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나마 회고해 보는 나의 지난 질주 기록

blueprint·2022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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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계속 작업만 했고, 가려고 했던 여행 일정도 취소돼서 지난 4개월을 잠깐 회고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나에게는 '나 이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때가 딱 다섯 번 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시험,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기말 수학 시험, 대학교 1학년과 4학년, 그리고 최근 4개월. 특히 최근은 진짜 숨 가쁘게 달렸다.

주변에서는 다들 항상 그랬다. 너는 항상 열심히 사는 것 같아.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는 너무 나태했고, 붙잡고 있는 시간에 비해 성과는 적었다. 비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input만 있고 output이 없는 상황. 나한테는 어디서도 결괏값을 찍어 내는 변수가 없었다.

제대로 도전해 보자. 4개월이면 아주 짧지도, 아주 길지도 않으니 이 정도는 몰입할 수 있다. 한 번만 딱 정신 차리고 살아 보자. 이 마음으로 시작했던 때를 떠올리며 합격하고 썼던 글을 다시 읽어 봤다. 맞아, 내가 좋아서 고른 전공이고 길이었지. 자꾸 잊는다. 동기들이 일찍이 적성과 맞지 않다며 다른 길을 찾을 때도 꿋꿋이 개발로 밀고 나가겠다 대답하고 다니던 게 오기가 아니라 다 내가 좋아서 한 선택이었다.


4月

나를 며칠 동안이나 애먹였던 모달 과제

학교에서 들었던 모바일 웹 앱 강의로 내 미래에 확신을 가졌었는데, 교육 시작 후 접한 HTML CSS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 가볍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정도로도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만하기 그지없었지. 처음 한 달은 시맨틱한 마크업과 효율적으로 스타일을 짜는 법에 대해 배웠다. UI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수많은 머리카락을 뽑았다. 간단한 모달 만드는 데에도 억겁의 시간을 들였다.

CSS 수업 막바지에 만들었던 과제와 SCSS 과제

중간에 코로나 확진을 받게 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수업 어떡하지?'였다. 친구는 어떻게 그 생각부터 나냐고 미친놈 같다고 그랬다. 여덟 시간 앉아 있기에는 몸이 너무 아팠지만 그래도 머리에 꾸역꾸역 넣었다. 그 정도로 열심히 했다.

우리 회고 팀이 유독 조용해서 다른 팀들보다 회고를 늦게 시작했다. 4월 말부터 시작했고, 그 무렵 팀장을 맡았던 분은 건강 문제로 퇴소하셨다. 더 적적해지겠구나 생각했는데 주간 회고는 나름 잘 굴러갔다. 모두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참 위로가 됐다.

5月

그리고 대망의 JS. HTML CSS처럼 알고 있는 개념들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적용하고자 하면 내 머리로 그린 그림은 안 나오고 빨간 글씨들만 마주하게 됐다. 이때 살짝 슬럼프가 왔었다. 너무 울적해서 잠 못 이룬 날이 몇 번 있었다.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극복해 보려고 조금씩 노력했다.

6月

그러다 어느새 React까지 왔다. JS가 내 멘탈을 마구 때리는데 그만 울고 이제 리액트를 하랜다.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아침 시간은 거의 우주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받은 리액트 공식 홈페이지 클론 과제와 블로그 과제 덕분에 천왕성을 지나 해왕성으로 가던 길에 다시 지구로 돌아왔다. 해 보니 JS보다 재미있었다. JS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엉뚱한 곳에서 실수해 (점을 하나 안 찍었다든지) 오류를 못 잡고는 했지만 성취감이 꽤 컸다. 리액트가 JS 라이브러리인데 JS보다 재미있을 수가 있나. 그런데 프로젝트 팀원들도 이상하게 바닐라가 더 힘들다고 하더라.

수료를 한 달 앞둔 상태에서 다들 슬슬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개발자 이력서 쪽으로 전문가이신 원희 님이 강사로 오셔서 4회차에 걸쳐 피드백을 주셨다. 정말 매력 없는 문장들로 스스로를 설명하고 있었더라. 지금은 다 갈아엎었다.

7月

드디어 파이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건 발표를 준비하며 WIKI에 첨부한 이미지들. 내가 작업한 파트들 중 일부다. 디자인은 재준 님이 피그마 툴에서 우리 팀 콘셉트에 맞게 변경해 주셨다. 이왕이면 바닐라보다는 리액트를 써서 이력서에 리액트 프로젝트 하나 넣자는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시작했다.

hook에 익숙하지 않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풀렸다. 하지만 오만했다는 듯이 컴포넌트를 추가하면 할수록, 수정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오류들과 마주쳐서 어제까지도 수정에 수정을 거쳤다. 그럼 그렇지. 조용히 넘어가면 불안할 지경이다. 발표가 내일인데 팀원들은 오늘도 또 수정해야 한다.

솔직히 이번 한 달 동안 제일 많이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무 중심의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협업 과정도 실무와 비슷하게 진행됐다. 코드 컨벤션, 커밋 컨벤션, 주간 회의, git flow 등등 여러 방식을 도입했다. 꽤 체계적으로 진행됐고 불화도 없이 순조로웠다. 지난주에 가진 번개도 아주 좋았다. 팀원들의 오류를 대신 해결해 주면서도 꽤 배웠다. 모두들 불철주야 작업하고 회의했다.

내가 맡은 챕터 중 일부

또 다른 도전도 시작했다. JS 비동기 책 집필에 참여하게 됐다. 살면서 내가 책을 출판할 일이 생길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었는데.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틈틈이 집필팀과도 회의를 진행했다. 오전부터 8시간은 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밤에는 예제를 만들고, 설명도 쓰고, 이해하기 쉽도록 이미지도 만들고, 팀원들과 주기적으로 퇴고도 했다. 책은 아마 2주 내로 리디북스에 올라갈 것 같다.

지금은 출간이 완료되어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부 처음 시작하며 만든 스타벅스 클론 홈페이지

4개월 동안 해낸 것들이 참 많다. 알고 있음에도 한 번씩 내 머리에 남은 게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안다. 다 누적되어 있지만 괜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걸 잘 안다. 아마 이 감정은 취업할 때까지 쭉 이어지겠지. 3학년 여름부터 쭉 불안 속에서 살았으니 나는 불안감으로부터 조금 해방될 필요가 있다. 멋사 동기들은 대부분 20대 후반~30대여서 쉬지 않고 취업 준비에 들어간다. 지난주에 팀원 중 한 명이 수료하고 더 공부할 거냐고 물었다. 본인은 공부를 더 할 거랬다. 나는 한 달 쉴 거라고 대답했다. 일 년을 안 쉬고 공부했다. 나는 좀 쉬어도 돼. 살짝 휴식기를 가진 후에 다시 앉아야지.

아마 쉬다가도 문득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겠지. 지겹게도 또 다시 내 능력을 의심할 때가 분명 있겠지.

그래도 어쨌든 나는

지금의 내가 4개월 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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