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피, 땀, 리셋(Press Reset): 게임 개발 속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

MJ·2022년 8월 28일
0

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1. 들어가며

제이슨 슈라이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스팀이나 오리진, 에픽게임즈, 혹은 콘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유출하는 정보는 신뢰도가 높기로 유명한 것을. 축구계에 비피셜이 있다면 게임계에는 슈라이어 피셜이 있다고나 할까.

나 역시도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다보니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이드 소프트웨어, 락스타 게임즈, EA, 액티비전 등등 이름있는 게임 회사들이 책에 나오니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왜 락스타를 '록스타'로 번역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게임 업계에서 출시일을 미루고 미룬 결과로 내놓은 물건의 퀄리티가 예전만 못한 현상이 꽤 많아졌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그러는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그래서 게임 업계에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이 읽어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2.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책은 '모종의 이유로' 게임 회사를 퇴사한 사람들이 왜 떠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떠난 이후의 행보를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옮긴이는 이 책을 패자들의 승전가라고 표현했다. 게임에서의 reset은 말 그대로 다 날려버리는 것이지만, 게임 업계 종사자에게는 업그레이드되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들은 왜 게임 회사를 떠나게 되는가?

이 책에서 회사를 떠나기까지의 여정은 크게 다음과 같은 줄기가 있었다.

본인이 희망하는 게임을 만들고자 당당한 출사표와 함께 게임사 입사/창업 -> 모종의 이유로 회사 상황이 안 좋아져 적게는 구조조정, 크게는 폐업을 하게 됨 -> 메일 혹은 면담으로 해고 통보를 받음 -> 퇴사

놀라운 것은 AAA 게임을 성공적으로 런칭한 회사도 위의 루트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사례가 <바이오쇼크> 시리즈를 성공시킨 이래셔널 게임즈(Irrational Games)의 이야기였다. 그래도 여기는 썩어도 준치라고 구조조정 후 남은 인력을 테이크 투 산하의 고스트 스토리 게임즈로 재배치했다. 대다수의 직원들이 해고당했다는 사실이 슬프기는 하지만.

2K 마린(2K Marine) 역시 마찬가지로, <바이오쇼크>의 성공 이후 2K가 야심차게 세운 스튜디오였지만, <엑스컴>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소리소문없이 스튜디오가 없어졌다. 극히 일부 직원만 다른 스튜디오로 재배치되었고, 나머지 인원은 구직자 신세가 되었다.

위의 두 회사는 게임을 만들 역량이 충분했으나, 무리한 기획 변경으로 인해 게임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와중에 마감일은 다가오니, 결국 시간에 쫓겨 만든 게임의 퀄리티는 안 봐도 비디오. 결국 게임은 혹평을 듣고 스튜디오는 구조조정을 하게 되었다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책 속에 이래셔널 게임즈 리더인 켄 래빈이 까탈스럽게 구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그것을 읽다 보면 '이러니까 망하지...' 라는 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유능한 인재였기 때문에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것이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게임에 열정이 있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건 아니다.

전설적인 야구선수가 게임에 열정을 품고 회사를 차렸다가 빚더미에 앉은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오는데, 이 파트를 읽다 보면 CEO가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 꼭 좋은 징조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로 커트 실링의 이야기인데, 그의 현역 시절 등번호를 딴 38 스튜디오를 차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뛰어넘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직원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복지에 큰 돈을 쏟았지만, 정작 나오라는 게임이 나오지 않아 문을 닫게 되었다. 무려 주 정부로부터 7500만 달러를 대출받았는데, 그 돈을 순식간에 다 써버리고(책에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었다는 표현이 있다.) 살아남은 건 그의 진짜 가족들 뿐이었다는 이야기다.

수익 모델에 대한 갈등

최근에는 부분 유료화 모델이 당연한 수익 구조로 여겨지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게임의 주 수익 모델은 유료로 판매 혹은 정액제였다. 책 속에는 경영진이 부분 유료화 수익 모델 도입을 요구했고, 그 모델에 맞추느라 게임 자체를 갈아엎다가 망한 사례도 나온다.

처음에는 이 파트를 읽고 나서 수익 모델을 바꾸는게 무슨 상관이냐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수익 모델에 맞게 게임의 컨텐츠를 조정해야 되는 부분이 있었다. 책에 나온 예시로는 추가 결제를 하면 노가다를 생략할 수 있는 구조였는데, 처음에는 고려하지 않았다가 부분 유료화에 맞게 어느 부분을 스킵할지 또는 바꿀지 회의를 해야 하고, 그것은 곧 시간 낭비로 이어져 게임의 질적 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게임 개발에 고려할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항목이었다.

게임업계는 원래 그런 곳입니다

이렇듯 본의 아니게 퇴사를 하게 되어도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회사에 정착하고, 또 좋은 게임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책 속에서 게임 업계는 불안정한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전부터 꾸준하게 불안정했기 때문에 게임 회사가 망하면 다른 게임 회사는 눈에 불을 켜고 갈곳잃은 사람들을 찾고, 그렇게 위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최악의 경우는 지금까지 살아온 보금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인데, 다행히 이것은 재택 근무의 등장으로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3. 책을 읽고 나서

어릴 적의 나는 넥슨 게임을 자주 했었다. 그 시절의 넥슨 게임은 툭하면 해킹을 당해 게임 아이템이 싹 사라지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게임 운영 뭐같이 한다'는 욕을 많이 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게임 업계가 얼마나 힘들고 불안정한지 알게 되었다. 현재의 넥슨은 뚜렷한 신작이 나오지 않아 출시된지 20년은 다 돼가는 게임으로 버티고 있는데, 넥슨이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한편으로는 책에 나오는 '모종의 이유' 때문에 게임 개발이 순탄하지 못한 모양이다.

게임 업계의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 유명한 크런치 모드 문제도 있고, 개발진-경영진의 갈등, 게임성과 수익 사이의 갈등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버텨내고 게임을 만드는 그들이 진정한 게임의 영웅이 아닐까.

profile
오늘보다 내일을 더 즐겁게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