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과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틀 연속 샌프란시스코의 무대에 섰다. 24일에는 더 미드웨이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혹 탄 브로드컴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한자리에 모인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이 열렸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영상으로 함께했다. 기업인·연구자·스타트업·투자자·학생 등 약 230명이 지켜본 이 자리에서, 향후 5년간 9,500억 달러(약 1,375조 원) 규모의 반도체·AI 인프라 협력이 발표됐다. 지난 6월 이미 나온 4,700조 원 규모의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도 이 자리에서 재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세계의 기술과 자본, 인재와 아이디어가 연결되는 대체 불가의 글로벌 AI 협력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날인 25일, 무대는 페어몬트호텔 테라스룸으로 옮겨졌다. 이번엔 빅테크가 아니라 빅테크를 키운 사람들, 앤드리슨 호로위츠, 세콰이어 캐피털, 제너럴 캐털리스트,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스, 뉴 엔터프라이즈 어소시에이츠, 코슬라 벤처스 등 실리콘밸리 6대 벤처캐피털과 국민연금공단이 마주 앉았다. 애플과 엔비디아, 구글을 가장 먼저 알아본 안목을 지닌 자본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과 미국은 오랜 안보 동맹을 넘어 이제 기술 동맹, 혁신 동맹, 스타트업 동맹으로 협력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하며, "다음 세대의 삼성과 현대, SK, 네이버"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틀간의 장면만 놓고 보면 화려하다. 세계 AI 산업 지도의 거의 모든 층위, 반도체와 모델, 클라우드와 자본이 한국을 향해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베테랑 기자의 눈으로 이 장면을 오래 들여다보면, 박수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24일의 무대에 오른 기업들의 면면을 다시 보자. 엔비디아, 오픈AI, 앤트로픽, 마이크로소프트. 이들은 세계 AI 산업을 이끄는 혁신 기업인 동시에,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과 국방 AI 체계에서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주체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가 이미 내놓은 국가 AI 전략 문서는 첫 문장부터 선언한다. 미국은 이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그 계획 안에서 AI는 산업 정책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군사 우위를 동시에 결정짓는 전략 자산으로 다뤄진다.
이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실리콘밸리의 얼굴이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GPU는 군사 AI 컴퓨팅의 핵심 기반으로 취급되어 수출통제의 대상이 되어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국방 클라우드를 제공하며, 오픈AI와 앤트로픽의 이름도 국방 분야 AI 활용 논의에 오르내린다. 24일 우리가 초청하고, 우리를 초청받아 준 그 기업들이 정확히 이 명단 위에 있다는 사실을, 협력의 성과에 취해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분명해진다. 미국의 야망은 백악관 문서 첫 줄에 이미 적혀 있을 만큼 선명하다. 우리의 야망은 무엇이었나. 이 질문에 답을 갖고 그 자리에 앉은 것과, 답 없이 손만 맞잡은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반도체 생산능력, 제조업 현장, 데이터센터와 시장을 하나로 묶어 "빠질 수 없는 국가"가 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이 25일 실리콘밸리 VC들 앞에서 밝힌 말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투자 역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고, 대한민국은 뛰어난 기술력과 제조 경쟁력, 역동적인 창업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자본과 기술을 맞바꾸자는 이 제안 자체는 합리적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협력이 끝난 뒤 한국 안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아직 누구도 완전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공장과 전력, 시장과 데이터를 내주고도 핵심 모델과 컴퓨팅 표준, 산업 규칙과 이익의 대부분이 미국 기업에 남는다면, 한국은 세계 AI 생태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질서를 결정하지 못하는 나라가 된다. 그 경우 우리가 얻는 지위는 '대체 불가한 국가'가 아니라 '대체하기 어려운 생산기지'일 뿐이다.
여기에 방위산업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겹친다. 한국 방산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고, AI와 방산이 결합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이 미국 중심의 안보·기술 네트워크에 더 깊숙이 편입될 가능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방산 수출 확대가 요구하는 국제적 책임, 분쟁 지역 무기 사용을 둘러싼 인권·국제법상의 우려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논쟁이다. 반도체와 AI를 팔러 간 자리에서, 우리가 함께 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물어야 할 때다.
세계적인 AI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 자율무기 시스템이 인간의 최종 판단 없이 표적을 찾고 공격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작은 오판이나 알고리즘 오류가 걷잡을 수 없는 참사로 번질 수 있다고. 냉전기 핵무기 경쟁이 인류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갔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의 AI 군비 경쟁이 그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동시에 몇몇 거대 기업이 알고리즘과 자본, 데이터와 컴퓨팅 인프라, 그리고 정부와의 정치적 관계를 한손에 쥐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새겨들을 만하다. 국가 권력과 군사 전략, 기술 독점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일 때,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은 조용히 흔들린다. 우리가 협력하기로 한 상대가 바로 이 구조의 한복판에 있는 기업들이라는 사실은, 경제적 기회의 크기만큼이나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이번 샌프란시스코의 이틀은 분명 성과였다. 반도체와 자본, 인재와 기술이 한국을 향해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성과의 크기를 셈하는 일과, 그 성과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묻는 일은 다른 차원의 작업이다. 9,500억 달러라는 숫자, 2경 원이라는 기업가치 합계, 450조 원의 벤처자본과 1,690조 원의 국민연금—이 모든 숫자는 협력의 규모를 보여줄 뿐, 그 협력의 성격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이 진짜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이 협력을 통해 기술과 인재, 결정권과 규칙을 만드는 능력까지 함께 쌓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생산 시설만 남기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내주고 있는가.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 기술 경쟁의 승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와 인권, 국제법을 지키는 AI 규범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인가.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가장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가장 책임 있는 기술 질서를 만드는 능력에서 결정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한 도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군비 경쟁과 권력 집중의 도구가 될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