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Humble

김현수·2022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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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가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의 시작이다

그동안 얼마나 거짓된 인식으로 자신을 구성하고 있었나. Truth.

참과 거짓. 그리고 올바름과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은 자신을 겸손하게 한다. 동시에 배울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비록 철학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인제야 철학함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는 것인가. 아니면 철학으로부터 버림을 당했기 때문에 드디어 철학함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철학으로부터의 버림이 아닌, 스스로가 철학을 저버렸다. 더 이상 나는 윤리와 철학을 사랑하던 아이가 아닌 생을 위해 공학도가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금 무지한 이가 되어 배움을 갈구하고 있다. 비로소 사유함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학적인 어투로 자신을 포장하던 일을 그만두고 나는 다시금 초심자가 되어 하나씩 분해되고 있다.

그렇다

철학은 지식이다. 지식은 그 자체로는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지식은 허령하다. 지식은 무가치하지만 지혜는 무언가를 창조하길 원한다. 나의 산물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산물은 가치를 지녀 타인에게 이득을 주려 한다. 그렇기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 가치를 주는 산물을 창조할 수 있기에 나는 죽어도 살아있다. 나의 창조물은 삶의 연장이다.

여느 3단 논법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사실은 그는 죽지 아니했다. 그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의 사유함은 살아남았으니, 그는 살아있다. 동시에 나도 창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영영 죽어버리게 될 테니,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그 하나만의 이유로 나는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는 무언가를 창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무능력하다는 고통, 인간은 고통이 아닌 것에는 변화하지 않는다.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고귀한 존재도 아니며 여느 인간같이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근시안적이며, 비논리적이다. 나 또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느 생물과 다르지 않아 그 표현을 품위스럽게 할 뿐 실상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나는 삶을 긍정하려 하니. 나는 무지함을 모두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다시 쌓아갈 것이니. 그 시작은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음이다.

알고 있으면 행하지 아니할 수가 없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앎이 아니니. 그다음은 행함이니 앎과 행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다시금 나는 나 스스로 진실되어야한다. 다시금 나는 구도해야한다. 구도하는 자는 긍정하기보단 자책하는 편이다.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잣대. 거짓된 감정을 마주한 망치를 든 철학자. 그는 모든 것을 부수려 한다. 그 폐허 속에서만 다시 진리의 꽃이 잉태하는 것이니. 그 철학자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날카로운 칼, 이성의 면도날을 든 그 철학자가 자신을 난도질하게끔 두어야 한다. 상흔을 들추어 나는 고통을 회상하며 또 다른 고통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과오를 저지른 뒤에야 마음 속에서 곤란했던 바를 고칠 수 있고,
이리저리 생각들을 견주어 보고 난 뒤에야 구하고자 함이 안색으로 드러나며,
소리로 낸 뒤에야 깨닫게 된다.
안으로는 법도있는 가문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밖으로는 대적하는 나라와 외환(外患)이 없다면,
그런 나라는 언제나 멸망한다.
그런 후에야, 우환 속에서는 살 수 있으되 안락 속에서는 죽게 됨을 알게 되는 것이다_ 맹자

과오 자체가 아니라, 과오를 대하는 태도가 그 인간을 결정짓는다.
이제서야 가슴 깊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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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 소프트웨어학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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