지를 처리하는데 적합한 메서드를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결론 : 클래스가 아닌 객체를 지향하라

객체지향 패러다임의 핵심은 클래스나 상속이 아니라 자율적인 객체들의 협력이다.

초기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의 초점은 새로운 개념의 데이터 추상화를 제공하는 클래스에 맞춰져 있었고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가 유행하면서, 객체지향 선구자들의 초기 의도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객체지향을 클래스를 지향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객체지향의 중심에 있어야 할 객체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갔다.
어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래스를 정의하는 방법과 클래스 사이의 상속에 초점을 맞춘다.

클래스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객체지향의 핵심을 이루는 중심 개념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나치게 클래스를 강조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적인 관점은 객체의 캡슐화를 저해하고 클래스를 서로 강하게 결합시킨다. 애플리케이션을 협력하는 객체들의 공동체가 아닌 클래스로 구성된 설계도로 보는 관점은 유연하고 확장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의 구축을 방해한다.

객체지향의 핵심은 클래스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클래스가 필요한가가 아니라 어떤 객체들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협력하는가이다.
적절한 책임을 수행하는 역할 간의 유연하고 견고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하는 것이 객체지향에서 중요한 포인트이다.
클래스는 객체들의 협력 관계를 코드로 옮기는 도구에 불과하다.
클래스들의 정적인 관계(클래스의 구조와 메서드)가 아니라 메시지를 주고받는 객체들의 동적인 관계(역할, 책임, 협력)에 초점을 맞추자.

Reference

  • 객체지향의 사실과 오해, 조영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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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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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6일

책 읽으면서 이해 안 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글이랑 같이 보니까 이해가 잘돼서 너무 좋네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독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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