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에세이

서인·2023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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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톤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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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나온 과거에 대해 한 마디로 일축하자면 후회와 무기력함이 공존했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무엇을 고르던 항상 내 선택에 대한 회의를 느꼈고 그러한 감정이 결국에는 나를 발전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항시 내 머리에 내재되어 있었으나 나는 나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또 변화를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이를 실행할 용기 또한 없었다. 일단 내 성격은 지나치게 소극적이었고 내가 속해있던 환경은 나를 더욱 주눅 들게 했다.

나는 내가, 그리고 내가 행하고 겪어왔던 모든 일들이 너무 싫었고 그 혐오에 대한 표출은 유학으로 이어졌다.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지만, 지금 보면 참 무모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영어를 그리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때의 나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는데,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나는 아무런 정보 없이 캐나다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선택조차도 후회했다. 유학하는 3년 내내.

나는 영어도 못 하는데 누군가에게 말을 걸 자신감도 없었으며, 어쩌다 내가 말을 할 때마다 버벅거리고 문법을 다 틀리는 게 너무 싫었다. 실패에 대한 무서움은 내 입을 닫아버렸고, 그로 인해 당연히 영어가 늘지 않으니 공부하는 게 힘들었다. 영어 공부에 신경 쓸 수 없을 만큼 많은 악재가 겹치기도 했지만 그건 서술하지 않겠다. 내가 어떠한 환경에 놓여있었든 간에 모두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3년이 다 지나가고 나니 남은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은 항시 내 주위를 맴돌았고 난 계획에 없었던 한국에 들어와서 반년간 방황을 했다. 나는 이룬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 대학에 들어갈 만한 스펙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기는 싫고, 영어가 많이 는 것도 아니며 지식을 많이 쌓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나는 유학을 결정하던 그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여러 가지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남들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던 내가 어느샌가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었고, 수없이 해왔던 프레젠테이션 덕분인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떨지 않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법을 터득했다. 이전의 나는 내가 직접 나서기가 너무 두려워 주로 사람들을 관찰했는데, 그 때문에 무엇이든 관찰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생겼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일 처리를 하는지,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분석해 이로운 점들만 나에게 적용했다. 나는 나 자신에 관한 성찰과 분석을 가장 많이 하는데, 내가 지닌 성격과 특성들을 파악하고 내 장단점을 확실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또한 내 공허함과 우울감에 맞서 싸우지는 못해도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슬플 땐 슬퍼하고 힘들 땐 힘들어하면 된다. 실패를 겪으면 당연하게도 너무 절망적이고 힘들지만, 여태까지 행해왔던 모든 실패를 밑거름 삼아 이제는 조금 더 이른 시일 안에 내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샌가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이겨내고 있었다.

아직도 부족한 게 정말 많지만 그래도 조금은, 어쩌면 많이 달라진 현재의 내가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 마음가짐은 아직도 변함이 없고 크래프톤 정글에 들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제 하루마다 조금씩 발전하고 싶고,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므로 나는 여기에 왔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만은 없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그 기회는 준비된 사람만 잡을 수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나는 그동안 불행과 너무 가깝게 살았고 아직도 행복이라는 단어의 명확한 정의를 모르지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천천히 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후회하지도, 무서워서 피하지도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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