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개발자가 되고 싶은 걸까? - 지금까지 나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 알아보기

성묵·2021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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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이는 재미있었다. 오징어 게임에 나왔던 놀이들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밖에서 놀 때는 우리끼리 규칙을 새로 만들어서 우리들 만의 놀이를 만들었다. 거기에서 나는 꽤나 규칙에 진심이었다. 규칙을 만드는것도, 지키는것도 놀이 안에서는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또한 장난감을 만들어서 노는것도 좋아했다. 특히 레고를 갖고 내 마음대로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고 하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내가 만든 것들을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같이 놀때 더욱 재미를 느꼈었다. 내가 만든 것을 다른 사람이 내가 만든 의도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았다.

나의 관심사가 프로그래밍이 되기 까지...

이런 내가 학창시절에 컴퓨터에 관심을 갖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처음에는 게임을 하는것이 좋았지만, 나는 게임을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게임을 잘하기 위해 실력을 늘리는 것이 아닌, 편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크래킹 해킹이라는 세상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컴퓨터를 동작시키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내가 직접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람들은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했고 c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어린 나의 머리로는 포인터의 개념이 나오면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포기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대학교에 가게 되었고, 내가 관심있는 컴퓨터공학이 소속된 정보통신학부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때가 아이폰이 막 나왔을 무렵이었다. 어디서나 웹서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재미있는 앱들도 많이 나왔다. 그러면서 나의 관심은 웹과 어플리케이션으로 바뀐다. 내가 프로그래머가 되어 의미있는 앱을 만든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크게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프로그래머가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졸업 후 첫 취업은 앱이나 웹 서비스를 만드는 곳이 아닌 통신 장비 위에서 동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이었다. 개발자가 학습해서 성장하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이것이 결국에는 모두에게 더 좋은 결과를 준다는 마인드를 갖은 대표님이 계신 곳이었다. 학습과 프로젝트 진행이 6:4의 비율이 되는 곳이었다. 이곳이라면 프로그래머로서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 입사한지 2달만에 회사는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엎어지며 문을 닫게 된다.

두번째 회사 생활 -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두번 째로 들어간 회사는 사람의 유전체를 연구하는 바이오 회사였다. 이 회사라면 사람의 유전체를 분석해서 아직 우리가 모르는 질병들을 고치는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에 나도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회사에서 사용하는 천여대가 넘는 서버의 유지보수와, ETRI에서 개발했다는 슈퍼 컴퓨터를 회사에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서버를 연결하고, 서버가 정상 동작 하지 않으면 원인을 찾아내서 수리하고, 모든 서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 등을 했다. 물리적인 인프라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 당시에 서버 관리자로 일하는 나는 프로그래머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기존에 만들어 진 것을 관리만 하고있는 관리자로 있다는 생각에 열정은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의 발견과 선택

회사는 점차 투자를 받으면서 더 많은 유전자 데이터를 더 빨리 분석해야 했고, 투자 받아온 돈들로 더 많은 서버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 혼자서는 이 모든 서버를 개별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관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이 Elastic Search, Beats, Logstash, Kibana로 이어지는 ELK Stack이었다. 혼자서 학습을 하면서 동작 원리를 파악하고, 시스템 정보와 사용량, 에러 로그들을 보기 좋게 편집하여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이것을 대시보드에 시각화해서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나면서 내가 잊어버렸었던 무엇인가를 만드는 즐거움을 다시 발견했다. 그러면서 점차 자동화에 관심을 갖고 다른것들도 자동화 하고 싶어졌다.

서버 자동화, 배포 자동화 등을 학습하며 사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저런 활동들이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프로그래밍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다소 따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미래를 생각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덜 중요하게 느껴졌었다. 많은 기업들에서 클라우드로 점차 넘어가고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을 했던것 같다. 3개월 정도 고민을 하다가 새로운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퇴사를 하기로 결정 했다.

퇴사를 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데이터 사이언스의 길을 갈까 아니면 부트 캠프 코스를 통해 웹 프로그래머가 될까 고민과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여자 친구가 미국에서 유학을 하러 간 시점이어서 나도 유학을 준비해서 같이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좋지 않게 바뀌었고, 1년여의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한국에 남아서 웹 프로그래머로 준비해서 취업을 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유튜브와, 노마드코더의 강의, 인프런 강의 등을 듣고, 관련 도서들을 보면서 독학으로 준비를 하였다. 그렇다 보니 혼자서 작업하는 것에 익숙했다. 여러 기업들에 지원해서 면접을 보면서 확실히 내가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에 원티드에서 위코드와 함께 프리온보딩 코스를 진행한다는 글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기업에서 내주는 과제들을 해나가면서, 협업과 설계,개발,배포,문서화의 사이클을 여러번 연습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1주차를 지나고 있는 지금 정말 협업도 부족하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잘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매주 2개의 과제를 팀원들과 같이 해나가면서 성장하고 잘 준비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결국 나는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걸까?

나는 어렸을 때 부터 필요한 것을 만들고, 이것을 다른 사람이 의미있게 사용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하고, 실제로 만들어서 잘 동작하는지 확인하고, 내가 만든 것들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과정이 모두 좋았다. 나는 코딩을 할 때 깊이 있게 몰입하고 그 과정 가운데서 재미와 의미 둘 다 느낀다. 그래서 코딩을 하는 것 자체로도 너무나도 좋다.

하지만 내가 혹은 우리 팀이 만든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해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반쪽의 만족감, 성취로 느껴진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면 생명이 없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50~60이 되어서도 코딩을 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삶이 가능하려면 내가 지속적으로 코드를 통해 살아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만든 서비스/프로그램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지속해서 소통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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