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log 시작을 기념하며

Juyoung Oh·2022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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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하-)

축, 개발블로그 시작

컴퓨터 공학과를 선택하고 개발을 시작한지 10년, 이제서야 기술 블로그를 만든다.

내가 여태 기술 블로그를 의도적으로 피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 완벽해야 한다는 걱정

대학교 4학년 즈음 기술블로그를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었다. 그러나 '만들기 이전의 기록들은 못 남겼는데 어떡하지?' 하는 이상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초반 내용이 없는, 중간부터 시작하는 책을 써야하는 이상한 기분이랄까..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구글스프레드시트에 삽질 기록을 남겼고 취업을 하고는 노션에 남기고 있다. 그러나 기술 블로그로 내용을 옮겨볼까 라는 고민을 떠올리면, '그럼 대학생 때 기록 못 한 것들이 아까운데..' 라는 요상한 불편함이 또 찾아왔다. 고민할 때가 가장 이를 때란 걸 그땐 알지 못했지

2.타인의 비교하며 생긴 불편함

구글링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기술 블로그들을 만나게 된다.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사람, 한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꾸준하게 기록한 사람, 비전공자 였다가 개발자 커리어 전환에 성공한 일대기를 기록한 사람.
완벽해야 한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나와 대조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딘가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그들만큼 잘 해내지 못할까봐 생기는 불편한 감정을 자기합리화로 달랬었다. '꼭 기술 블로그를 써야만 잘 하는 건 아닐걸. 난 따로 노션에 잘 정리하고 있으니 굳이 시작 할 필욘 없을거야' 라고.

3. 기록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나는 초등학생 때 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 중고등학생때는 꿈일기까지 썼었다. 눈 떴다 감으면 일기는 몇일씩 밀려있는데 이게 굉장히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극한의 추억충이기 때문에 일기 쓰는 걸 포기할 순 없다. 게다가 네이버 블로그도 시작해서 간간히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개발블로그까지 추가된다면? 아마 모든 이슈나 공부한 내용을 업로드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게 뻔했다. 일기가 몇 주 밀리더라도 중요한 날의 일기는 꼭 적고 넘어가야 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에..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기술블로그를 시작한 계기는 뭘까?

1. 가시적인게 필요해

지난 10년간 쌓아온 내 경험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해봤는데 놀랍게도 떠오르는 게 없더라. 최근의 초록잔디는 찾아볼 수 없는 깃헙, 대외비로 인해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회사 내 프로젝트들, 단 한번도 마무리 짓지 못한 개인 프로젝트들..실체가 안 보이는 것들로 나를 증명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내 발자국을 남겨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요근래 이직하고 싶다는 마음만 굴뚝같았지만 행동은 별 다를게 없었던 나를 돌아보며 많은 반성하게 되었다. 꾸준히 글을 올리는 습관을 길러 더 깊이 탐구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2. 아까운 내 삽질의 시간들

C++, Ruby on Rails, Python, Django, Javascript, d3.js, React.js, Vue.js, Node.js, MATLAB 등...내 머릿속을 스쳐간 수많은 언어와 프레임워크들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력서에 써놓긴 했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퀘퀘묵은 지식들만 남아있는 상태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삽질의 흔적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velog에 남겨두고 싶다.
미래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나를 위해, 과거의 내가 시간을 좀 투자해주려 한다.

3. 외부로부터의 자극

남자친구가 퇴사를 하고 원래 직종과 전혀 무관한 개발공부를 시작했다. 부트캠프로 프론트엔드 코스를 시작한지 어느덧 4개월째다. 같이 수업듣는 동료들과 코드리뷰하고, README를 꼼꼼히 작성하고, 밤 11시에 알고리즘 스터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기감이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오래 개발 관련 직종에 있었지만 개발을 배우겠다는 열정으로 가득찬 저분들보다 더 잘 한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끓는 물에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마냥 나는 대기업이라는 가마솥에서 반쯤은 익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오늘 있었던 만남이었다. 내 링크드인 프로필을 보고 연락이 와서 인연을 이어가게 된 모회사의 개발그룹장님과 저녁식사를 했다. 대기업 10년 생활 이후에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로 이직하셨는데, 대기업에서 느끼셨던 감정들이 지금 내가 겪는 것과 아주 유사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을 느끼고 한 행동이 나와는 달랐다.
나는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그저 지금 상황이 불운했던 것 뿐이야'라고 생각하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은 회사에서 채우지 못한 갈등을 연관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해소하셨다고 한다. 내가 맡은 업무가 노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이 여겨지더라도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 일들은 있다. 그 분이 해주신 얘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는 나뭇가지가 튼튼해서 앉아있는게 아니에요.
언제든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있기 때문에 앉아있는 거에요.

내 날개가 아직 건사한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기술 블로그를 쓰는 이유는 날개짓을 하기 전 조금의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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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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