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로 공상하던 프론트엔드 개발자

류창선·2023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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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국문학과를 전공했습니다. 단지 신화가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진학을 선택한 치기 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학부와 대학원까지 잇따라 읽고 배운 신화는 퍽 흥미로운 학문이었습니다. 신들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인간 중심에서 사고하고, 인간을 닮은 신들의 행태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들은 전지전능함에도 불구하고, 실수와 포기, 후회와 질투 등 다양한 양상으로 세상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뤄지는 수많은 주제와 요소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올 때가 있습니다.
형태는 여럿입니다. 소설과 영화,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전반에서 신화는 자신의 목소리를 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러한 신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리고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쌓여온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2. 중간

2.1. 고민과 결심

개발에 관한 관심이 생긴 시기는 대학원 졸업 전 학기였습니다. 긴 이야기를 요약하면 신화학을 전공하는 미래가 불투명했습니다. 결국 대학원생이 끝나면 연구원 자격으로 정식 교수를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논문을 써야 하고, 학회에 가야 하며, 발표와 강의에 몰두해야 하는, 이른 바 정식 교수가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국구비문학대계라는 국가사업에 참여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옛 이야기를 수집하는 일을 하는 와중에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백엔드 개발자로 이미 숱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 개발자였습니다.
그 만남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단지 소스 코드 몇 줄로 구현된 핸드폰 화면의 무엇인가가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매일 책과 글만 보던 사람에게 인터렉션이 가미된 동적인 결과물은 혼을 빼놓기 충분했습니다.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려 학부 4년, 대학원 2년의 세월을 놔버릴 정도로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후 몇 개월의 교육이 끝난 후 저는 당당히 Hello World!라는 문구처럼 세상에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2.2. UI 개발자로의 6년

웹 에이전시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면접 때 신입은 파견을 보내지 않는다는 대표님께서 입사한 당일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JavaScript를 할 줄 압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파견지가 결정되었습니다. 첫 파견지는 현대카드. 개발해야 하는 것은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6개월의 파견에서 배운 것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코딩 컨벤션, 초기 세팅, 모션 관련 라이브러리, 스크롤 이벤트 등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기획자와 디자이너, 개발자와 고객사 간의 소통에 대해서도 미약하게나마 배울 기회였습니다.
본사 복귀 즉시 투입된 프로젝트는 KT.com로 같은 해 상반기에 구축한 웹 사이트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였고, 동시에 KT 에어맵 관제까지 작업을 완수했습니다.
웹 에이전시의 2년차는 UI 개발자가 성장하기 위한 관문과 같았습니다. 삼성 SDS Brightics IoT 2.0를 시작으로, LG Thin ClientLG Design Identity까지 연달아 투입되었고, SK브로드밴드 Oksusu중앙일보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채널 joinD까지 오롯이 구축한 후에야 다음 회사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Wavve라는 OTT 서비스는 이직할 때만 해도 pooq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방송 3사(KBS, MBC, SBS)의 합작으로 태동한 이 서비스는 이후 SK브로드밴드 Oksusu와 결합하며 9월 18일에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입사하자마자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작업이 시작된 까닭입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Light Theme의 pooq을 Dark Theme로 수정하는 작업은 설계 초기부터 고려했어야 했습니다. Theme Switcher를 탑재하여 전역부터 관리해야 과정이 선행되지 않았기에 일일이 CSS 파일을 하나씩 뜯어서 line by line으로 색상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약 두 달 남짓의 야근이 끝나자 비로소 겪은 문제를 회사에 말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용어의 혼재. OTT 서비스의 특성상 주제 하나의 묶음으로 다양한 컨텐츠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그 묶음을 부르는 명칭이 부서, 팀마다 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할 용어를 정하자고 건의했습니다.
둘째, 웹 접근성의 부재. 웹 서비스는 차별 없이 유저들에게 정보를 공급하는 것을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웹 표준이며, 더 많은 배려는 웹 접근성으로부터 나옵니다. 영상 컨텐츠의 썸네일에 alt 값을 넣어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반응형 웹의 구현. 이미 SK브로드밴드 Oksusu에서 모바일 웹 UI 구현을 하였기에 PC web과 Mobile web로 나뉜 repository를 합치고, 하나의 소스 코드로 효율적인 유지 보수를 할 수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소스 코드를 하나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지난 비율적인 작업(Theming)을 앞으로 방지하기 위한 작업을 함께 진행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가 받아들여져 프로젝트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3. 프론트엔드 개발자와 wecode

UI 개발자가 기본 기술인 HTML, CSS, JavaScript에 더해 Wavve에서의 4년은 vue.js, Sass, Tailwind CSS, styled components, Storybook, Historie 등을 경험하게 해줬습니다.
기술 스택이 쌓임에도 불구하고 늘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실제 API 연동하지 않고 Mock Data로만 처리하는 한계, props와 state로 컴포넌트는 구현하였으나 온전히 동작하게 하는 영역까지 개발하지 못하는 한계 등 꽉 막힌 느낌이었습니다.
부트캠프를 검색하는 중에 wecode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중심의 교육 시스템, 기업 연계 인턴십은 꽤 솔깃한 내용이었고, 더 늦기 전에 진정한 의미의 개발자로 나아갈 마음을 굳혔습니다.

3. 끝

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재진행 중입니다. 8월 14일부터 Pre-course가 시작되었으니 이제 막 한 달이 되었는데, 벌써(아직 매우 부족한 상태지만) 지난 6년 간에 응어리졌던 답답함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제법 기대됩니다. 부디 지금처럼 기술과 사람에 목마른 개발자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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