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근속한 첫 직장(SI) 퇴사 회고록

토마·2023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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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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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18부터 총 4년 근속한 첫 직장을 2023.03.31에 퇴사하였습니다. 제 첫 직장은 흔히들 개발자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SI 업체였고, 포지션은 데이터 분석가(Data Analyst) 였습니다.

 4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제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 몇 개만 추려서 회고록이자 부검 메일(postmortem email)※ 을 써봅니다.

부검 메일(postmortem email)이란?
넷플릭스의 퇴사 문화 '부검 메일'


1. 왜 떠났는가 (퇴직 사유)

 입사한지 2년이 지나 회사에 적응한 뒤부터 제 커리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긴 고민 끝에 아래 2가지 이유들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1.1. 깊은 성장(전문성)에 대한 욕구

"경력이 쌓일수록 '대못'이 아니라 '압정'만 늘어가는 느낌이다."

- 2022년 일기장에 쓴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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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말했듯 저는 제 커리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절망부터 했습니다.

 SI라는 업계, 그리고 회사 특성상 주로 공공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투입되었던 저는 사업마다 변경되는 전문 분야(도메인)와 기술에 맞춰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분야, 기술, 툴(Tool)들을 경험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전문성은 부족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제 '커리어'라는 판자에 대못이 아니라 여러 압정들이,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박혀있는 상태였다고 느껴진 겁니다.

 이런 상황과 고민이 반복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전문 분야와 기술력 즉 '전문성'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습니다.

1.2. 조직 문화

"SI 장점이 뭔지 알아? 끝나면 그만이라는 거야"

- 어느 날 들었던 회사 선배의 말

 SI 업계에서 종사하시는 모든 개발자, 분석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회사 내에서 경험한 대부분의 분들이 위와 같은 마인드로 일을 하셨습니다.

'끝나면 그만이다.'

 네, 끝나면 그만이긴 합니다. 문제는 '잘 만들고' 끝내려는게 아니라 '끝'만 생각한다는 겁니다.

 '어떻게든 끝만 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기획하고 고객과 협의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불분명한 업무 지시, 전무한 결과 검토, 반복되는 사소한 보고들 등이 이어지며 실무보다 소통,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쓰는 불필요한 시간이 점점 늘어나더군요.

 두루뭉실한 기획안을 좀 더 구체화하고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발생이 예상되는 문제들을 제시하는 등 어떤 의견을 표현하면 직급과 연차를 이용해 무시하고 누르신 뒤에 막상 그 문제가 터지고나서 '어떡하지?'라고 하시는게 가장 크고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만 위와 같은 일부 관리자분들로 인해 조직 내에 확산되고 정착해버린 '끝나면 그만이다.'라는 조직 문화가 너무 힘들게하고 안 맞았습니다.


2. 회사에서 배운 것

 SI라고 해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분명히 회사에서 배운 것들도 있습니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두 가지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2.1. 문제 정의, 해결 방법 탐색 능력

interstellar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대부분의 공공 데이터 분석 사업은 요구사항이 정해져 있어도 굉장히 형식적일뿐 범위, 활용 방식 등 모든 것이 구체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국 사업 초반부터 꾸준히, 주기적으로 고객을 만나 의견과 반응을 보면서 고객을 만족시키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interstellar 웹툰 '모죠의 일지' - 블루투스식 소통

 이 때 "고객은 본인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른다" 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데이터 문해력(Literacy, 리터러시)이 있는 고객보다 그렇지 않은 고객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석가는 최대한 명확하게 문제를 정의하고 주어진 상황에 맞춰 최적의 답을 찾아야 합니다.

 4년간 여러 공공 SI, 데이터 분석 사업을 수행하다보니 문제를 인식, 정의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해결 방법을 탐색, 기획하는 방법들을 많이 배우고 숙달했습니다.

 제가 고객 그리고 관리자(PL, PM)를 만족시켰던 여러 방법들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선택지와 예시'를 충분히 많이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래프를 그릴 때 '색상', '범례', '제목' 등 여러 옵션을 뒤섞어 다양한 그래프들을 뽑은 후 상대의 반응과 의견을 구하는 겁니다.

 대화만 하기보다 자료를 '같이 직접' 보면서 소통하는 것이 훨씬 단순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반복해서 의사소통하고 수정하는 과정도 줄어드니 투입되는 시간도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2.2. 수시로 보고, 소통하는 것의 중요성

 '수시로 고객,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많은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꼈지만 하다보니 적응이 되었고 나중에는 오히려 편해졌습니다.

