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프로게이머의 유명한 명언이 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나의 올 한해를 가장 잘 나타내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스스로 느끼기에 불합리한 일도 많았고, 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시험하는 때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결국 꺾이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피어오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랴.
사실 블로그 글을 쓰지 않은지 거진 5달이 되었었다. 변명을 조금 해보자면, 너무 간절했고, 너무 바빴다. 원하는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니, 그동안 올 한해를 돌이켜 생각해보며 이 치열했던 2024년을 최대한 기억하고자 이 글을 쓴다.
작년 3학년 중순까지 뭘 해야할지 몰랐던 나는 처음으로 뭔가에 몰입를 하기 시작했다. 백준봇을 만들 당시, 나는 코드에 변경사항이 생길 때마다 EC2에 직접 접속하여 git pull
로 매번 적용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EC2에 문제가 생겨 다시 생성해야 할 때는 처음부터 환경을 다시 세팅해주는 불편함이 있었다.
밤새 코딩하고 침대에 눕는 순간, 내 머릿속에 "이걸 자동화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더 없나 하면서 무작정 구글링을 시작했다.
이 때 나는 CI/CD나 컨테이너가 뭔지도 몰랐다.
코드에 변경사항이 생길 때마다 자동으로 빌드를 하고, 서버에 적용을 시키며, 환경에 상관없이 항상 일관되게 애플리케이션이 작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고, 이 때 발견한 것이 바로 "컨테이너", "Github Actions를 이용한 CI/CD" 구축이었다.
이것들을 모두 구현하며 git commit
을 할 때마다 자동으로 변경사항이 적용되는 것이 너무 신기했던 나는, 애플리케이션 작동이 배포 중간에 끊기지 않도록 무중단 배포까지 실험을 했으며, 급기야 홈서버를 사 Kubernetes를 띄워 다양한 실험을 했다.
2~3주간 밤을 새도 전혀 고통스럽지 않고 너무나 즐거웠던, 첫 몰입이었다.
올해 초는 대학 입시 이후 처음으로 절박했던 시즌이었다. 당시 나는 졸업을 위해 반드시 인턴을 해야 했었고, 발빠르게 올해가 시작되기 전 여기저기 인턴 지원 서류를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지고 말았었다. 6번의 서탈, 1번의 코테 탈. 심지어 학교 연계 인턴십 프로그램까지 모조리 탈락.
딱 하나 서류에 합격한 인턴은 다름 아닌 DevOps Engineer 인턴이었다. 위에서 적은 몰입 경험을 인상깊게 본 팀장님께서 나에게 역제안을 하셨고, 귀중한 면접 기회를 얻었다.
이 당시 나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2개월 간의 전형, 길고 긴 싸움에 나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고, 떨어진다면 꼼짝없이 추가학기를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점심 부터 새벽 3시까지, 약 1개월 반 동안 매일 면접 준비 및 공부를 했다. 고통스러운 기간 끝에 최종합격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얻었다.
더 자세한 얘기는 https://velog.io/@synoti21/1주차-출근-후-쓰는-인턴-합격-후기 에서 볼 수 있다.
3월 4일, 나의 첫 인턴 근무였다. 겁에 잔뜩 질린 병아리마냥 나는 떨면서 HR 분의 안내를 받아 자리로 갔다. 사수의 온보딩을 받으며 이곳 저곳 둘러봤을 때, 모든 개발자 분들이 정말 프로패셔널 하게 보였고, 그들의 토론은 마치 그리스의 아고라를 연상케 하는 느낌이었다.
타운홀에 들어갔을 때는 경영진과 모든 직원들이 서로 소통하는 자리를 보며, 이곳에 있는 내 자신이 뿌듯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초반에는 앞으로의 나의 길이 이 곳에서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았다.
정규직 전환 미팅이 있던 5월, 나는 전환을 "보류"당했다. 3일간 매너리즘에 빠졌었다. 정규직 전환이 미팅 이후에 되지 않은 것은 비슷한 동기들 중 내가 유일했기에, "내가 뭐가 부족했지?" 하며 스스로 자책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나는 억지로 문제를 짚어가며 이것 때문에 내가 되지 않았구나 라고 했다.
이후,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내 부족한 점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보류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고, 나는 서돌러 Next Step을 준비해야만 했다. 숨 고를 틈 없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비하고, 새로운 직장을 계속 알아봤다.
다른 인턴을 포함한 여러 포지션에 지원했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서류 전형은 물론 1차 면접을 뚫는 것도 좀 어려웠다. 거의 2개월 내내 서류-면접의 무한 반복이었다. 무수히 많은 탈락 메일을 받으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지쳐가기 직전, 현재 다니는 직장의 "라이브 코딩 테스트" 면접을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텅 빈 학교 실습실에 갇혀 라이브 코딩 테스트 연습을 하고, 가끔 현타가 오면서 내가 뭘하고 있는 건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 한번만 꾹 참으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라이브 코딩테스트 면접을 통과하여 인턴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해당 인턴 포지션은 채용 전환형 인턴이었으며,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인턴 기간동안 프로젝트를 통해 기회를 얻어야 했다. 초반에는 정말 훌륭한 멘토님께서 열심히 도와주신 덕에 잘 해낼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 수록 코드 리뷰나 피드백 회의 과정에서 나의 부족함과 단점을 직면하게 되면서 점차 자신감이 떨어지게 되었다. 프로젝트 진행도 예상보다 지체되면서, 기간 내에 할 수 있을까라는 초조함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죽하면 불안감 때문에 자다 일어나서 코딩해야 겨우 해소가 될 정도였다.
다른 기업에 공채로 지원하는 시간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전환이 안되면 또 그 고통스러운 취준을 해야했다. 1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오고,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어금니 꽉 깨물고 버텼지만, 이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날 더욱 옥죄이고 있었다.
벼랑 끝으로 몰린다면 인간이 각성한다는 말이 나온 건지, 어느 순간 나는 속으로 나에게 되뇌이고 있었다.
"후회만 하지 말자."
전환이 되든 말든, 그건 하늘이 정할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후회만큼은 절대 남기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과거에 갇혀 살며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매번 후회하는 사람이었지만, 올해는 정말 바빠서 그랬을지 몰라도, 단 한번도 과거를 돌아본 적도, 후회한 적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이젠 뒤가 아닌 앞을 보는 사람이 되어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 발표가 끝난 뒤에야 올 한해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쉬운 순간은 있어도 후회의 순간은 없어서, 결과가 어떻든 올 한해는 스스로도 수고했다고 다독일 수는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팀에서 나의 이런 노력들을 알아봐준 덕에 전환에 성공했다. 올 한해의 노력을 보상받는 느낌이고, 중간에 내가 꺾였다면 절대 이룰 수 없을 보상이었다. 달리면서 얻은 상처들은 나를 쓰라리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진 흉터들은 더 단단한 살갗을 만들었다. 온 몸을 옥죄던 불안감은 모래주머니가 되어 두 다리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런 시련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인생을 결정하는 것 같다. 첫 정규직, 정말 불안하고 솔직히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나가지만 올 한해 배운 교훈들을 잘 기억한다면, 다가오는 2025년 또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