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의 사회인

Yeseul Han·2024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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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바게뜨 알바를 할때의 일이다.
12시 경이 되면 찰랑 거리는 문에 걸린 종소리와 함께 사원증 목걸이를 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개중엔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료들과 해맑게 떠들며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중엔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를 또 감내해 가며 사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사는지 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근무하고, 점심시간이 얼마나 짧고 퇴근후 일상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는 못했다.

그저 나는 27살에 취직도 하지 못한 그저 그렇게 나이만 먹고 있는 인생이었고, 그들은 무려 '사원증'이라는 사회의 톱니바퀴중에서 꽤 쓸만한 톱니바퀴라는 증명서를 목에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게....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건 사회의 계급차이를 표시하는 신분증이었다.

그때 아무에게도 말을 못한 내 꿈은 사원증을 가진 어른이 되는것 이었다.

비슷한 기억이 나에게는 여러번 있다.
어느 날씨 좋은 가을, 저녁 노을 지던 광화문 거리를 걸으며, 어떤 이들은 지나간 연인을 떠올렸을 테고, 어떤 이들은 나라의 국운을 걱정을 했을터이다.
나는 높은 유리창 빌딩들을 보면서 저런 회사에는 과연 누가 일할까, 저런 회사에 일하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광화문 거리는 나에게 그런 경외감 어린 기억을 주는 장소이다.
지금 난 그 광화문 거리의 높은 빌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그 멋진 어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난 아직도 내가 파닥파닥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발장구를 치는 오리같다고 생각한다.
내 꿈은 사회에 가치가 있는 1인분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1인분의 톱니바퀴가 목표니까, 그걸 지금도 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친구도 사실상 없고, 이렇다할 취미도 없다. 그렇다고 일을 잘하는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마음의 여유도 없고, 통장에 돈도 없다.
그저 사회에 톱니바퀴로서 기능하는 것 그것 하나만 겨우 할 수 있는 삼십대 중반의 어른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는걸까?
내 어린시절 목표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였다. 무슨 위인전인지 동화책인지를 봤는데, 이 문구를 봤고, "그렇지. 사람이 태어나서 이름은 남기고 죽어야지" 뭐 이런 꼰대 할아버지 같은 생각을 했던것 같다.
뭘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죽을때 이름을 남기고 죽고 싶다라는 생각에 처음엔 과학자를 꿈꾸었다가, 내가 그만큼 똑똑하지는 않은것 같아서 이름을 남길 수 없을것 같아, 과학자라는 꿈을 포기했다. 그 다음엔 가수가 되고 싶었던것 같은데 내가 노래를 꽤 못부른다는 걸 깨닫고 같은 이유로 가수도 포기했다.
그렇게 조금씩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혹은 내 분수를 알아가면서 목표가 조금씩 조금씩 내려오게 된다.
중학교 시절쯤에 할머니가 내 사주를 봤는데 사주쟁이가 서울대 간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난 그 얘기를 믿으면서 좋은 대학에 가는 망상을 했다. 좋은 대학을 가고, 그 다음에 과외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고, 좋은 직장을 가고...
현실의 난 머리도 그만큼이 안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질 못했고, 불안증은 더 심하게 앓고 있는 상태였다. 좋은 성적을 낼만한 어떠한 조건도 충족하지 못했다.
뜬구름 망상만을 붙잡고 본 수능은 당연히 처참하게 망했다.
위에서 공부를 안했다가 아니라 못했다고 표현했는데, 변명이 아니라 정말로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난 수능 망치면 자살을 할 생각을 매일같이 하고 있었다. 매일 같이 성적이나 대학입시와 관련된 악몽을 꾸고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 때문에 손에 공부가 안 잡혔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도망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았다.

단 1년 뒤인 20살에 난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난 아직도 스트레스 상황에 업무에 집중 못하거나 도망치는 버릇이 있다. 스스로 나에게 "난 이제 어른이야. 지금 난 스트레스 받아서 도망치려고 하고 있어. 어른은 그러는게 아니야" 라고 되뇌인다. 늘 효과를 보는건 아니고 잘 될 때도 있고, 안될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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