 틈틈이 진행 상황과 예상 결과물, 일정 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관리자와 고객에게 큰 신뢰와 안정감을 줍니다. 그분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주어진 업무를 완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상대방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주면 여러가지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 거절하긴 했습니다만, 감사하게도 이전에 같이 일했던 고객께서 이직 제안을 해주신 적도 있습니다.)

 또 마이크로 매니징(Micro Managing)을 피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좋습니다. '최소한의 눈치'가 있으신 관리자, 고객들이라면 사전에 보고하고 공유했을 때 (까먹지 않는 이상) 다시 물어보거나 요청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3. 회사에 아쉬운 점

 회사에 아쉬운 건 본질적으로 하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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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말한 '끝나면 그만이다.'라는 조직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확하게는 조직원들이 '완성도'있는 '공동의 목표'에 집착하고 '공동의 성장'을 지향하는 조직 문화가 자리잡길 바랍니다.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고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도없이 기존 방식만 반복하면서 사업 종료만을 바라보는 것'성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4. 앞으로의 방향성 (하고싶은 일)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로 나누어 목표를 세웠습니다.
 (전문 분야(도메인)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 소프트 스킬(Soft Skill)
    • 리더십
    • PL, PO, PM 업무 (기획, 관리 등)
  • 하드 스킬(Hard Skill)
    •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분석
    • 대시보드 구축
    •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

 위와 같이 선정한 이유는
1. 리더십있고 섹시하게 일하시는 분들을 닮고 싶고 나도 잘하고 싶다는 욕심
2. 데이터 분석가의 본질적인 업무에 대한 고민입니다.

 위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올해 1월부터 관련 도서를 찾아 읽고 유료 강의를 수강 중인데 얼마전에 계산해보니 벌써 200만원 이상 썼더군요... (모두 내돈내산입니다.)

 종종 지칠 때도 있고 재미없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흥미와 관심을 갖고 성취감을 느끼는 중입니다.

 5년 이내에 '데이터 분석 전문가'이자 '구성원의 이탈률(퇴사율)이 낮은 조직'을 이루고 싶습니다.

 궁금하신 점이나 추천해주실 도서, 강의가 있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오늘 하루도 버티며 성장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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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커피를 좋아하는 데이터 분석가입니다. 이런저런 다양한 생각들을 쓰려고 합니다.

1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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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1일

안녕하세요 같은 업무는 아니지만 근속연수 & 퇴사 사유가 비슷해 뜻깊게 읽었습니다.
토마님을 글을 읽으니, 저도 4년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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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일

저도 SI 업계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다 퇴사 후 다음 진로를 고민 중인데 공감 가는 내용이 많습니다.
글에서 언급해 주신 SI 업계의 문제점들에 대해 저도 한때 많은 고민과 아쉬움들이 있었는데
구성원들 개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빨리 탈출하는 게 정답" 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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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일

저도 짧은 SI 경험이 있는데 공감 되는 부분이 많네요.
'2. 회사에서 배운 것' 파트에서 토마님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시는 방법을 보니
너무 멋져서 저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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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4일

안녕하세요, SI에서 데이터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주니어입니다. 주어진 환경이 비슷하여 클릭했고,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고민하면서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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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7일

리더십있고 섹시하게! 와닿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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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8일

첫 직장이 SI 업계 였어서 그런가 공감이 많이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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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일

안녕하세요. 데이터 직무에 관심이 있는 학생입니다. '4. 앞으로의 방향성 (하고싶은 일) - 하드스킬'에서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이 리스트 목록에 있는데요.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은 데이터 엔지니어의 직무로 알고 있습니다. 그쪽으로 직무전환을 생각하시는 건지? 아니면 현업에서 크게 구분없이 분석가가 데이터파이프라인 구축도 하고 분석도 하기 때문에 방향성을 그렇게 잡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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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2일

안녕하세요 저도 SI회사 2년동안 다니고 퇴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SI회사는 처음이었는데요 끝나면 그만이다 라는말 엄청 공감됩니다. 그리고 커리어적인 면에서도 좋지않았습니다. 물론 경력은 쌓이겠지만 실력은 제자리이고 물경력이 되어서 앞으로 24년도에는 분발해서 좋은 회사가고 자기개발하려구요 글 감사합니다 저도 회고록을 써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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