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5
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글쓰기는 결국 내면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p.30
누가 쓴 책이든, 무엇에 관한 책이든 비판적으로 읽는 게 기본입니다.
책은 모두 사람이 쓴 겁니다. 가방끈이 얼마나 길든, 하는 일이 뭐든, 사람은 다 비슷한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잘 속이고, 쉽게 속아 넘어가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빠지고, 감정과 충동에 휘둘리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동물. 우리는 모두 그런 불완전한 존재로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그래서 누가 쓴 어떤 책이든 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p.32
훌륭한 생각과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한 글은 저절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정치적 목적을 잘 이루려면 아름답게 글을 써야 합니다.
p.39
우리는 내면에 지닌 생각과 감정을 글로 씁니다. 당연한 말이죠? 글쓰기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문자로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만들어 쓰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글짓기'가 아니라 '글쓰기'가 더 적절한 표현이지요.
p.42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답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글을 씁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써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생각과 표현에서 멀어져야 한다."
p.44
말과 글은 사람의 세계관과 철학을 드러냅니다.
글을 쓰면 제 모습이 더 잘 보입니다.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주된 효과인지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글쓰기는 자기 성찰을 동반하는 것이죠.
그러나 권력과 돈만 속박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 각자가 지닌 생각도 때로 속박이 됩니다. 살아가려면 세상을 이해해야 하고, 세상을 이해하려면 생각의 틀이 있어야 합니다.
p.46
어떤 '주의'를 받아들여 사용하면서도 거기 속박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찾은 방법은 직관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주의'의 원칙이나 교조보다 마음이 내는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p.48~49
정언명령 1번은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고, 2번은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 자격을 얻는다는 주장입니다. 그저 욕망을 충족하는 데만 매달려 사는 사람은 중력에 끌려 바닥으로 떨어지는 당구공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행복을 누리려면 욕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삶의 주인이 되라는 조언이지요.
정언명령은 '이성을 사용하는 규칙'입니다. 칸트는 이 규칙을 인식하는 것은 이성 그 자체의 기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별히 배우거나 경험하지 않아도 누구나 도덕법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
-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의지의 표상이고, 모든 의지는 어떤 준칙에 따라 형성되는데 이 준칙이 바로 '보편적 입법원리'에 합당해야 한다는 것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말고, 목적으로 대우하라'
- 각자는 자기 준칙의 입법자로서 자유롭고 동등한 자율적 인격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는 의미.
- 인간관계에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갖는 수단/도구로서의 의미를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이는 수단으로'만' 대하지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의미. 수단일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항상/동시에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
- 인간 존재의 궁극성/목적 = 모든 인간은 동등한 가치와 동등한 존엄을 갖는 독립된 인격체이므로 각자는 자신의 의지와 준칙에 따른 행위능력을 갖고 그 행위는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실
- 행위능력으로서의 자기결정권을 말하는 실천이성의 자율성에 대한 상호존중과 상호인정이 바로 위 문장이 뜻하는 바.
-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는 경우 : 상대의 의지/판단/결정/행위 등에 대한 무시나 경멸이 내면에 존재하고 자율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존중감이 없다는 것 의미
- 목적으로 대우받지 못한 자 보다는 목적을 망각한 자에게 더 치명적인 인간성 상실을 결과한다.
-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고 자유로운 자기결정권을 갖는 존엄한 존재이므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상호인정과 상호존중이 바로 '목적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예의
- 수단에 집중하면 추진력을 얻을 수 있고, 목적에 집중하면 방향성을 얻을 수 있다.
- 수단은 속력에 도움을 주지만 그것이 속도를 의미하진 않는다. 눈을 감고 감각에 의존하며 전력 질주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빠르게 달릴 수야 있겠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지 알 수 없고, 중간에 장애물이 닥쳐도 피하기는 커녕 대체로는 인지조차 할 수 없으며, 나중에 다른 방향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어도 바로 방향을 틀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틈틈이 목적을 확인하며 본인이 바라는 방향대로 가고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p.50
이념은 세상을 바라보는 데 유용한 인식의 틀이지만, 사람의 생각을 속박하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 미학적 열정을 자유롭게 발현하려면 어떤 도그마에도 예속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저는 어떤 '주의'가 아니라 '옳은 것'과 '선한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직관의 힘에 의지합니다. 나쁜 감정과 고약한 충동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야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도덕적 미학적 직관이 날개를 펼 수 있기 때문이죠.
p.54~56
정치인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견해가 달라서 말과 글로 싸울 때는 창의적으로, 개성 있게, 예술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예술성이 완전히 꽝인 글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막말로 감정을 배설하거나 거짓말로 남을 비방하지 않고 제대로 주장을 펼친다면 논쟁은 좋은 겁니다. 예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진리가 아니라 '관용'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믿습니다. 진리에 대한 집착과 확신은 오히려 자유를 파괴합니다.
예술적인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독창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p.59
예술성은 문장의 아름다움과 아울러 독창적인 논리의 미학을 요구합니다. 그런 글을 쓰려면 생각과 감정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 놓아야 해요.
예술적으로 쓰고 싶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정해진 도그마보다 자기 자신의 눈과 생각, 마음과 감정을 믿는 게 현명합니다.
예술은 자유를 먹고 피어납니다.
고정관념과 이념의 교조에 생각과 감정이 묶이면 글이 진부해집니다.
진부냐 보수냐? 내 이념을 어떻게 글쓰기에 반영할까? 창의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이런 헛된 질문을 털어 버리고 오로지 아름다운 것과 옳은 것만 생각하면서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렇게 씁니다.
p.76
더러운 것을 더러워서 피하면 이기는 것이지만 두려워서 피하면 지는 겁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