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개발자가 되기까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꽤나 재밌는 과정이 있다 생각한다. 첫 회고로 몇가지 큰 사건들과 성정과정을 끄적여본다.
어렸을 땐,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꿈 "개발자" 저도 막연하게 장래희망을 개발자로 꿈꿨습니다. 그것이 나의 첫 시작점이였다.
고등학교 시절은 본격적으로 가야할 길을 정해야 할 때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 동아리를 개설했다. 친구 아버지가 현직 개발자분이 계셔서 그분을 초청해서 처음으로 'C++' 을 접했다. 정말 대단한 분이였지만, 비기너가 이해하기엔 너무 퀄리티가 높았다.🤔 돌이켜보면 기술적으로 정말 많이 알려주셨는데.. 기본 문법도 익히기에 급급한 우리는 외계어를 접한 기분이 들었다. 막연했던 꿈인 개발자 적성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인문계 고등학교 특성상 언어 공부는 대학입학 후에, 일단은 수능 공부부터 집중하는 것이 맞다 생각해서 수능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수능에서 제일 자신있던 영어시험에서 충격적인 실수를 범하게 된다. 밀려써버리게 된다.
가채점에서 3등급 초반대의 영어가 => 8등급이 되어서 돌아왔다.
충격이였다.😧😧 단 한번도 밀려쓴 적이 없었던 나에겐 너무나 충격적이였다. 재수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순응하고, 아버지가 추천해주신 학과 인천에 모 대학 메카트로닉스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내가 들어간 대학에 메카트로닉스과는 메카 + 트로닉스에 합성어로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의 분야를 배웠다.
다양한 분야를 있었고 그 중에 C언어의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프로그래밍 언어를 접할 수 있었다.
다시 접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나에게 너무 센세이션이였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 할 때, 그 문제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때 느긴 희열감... 내가 여태 느꼈던 어떠한 감정도 비할 바 없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지원하게 되었다. 군대가 걸림돌이 되기 싫었던 나는, 빠르게 지원을 했다. 군대에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이라는 자원을 각기 다르게 사용한다. 나에게 중요한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전역 후 계획을 세웠다. 복학까지 9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고심 끝에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내가 좋아한 영어 향상을 위함이였다. 이미 길을 터 놓은 친구가 있었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만기전역 후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게 된다.
여태 영단어는 정말 많이 외웠다. 어느정도 베이스가 있었기에, 호주에서 생활은 걱정 안했다. 하지만 실제 부딪혔을 땐 정말 멘붕이였다😱 포도 공장에서 처음 일했을 당시, 매니저가 나에게 오더를 내리는 데, 하나도 이해 못한 채 실수를 범했다. 너무 자만했던 거 같다. 그때에 나는 생존을 하기 위한 영어를 공부했다. 일이 끝나고 매일 3시간동안 공부를 하였다. 시간이 지나 큰 문제 없이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고, 호주의 자유로움과 느긋함의 매력에 빠져 호주에 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의 호주 라이프는 워홀에 국한되지 않고 호주에서 영주권을 목표를 갖게 되었다.
영주권을 따기위해 가능한 직업이 몇가지 있었다.
대표적으로 "Chef, Nurse, Age/child Care"가 있었다. 호주의 살면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요리를 해주고 그때 친구들이 내 음식을 먹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과 희열감을 느꼈기 때문에 Chef의 길을 도전하게 된다. 호주에서 대학 입학을 위한 IELTS 시험을 치르고 2020년 7월 호주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꽤나 재미를 느꼈지만, 셰프를 선택한 이유가 영주권을 위함이 가장 컸는데, 휴일 없이 일만 했던 나는 Burn Out이 왔다. 점점 영주권 대한 나의 목표에 흐릿해지면서 결국 내가 "셰프가 되도 과연 내가 행복할까?" 라는 의문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국경이 봉쇄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국경 봉쇄 뿐만 아니라, 모든 식당이 전면적으로 Take Out만 허용 된다. (Take Out만 허용하면 외식업에서는 직원 수를 줄일 수 밖에 없다.) 여러 문제로 지쳐있던 나는 결국 귀국을 결심했다.
호주에서의 생활에서 나는 배운 것이 많고 성숙해졌다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실패했다 생각한다. 나에게 국비학원은 마지막 도전이고, 그 길이 외엔 없다 다짐하고 나의 마지막 도전 국비학원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학교에서 언어를 접해본 나에겐 초반 수업은 그리 어렵진 않았다. 절때 자만하고 않고 겸손하게 복습과 예습을 통해 꾸준히 나아가자 다짐하였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을 알려 줄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는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되었지만, 나는 학원 친구들과 자신이 짠 로직에 대해 나누고 피드백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꾸준히 코드 공유를 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았다. 결과적으로 국비학원에서의 결과는 꽤 괜찮은 모습으로 수료했다 생각한다. 성공적인 국비학원이였다.
개발자가 되기까지 많은 해프닝이 있었는데, 과정 하나하나 정말 소중한 추억과 경험이였던 거 같다. 모든 해프닝에 후회는 없다.
실패 했다 생각하는 해프닝은 나에게 실패를 딪고 일어날 힘을 선물했고, 성공 했을 때에는 나에게 성취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바탕으로 앞으로 열심히, 꾸준히 공부나 일을 하는 것을 목표삼았다. 성장하는 개발자가 되길 바라며 첫 회고를 마칠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