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날에, 너는 죽었다.
너를 죽여 나도 죽었다.
네가 언제 죽었는지 몰라서 올해 봄은 내내 눈물이 났다.
일을 하다가도, 웃다가도.
너무 행복해서, 네가 죽었다.
나의 생일은 없었다. 있었는데 챙기지 않았다. 그래서 너의 생일도 챙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앎으로써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굳이 챙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어릴 적부터 살아왔던 촌동네에선 생일을 축하해본 적이 드물었다. 뭐 옛날에는 어쩌고저쩌고 이런 식으로 저런 식으로 살아왔으니까. 그런 거지. 거름 냄새나는 촌구석에선 가족 생일을 다 챙기다간 한 가정에 일 년에 특별한 날만 몇십 날은 되었을 거다. 이건 이해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하락세를 타고 있을 때였다. 사실 하락세도 아니고, 지푸라기를 잡고선 낭떠러지의 구멍을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워 눈을 감고 있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옥이었을 게다.
가장 역겨웠던 기억은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빌라 형태의 3~4층 집 안에 가득 퍼지는 자욱한 담배 찌든 내와 술에 취한 채로 버즈의 〈가시〉를 들으며 중학생인 나에게 술 사오라 시키던 모습이다.
화목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몰랐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연기 자욱한 이 공간이 일상이며 기본값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는 따뜻함을 몰라 지옥이 따뜻했다. 아버지란 작자는 자신의 꿈에 갇혀 현실을 볼 줄 몰랐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우선 그 꿈을 지탱하고 있는 현실을 먼저 깨달아야 했다.
"아들, 편의점 가서 아버지가 사오라고 했다고 하고 카스랑 참이슬 좀 사다줘~ 응? 부탁해~" 거부라는 선택지를 앞서 차단하는 듯한 저 말투를 들을 때마다 그의 무능력함이 몸속 깊은 곳부터 혐오감이 퍼져나가 온몸의 잔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한탄만으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몰랐을까? 아니다, 그는 그저 고난 속에서 열심히 산다고 자위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애인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이런 자신이 자초한 역경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상황을 사랑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개같은 생각과 좆같은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분석이 마치 총알이 머릿속을 뚫듯 지나갔을 때엔, 정말 그럴 것 같아 구역질했다. 나의 유년기는 그의 꿈에 맞추어 움직였을 뿐, 나의 바람이나 가치관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당연히 생일이란 없었다. 나의 불행에 비하면 너의 불행은 비교적 평범한 불행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친구들과 적당히 지내고, 방학이라 가족끼리 초코파이 케이크를 만드는 소박한 생일을 보냈으며, 경제적인 이유로 네가 사랑하던 촌구석에서 떠나야 했을 뿐이다. 너는 행복을 배워 불행을 알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로 생일을 챙길 수 없게 되었어도, 너는 생일이 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누군가가 챙겨주면 소박하게 기뻐했다.
나는 행복을 아는 네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너라면 나에게 행복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