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작별인사_김영하

🌩 es·2022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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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처럼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로봇이 있다면 그건 인간인가, 기계인가?


줄거리

스포주의!!

엄마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철이. 비가 오던 날 아빠를 마중나가려고 집을 나선 철이는 휴머노이드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게 된다. 도착한 곳은 국가에서 새롭게 제정한 휴머노이드 관리법에 의해 미등록되거나 더이상 인간에게 쓸모가 없어진 휴머노이드 기계들을 모아둔 수용소였다.

이야기의 배경은 21세기의 통일 이후의 어느 미래 시점으로, 기술이 매우 발달하여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인간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가는 시대이다.

수용소에서 철이는 선이라는 인간 아이와 팔 한 쪽을 잃은 휴머노이드 민이를 만난다. 그곳에서 철이는 선이와의 대화를 통해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인식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던 중 통일 후 지방 인프라 유지에 손놓은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과 전투용 휴머노이드들에 의해 수용소가 파괴되었고, 철이와 선이, 민이는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결국 이들의 위치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기계들에 의해 발각되었고, 경비용 휴머노이드에 의해 민이가 죽음을 당한다. 사람은 아니지만 망가졌기 때문에 기계로서의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선이는 민이에게 새로운 몸을 연결하여 의식을 복구하고자, 민이의 데이터가 남아있는 머리통을 챙겨서 철이와 함께 계속해서 도망을 친다. 그러다 달마라는 휴머노이드를 만난다. 철이는 달마를 통해서 본인도 아빠인 최박사에 의해 인간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완전한 기계로서의 삶을 선택했을 때 어느 곳에서든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뇌의 데이터를 전세계 네트워크 상에 백업하여 기계적인 신체가 없더라도 의식은 남아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철이는 자신을 계속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원래 살던 곳으로 아빠를 만나러 돌아가려고 한다. 철이의 몸 속에 있는 신호를 주고 받는 장치를 통해 최박사와 연락이 닿게 되었고, 최박사는 달마가 관리하는 휴머노이드 치료소를 파괴 후 철이를 데려간다. 선이는 따라가지 않겠다고 한다.

최박사는 기계에게 인간의 정수를 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인간인 선이에게는 그닥 관심이 없었다. 치료소 파괴 과정에서 몸이 망가진 철이를 가지고 연구소 몰래 연구를 하다가 발각이 되었다. 최박사는 회사에서 쫒겨났고 인생이 점점 파탄나기 시작했다. 철이를 아들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에는 인간의 이기심을 드러내며 철이를 기계로만 대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결국 철이는 달마의 도움으로 새로운 신체에 의식을 연결하고 선이를 만나러 간다. 선이는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며 동물들, 망가진 휴머노이드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철이는 그곳에서 늙고 병들어가는 선이를 돌보며 선이의 죽음까지 함께 한다. 그리고 어느날 살아있는 곰한테 공격을 받고 선이가 말하는 끝을 경험하면서 기계로서 인간과 같은 죽음을 맞이한다.

느낀 점

외국 소설에 비해서 쉽게 읽혔다. 유치하거나 단순하게 쓰인 것은 전혀 아니었으나 꼬아서 어렵게 쓴 문장이 아니어서 각 문장들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와닿았다.

소설 끝 부분에 있는 작가의 말을 보니, 달마와 선이의 대화가 철학가의 말을 빌려온 것이라고 하는데 소설을 통해 철학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없고, 붉게 물든 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 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채 동이 트지 않은 휴먼매터스 캠퍼스의 산책로를 달리던 상쾌한 아침들을 생각했다.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 p.242

철이가 몸을 잃고 나서 감각을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고, 의식은 깨어있으나 공허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포만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알약이 있으면 좋겠다.” 이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 그 사람은 동의하지 못한다고 했다. 먹는 즐거움을 왜 포기해야 하느냐면서.

의식이 깨어있는것 뿐만 아니라 신체가 함께 있어서 느끼는 배고픔, 고통 등의 감각이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중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1.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신체를 가진 기계인 철이가 자신을 인간이라고 믿고 살아간다면 인간의 삶이라고 볼 수 있을까?

철이는 인간이라고 믿지만 선이와의 만남 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언젠가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탐구하고 도전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이야기나 음악과 같은 것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유산을 여러 세대를 통해 전달함으로서 비로소 무한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

  1.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는 철이가 신체가 없이 데이터와 머리만 존재한다면 인간의 삶이 아닌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이가 민이의 데이터를 가지고 다른 몸을 붙여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새로 태어난 민이를 그 전처럼 똑같은 민이라고 생각하고 대할 수 있을까?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몸에 내가 원래 알던 누군가의 의식이 들어가있다면? 그 사람의 의식과 생각이 그대로더라도 내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서 그 사람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원래 내가 원래 알던 ‘그’ 인간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죽음이 온다는 건, 언젠가 몸이 병들고 맑았던 의식이 흐려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건 무섭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금 하고 있는 수많은 고민과 생각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이 나의 존재를 무한하게 만들 수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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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가 아닌 완성주의(블로그 이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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