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그만두고 개발자가 된 이유

샌님·2021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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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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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 중의 하나가 바로 공무원개발자가 아닌가 싶다. 이번 글에서는 관직을 그만두고 나온 이유에 관해 말할 차례가 된 것 같다.

오늘의 글에서는 필자가 왜 개발을 좋아하면서도 공무원을 시작하게 되었고, 공무원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떠했으며, 왜 그렇게 힘들게 준비한 공무원을 포기했는지에 관한 내용을 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시리즈에서는 혹시라도 전산직 공무원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하면 좋을지 쉬어가는 코너 식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1. 개발자 커리의 끝은 치킨집 사장님?

10여 년 전, 개발자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시절이었을까? 페이스북이라는 SNS가 유행하던 시절, 개발자는 코드를 짜다 막힌 게 있으면 치킨집 사장님에게 가서 물어보면 알려준다는 우스갯소리가 돌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개발자 커뮤니티에도 들어가면 개발은 취미로써 즐겨라. 하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들었다. 개발에 관해서는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개발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개발자로서 은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흔이라는 나이에 더더욱. 평생 개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개발자로서 은퇴하기보다 오래 할 방법이 무엇인가? 찾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취미로써 개발할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2. 개발을 취미로써 남겨두기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신조어가 언제쯤 등장했을까? 언제부턴가 잦은 야근과 동시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에서 벗어나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직업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개발을 취미로써 남겨두기 위해서는 워라밸이 있는 직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개발과 가까운 직업.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전산직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이라고 하면 수험 공부를 할 때까지는 워라밸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었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현실은 그게 아니었지만).

비록 전산직 공무원은 프로그래밍을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전산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면 됐고 혹시 개인적으로 반복적으로 처리되는 업무에 내가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불필요한 수고를 컴퓨터에 맡기는 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또, 전산직을 준비하게 되면 전공과목을 시험으로 치르므로 수험 생활도 비교적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리고 전산직 공무원이 아니고서 행정직 공무원은 별로 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3. 공무원 준비하기

그렇게 공무원 수험 준비는 시작되었다. 수능은 시험을 치르면 점수대 별로 맞춰서 갈 수 있는 대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공무원 시험이라는 것은 제한된 인원만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순위권 안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탈락이었다. 그래서 최상위권만 합격하는 시험이라는 이야기를 강의 시간에 강사님들께 자주 듣곤 했다. 그렇게 1등이라는 것이 생소한 나에게는 시험에서 1등 혹은 최상위권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어야 했다.

보통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직 시험을 3월 말~4월에 치르고 지방직, 교육청은 6월 그리고 군무원시험은 6월 말~7월 사이에 치르게 된다. 한 번에 붙기 힘든 시험인 만큼 국가직, 지방직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방자치 단체의 소속 혹은 교육청을 그리고 군무원까지 시험을 치르게 된다. 군무원을 제외하면 모두 국어, 한국사, 영어, 컴퓨터 일반, 정보보호론을 치르게 된다. 군무원은 여기서 영어가 빠진다. 과목별 내용에 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다.

4. 공무원으로 일하기

필기시험을 분명 못봤다고 생각했는데 전산직 합격자 명단에 내가 들어가 있었다. 최종합격 명단까지 올라가게 되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합격이라는 달콤함에 마르기도 전에 나에게는 공직에 임하고 나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공무원은 봉급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초과근무를 하는 관행이 흔했다(당시 9급 3호봉 기준으로 세후 150만). 그런데 나에게는 초과급여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퇴근 이후 개발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시 구글 머티리얼 디자인이 유행인 지 꽤 지났는데 나는 안드로이드 플랫폼이 아닌 웹에서도 그 디자인을 찾아서 써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리액트라는 재미있는 녀석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리액트는 웹에서 자주 쓰이는 요소를 컴포넌트화하여 클래스의 객체처럼 복사 붙여 넣기하듯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주위에서는 야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나에게 넣기 시작했다. 9급 주무관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일감이 몰아침과 함께. 어라? 내가 생각했던 생활은 이게 아닌데???

솔직히 일에 관해서도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심장을 졸이며 회사에 다닐 바에야 위험(고용의 불안정성?)을 무릅쓰고서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 이제 신입으로서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기업에서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상대적 고령(?)의 개발자를 고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에.

5. 좋아하는 일을 늦은 나이에 시작한다는 것

그러던 중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것도 용기다라는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게 되었다.

남들이 짜 놓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에 나 자신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때가 20대 후반이라고 동영상 속 화자(선생님)가 말씀하시는데 내 상황이 비슷했다. 그리고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다른 일을 찾겠다고 다시 수능 공부를 하는 사례를 소개하시는데 이는 늦는 것이 아니라 훨씬 행복한 것이라고 한다.

딱 내 경우가 그랬다. 좋아하는 일은 진작에 찾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지 않았다. 막상 남들이 좋다고 규정이라도 한 듯한 직업을 가졌지만, 전혀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불안하더라도 모험이더라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6. 개발자로서의 는 어떤 모습일까?

주무관이라는 직업을 내려놓기가 사회적으로 정말 힘든 일이었고 그 뒤 나는 정말 많은 방황을 했다. 개발자로서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내게 맞는 회사를 잘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까지 모든 고민에 무게감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을 해낸 것이었고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주무관으로서 일하던 나의 모습과는 정말 많이 대조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컸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공부를 한다는 것에 상대적으로 부담감을 덜 느꼈고 일할 때도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퇴근 시간에 쫓겨 일하게 된다. 그만큼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7. 앞으로의 나

개발자는 나중에 치킨집 사장이 된다더라~, 개발은 취미로써 남겨두세요라는 말을 듣더라도 나는 이제 단칼에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개발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수년의 세월을 통해 배웠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나는 이 길을 계속 갈 것이다.

공무원 수험생활을 하면서 공부라는 것은 정말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때 공부했던 근성과 체력은 나에게는 큰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개발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근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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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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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7일

세상에...그 숱한 경쟁을 뚫으신 경험이 있군요...한국사는 "한기리보이"님 강의가 진리인가 봐요?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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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4일

전산직 공무원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포스팅하는것도 흥미로울 것 같네요...공무원에도 프로그래머가 있을거 같은데 무슨 업무를 하는지 항상 궁금했거든요. 참 힘들게 합격한 공무원자리를 내려놓느라 힘드셨겠습니다. 힘내세요!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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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일

현재 개발자로써 직업에 대한 만족도와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대기업, 공무원만 외치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회의감이 들던 참에 이 글을 읽게 되어 힘이 됩니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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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2일

하고싶은 일...
저도 서울 괜찮은 공대 다니다가 졸업 1학기를 남기고 개발자의 길을 선택하여 현재 1년차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공에 맞춰 얼마간의 취준과정을 거쳤다면 괜찮은 연봉을 받으며 다니겠지만,

현재 적은 수입으로 연명하고 있지만 나름 만족 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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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7일

참고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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