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은 수내역 근처에 위치했었다.
역 근처에 있는 고시원에서 자취를 하며 직장에 출근했던 날들을 곱씹어본다.
고시원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손자를 향한 걱정어린 목소리였지만 할머니는 내게 그리 말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평생 촌스럽게 살아온 나에게 추레함은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니었다.
사실, 견딜 필요도 없던 것이었다.
작은 내 동네에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분당에는 높은 건물들이 사방에 있었다.
좋은 차들도 즐비했다.
주변 환경도 잘 조성되어있었다.
그때 내 눈에 비친 사람들은 어쩜 그리 여유로워보였던지.
나와는 너무 거리가 먼 세상이었다.
한 평은 될까 싶은 고시원 방.
창문이 없어서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을 끄면 칠흑같이 어두워서 행여 늦잠잘까봐 불을 키고 취침했다.
심심할만하면 고시원 주인 아저씨와 입주자가 고성으로 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루에 몇 번이고 담배냄새가 화장실 환풍기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두 발자국이면 끝나는 방이었다.
주변 식당의 음식은 어찌나 비싸던지.
몇 달 동안 카레를 사서 끼니를 해결했다.
다행히 고시원에서 밥은 지원해주어서 밥을 산더미처럼 쌓아 먹을 수 있었다.
밥에 비해 카레가 적어서 카레맛이 옅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오려고 할 때면 스스로 되뇌이곤했다.
그저 되내었다.
앞으로 밝은 미래가 있을지 말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되내었다.
앞으로에 대한 바람. 어쩌면 기도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