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에 입사해 두 달간의 입문교육을 마치고, 지금은 올리브영 매장에서 2주간의 실습을 하고 있습니다.
매장에 서 있는 동안 제 안에서 조용히 갱신되고 있는 것들을,
아직 정리가 덜 된 채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CJ의 신입사원은 제주도에서 시작합니다.
전 계열사 입사자가 한자리에 모여서 2주 동안 함께 지내요.
그룹 공통 교육을 받고, 회사의 핵심가치를 배우고, CJ인으로서의 마인드셋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힘들었어요.
주어진 활동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더 잘 내보겠다고 야근을 하는 날이 꽤 많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처음 가보는 환경.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2주가 끝나고 나니까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트는 일. 낯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일.
모르는 주제를 짧은 시간 안에 리서치해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일.
이런 것들이 어느새 익숙해져 있더라고요.
그때는 그 시간이 뭘 위한 건지 잘 몰랐어요. 지금 매장에 서 있어 보니 알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낯선 곳에 던져져도 버티는 근육을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근육을 지금 매장에서 매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쇼핑하실 때 직원분께 먼저 말을 거시나요?
저는 안 그러는 쪽입니다. 필요한 걸 찾고, 집어 들고, 계산해요.
물어보거나 의견을 구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몰랐어요.
매장에서는 그런 대화가 정말 많이 일어난다는 걸요.
그리고 그 대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도요.
실습하다가 한 고객분께 제품을 추천해드린 적이 있어요. 원래 사려던 제품이 따로 있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가 추천해드린 제품을 사셨어요. 그리고 계산을 마치고 저를 찾아오셔서 "이거 샀어요" 하고 보여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 순간 알았어요.
제 사용자 모델은 줄곧 저 자신이었다는 걸요.
말 걸지 않고, 빨리 끝내고 싶어 하고, 최소한의 인터랙션을 좋아하는 사람. 저는 계속 그런 사용자를 기준으로 서비스를 상상해왔던 겁니다. 그건 사용자의 한 유형이지 사용자 전체가 아닌데도요.
책상 앞에서 떠올리는 사용자는 결국 나의 확대판이 됩니다.
그런데 제 앞에 실제로 서 계신 분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매장에서 일하다 보면 손이 바쁜 채로 화면을 다뤄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양손에 뭔가를 들고 있거나, 앞에 고객분이 서 계시거나, 다음 동작이 이미 정해져 있거나.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 단계는 없앨 수 없나?'
'이건 한 번에 끝낼 수 없나?'
터치 한 번의 무게를 이렇게까지 체감한 건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이 감각 자체가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 말을 아주 여러 번 들었거든요.
이전 회사에서 PDA 관련 기능을 개발할 때, 현장에서 올라오는 VoC 중에 가장 강한 건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화면을 최대한 덜 터치하게 해주세요."
이유도 알고 있었어요. 현장에서는 안전을 위해서 장갑을 착용합니다. 장갑을 낀 손으로 화면을 조작하는 건 어렵고요. 저는 이 인과관계를 문장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아는 거였지, 겪은 게 아니었어요.
지금 매장에서 화면에 손이 한 번 갈 때마다 그 말이 다시 들립니다. 그리고 그제야 그 문장이 어떤 종류의 문장이었는지 알게 돼요.
그건 요구사항이 아니라 고통이었습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요구사항으로 받으면 터치 수를 한두 번 줄이는 선에서 끝나요. 고통으로 받으면 이 화면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묻게 되고요.
시스템은 현장을 돕기만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현장에 비용을 부과해요.
터치 한 번, 확인 한 번, 기다리는 몇 초. 하나하나는 작습니다. 그런데 현장은 그걸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치러요.
그리고 그 비용은 화면 밖에 쌓이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 눈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현장은 바쁩니다. 생각보다 훨씬 바빠요.
그 속도 안에 있어 보니까 한 가지가 분명해졌어요.
현장은 자기 불편을 기능의 언어로 번역해줄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현장의 역할도 아니에요.
현장은 자기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바쁘거든요.
그래서 현장의 말은 자주 정확하지 않은 형태로 도착합니다. 문제의 원인 대신 해결책의 형태로 오기도 하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데 "언젠가 필요할 테니 일단 만들어달라"는 형태로 오기도 하고요.
예전의 저는 좋은 개발자를 이렇게 정의했어요.
요청받은 기능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사람.
요구사항은 주어지는 거고, 제 역할은 그걸 정확하고 빠르게 구현하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요청 뒤에 있는 진짜 문제를 찾고, 그게 시스템 전체의 방향과 맞는지 확인하고, 맞지 않으면 다시 이야기하는 일. 그 번역까지가 개발자의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사실 이건 대학생 때 한 교수님께 한 학기 동안 배웠던 내용이에요.
그런데 그때 그건 저에게 '내용'이었지 '감각'이 아니었어요. 강의로 배운 걸 현장에서 다시 배우는 데 몇 년이 걸린 셈입니다.
빠르게 만들어주는 것보다, 제대로 얼라인해서 하나하나 쌓아가는 게 결국 더 빠릅니다.
그리고 그 번역은 현장을 모르면 시작조차 할 수 없어요. 번역을 하려면 원문을 이해해야 하니까요.
"서비스를 직접 써보세요."
흔한 말이죠. 저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가볍게 들었어요.
한 번 써보는 것과, 그걸로 하루를 보내는 건 다릅니다.
한 번 써보면 UI가 보여요. 하루를 보내면 반복이 보입니다. 그리고 불편은 대체로 한 번의 경험이 아니라 반복 속에 쌓여 있어요.
매장에서의 시간이 저에게 준 건 지식이라기보다 기준에 가깝습니다. 이제 화면을 하나 볼 때마다 이 화면이 현장에서 몇 번 눌릴지, 그 몇 번이 어떤 상황에서 눌릴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거든요. 예전에는 없던 감각이에요.
현장을 이해하는 건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자료로도 회의로도 오지 않아요.
만드는 사람이든 운영하는 사람이든, 한 번은 충실한 사용자가 되어봐야 합니다.
빨리 팀에 배치되어서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런데 그 마음의 내용이 입사할 때랑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빨리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은 빨리 제대로 알고 싶습니다.
학생이거나 취업을 준비 중이시라면 "현장에 가보라"는 말이 막막하게 들릴 수 있어요. 회사에 들어가야만 현장이 생기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현장은 이미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사용자잖아요.
매일 쓰는 서비스 하나를 정해서, 쓸 때마다 불편했던 순간을 기록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이게 불편하다"가 아니라 "나는 이때 무엇을 하려던 중이었나"를 같이 적는 거예요. 전자는 감상이고, 후자는 문제 정의니까요.
그 차이가 결국 기능의 차이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