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중간고사도, 심지어 수능 시험도 1등급의 커트라인은 '10%'다. 어른들은 내신과 수능 모두 5등급제로 바뀌었으니,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절반으로 줄었을 거라며 미소 짓는다. 하지만 우리들의 교실은 숨 막히는 지뢰밭으로 변했다. 학교 내신에서도, 수능장에서도 단 한 문제만 실수하면 10% 밖으로 밀려나 단숨에 '상위 34%(2등급)'라는 거대한 늪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변별력을 잃어버린 5등급제 내신과 수능. 그 구멍 난 변별력을 메우기 위해 대학은 우리에게 고교학점제라는 이름으로 '완벽한 진로 맞춤형 과목 설계'와 '스펙(세특)'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5등급제의 공포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꿈을 좇아 과목을 선택하라는 말인가? 이것은 해방이 아니라, 퇴로가 차단된 완벽한 밀실이다.
시험이 끝난 교실, 학생들은 '한 문제 실수'로 2등급이 될까 두려워한다. 희비가 교차하고, 틀리면 틀릴수록 숫자가 높아지고 내가 갈 대학은 낮아진다. 내신과 수능 모두 5등급제로 전환하여 과열된 입시를 식히겠다는 어른들의 이상과는 달리, 학생들은 '만회할 기회'와 '역전의 찬스'를 모두 잃어버렸다. 대학에선 수능만으론 변별이 안되니 내신을 반영하겠다 하였고, 이는 내신을 망친 학생들의 만회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내신과 수능에 동시 적용된 5등급제는 학생들을 '실수 공포증'에 몰아넣었으며, 이는 고교학점제와 기형적으로 결합하여 적성 탐구는커녕 '안전한 성적'과 '포장된 스펙'만을 좇게 만드는 최악의 입시 구조를 완성했다.
과거에는 내신을 망치면 수능이라는 패자부활전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수능마저 5등급제가 되면서, 수능 1등급 역시 '우수함의 증명'이 아닌 '기본 요건'으로 전락했다. 이에 맞춰 대학들은 수능으로는 변별이 안되니, 내신도 반영해서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결국, 패자부활전에 패배한 경기의 실적을 끌어오는 기형적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깊이 있는 학문을 탐구하지 않는다. 아는 것을 틀리지 않기 위해 기계적으로 무한 반복할 뿐이다. 평가는 뭉특해졌는데, 한 번의 실수가 부르는 타격감은 과거보다 훨씬 가혹해졌다. 수행평가도 학생들은 내가 쓰는 것보다 지필평가 공부를 하기 위해 수행평가에 드는 시간을 줄일려고 AI를 많이 사용하며 자신이 직접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러고는 지필평가 공부랍시고 무한 반복의 굴레로 자진해서 빠진다.
역사학자가 꿈이라 '동아시아사'를 듣고 싶지만, 수강생이 20명이다. 수강생이 20명이면, 내신 1등급(10%)는 단 2명뿐이다. 5등급제 하에서 한 번만 삐끗해 3등을 하면 바로 '상위 34% 그룹'으로 묶인다. 나 또한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수강생 30명, 1등급 컷이 100점이고, 2등급 컷은 95점이라고 한다. 서술형에서 0.5점 감점된 한 친구(전체 등수 4등)는 99.5점을 받아 2등급이 되었다. 1등급을 받으려면 100점을 받아야 한다. 오탈자 하나가, 마킹 실수 하나가 그룹을 바꾼다. 그러나 수능마저 5등급제라 만회할 기회가 없으니, 내신에서의 위험 감수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결국 진짜 듣고 싶은 과목을 포기하고, 수강생이 200명인 이과 과목을 어거지로 듣거나, 사회과목 중에서 그나마 선택자가 많은 과목으로 도망친다. 진로를 찾아주겠다는 고교학점제는, 5등급 상대평가라는 괴물과 만나 우리를 1등급 인원 수만 계산하는 얄팍한 기회주의자로 전락시켰다.
내신도 수능도 1등급이 넘쳐나니 대학인 이 성적표만으로 우수 학생을 가려낼 수 없었다. 결국 대학은 고교학점제를 핑계로 우리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심층 면접까지 요구한다. 어른들은 부담을 줄여줬다고 생색내지만, 현실은 끔찍하다. 우리는 내신 10% 방어전을 치르고, 수능 10% 방어전도 치르면서, 동시에 고교학점제 시간표를 '대학이 좋아할 만한 화려한 스펙'으로 빈틈없이 꾸며내야 한다. 짐을 덜어준 것이 아니라,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짊어지게 한 것이다. 스펙을 쌓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세특을 기록하려면 그 세특 내용의 근거가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수행평가, 추가탐구보고서를 통해 세특의 근거를 수집하고, 학생들은 세특의 근거를 만들어내기 위해 내신 공부, 수능 공부와 더불어 추가탐구보고서까지 작성한다. 학업의 부담을 줄여 청소년 자살율을 낮춘다던 정부는 결과적으론 놀 시간조차 없게 만들어 자살율을 더 높이는 모순을 발생시켰다.
내신과 수능의 5등급제 전환, 그리고 고교학점제의 결합은 우리에게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평가'와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이라는 모순된 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거기에 더해 22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하며, 기존에 있었던 과목 공부법들, 강의들은 의미가 없어졌고, 심지어는 기출문제도 의미가 없어졌다.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은 학원에서 문제를 짜집기하여 넘쳐나게 주겠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들은 기출문제에 의존하거나 문제집에 의존해야 된다. 그러나 문제집도, 기출문제도 현행 교육과정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이 없으니, 결국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들은 문제를 걸러내고 문제를 찾는데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5등급제라는 틀 안에서 나를 완벽한 나로 만드려고 공부를 죽어라 한다. 5등급제 전환과 더불어 고교학점제, 22개정 교육과정 적용까지 보면, 우리 세대는 실험쥐인가.
교육 정책을 만드는 어른들에게 묻고 싶다. 10%와 34%라는 아득한 간극 사이에서 매일 밤 가슴을 졸이는 우리의 불안이 보이지 않는가? 평가의 칸막이만 줄여놓고 자유를 주었다고 착각하는 하향식 개혁은 폭력이다. 교실은 실패해도 되는 배움터여야지, 한 번의 실수로 34%의 낙인이 찍히는 서바이벌 게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발 탁상공론이 아닌, 우리가 숨쉬고 있는 교실의 현실을 똑바로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