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짜 개발자다.

Trilly·2023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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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성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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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컴퓨터공학과를 부전공했다.

팀프로젝트가 있는 전공수업이 있었다. 호기롭게 백엔드를 자처했건만, Django도 제대로 못다루고 공부할 의지도 없는 불성실한 태도로 쇼핑몰 개발 텀프로젝트에서 쫓겨났다. 학점이 걸려있었기에 시중의 아무 쇼핑몰 개발 도서 코드를 갖다 붙여서 어찌저찌 완성은 했다. 그래놓고 애자일프로세스이니 JPA니 MySQL이니 아는 척, 써본 척은 졸라게한다.

교내 알고리즘/AI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알고리즘은 인터넷에서 찾아 쓴것이고, AI부문은 그냥 AutoML 끌어다 썼다. 타이틀과 상금만 얻었을 뿐 내가 실제로 공부하고 배운것은 없다.

2. 중견기업에서 백엔드 개발자 인턴을 했다.

자기소개서에 "컴퓨터공학과를 부전공했다."에 쓴 프로젝트 내용과 수상 실적을 썼다. 코딩테스트는 치팅테스트였다. 시험화면만 화면공유 해두고, 다른 인터넷 창을 켜서 모든 내용을 검색, 복붙했다. 하루 이틀전에 외운, 제대로 이해도 못한 CS면접 모범 답변을 버벅이며 면접을 봤다.

결과는 합격. 이때부터였다, 본격적인 나의 가짜 개발자 라이프가 시작된건. "본전공을 버리고 부전공 코스로 갈아탄 후 인턴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는데 자축했다. 가짜자소서, 가짜코테, 가짜면접으로 만들어진 가짜인턴이다.

맥북을 지급받고 진짜 개발자들과 같이 일하다보니 나도 그들과 같은 개발자라 느낀다. Java라는 언어 조차 제대로 공부한적도 없는 놈이 IntelliJ로 Spring Boot 소스코드를 분석하고있다. 아직도 어노테이션이니, 의존성을 주입한다니, 이게 뭔 소리인지 모른다. 이때부터라도 위기감을 갖고 열심히 했으면 좀 나았겠지만...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방침이 내려왔다. 인턴에게 별다른 업무는 주어지지 않았고 '자습'을 빙자한 '시간낭비' 가 내 일과였다. 다음날 아침 스크럼 때 말할거리를 찾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명목상 일하는 시간이고 그 시간에 맞춰 월급도 나오다보니 버려지는 시간이라 느끼지 못했다. 찝찝하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이 시기에 교환학생, 강연 준비 등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생산적인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성공했다. 인생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잘 한 일이다. 하지만 직무적 관점에 있어서 나에게 성장은 없었다. 이 시기의 나의 겉 포장은 '중견기업 백엔드 개발자 인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교환학생 준비, 강연 준비 등 직무와 관련없는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인턴 후 학교에 제출할 최종보고서를 쓸 때도 쓸 말이 없어서 옆에서 같이 인턴한 친구가 정리해놓은 문서를 보고 내가 배우고 개발한 내용인양 적어서 제출했다. 가짜최종보고서가 탄생했고 나는 이를 토대로 또 가짜 자소서, 가짜 포트폴리오를 만들려한다.(다행히 멈췄다)

그래도 인턴 직무를 수행하며 작지만 내가 실제로 진심을 다해 공부하고 기여한 프로젝트는 있다. 이 내용을 잘 갈고 닦아서 '중견기업 백엔드 개발자 인턴' 겉껍데기의 속을 채워야겠다. 잘 정리해서 이 블로그에도 업로드 해보겠다.

3. 정부출연연구소에서 학생연구원 생활을 했다.

진짜와 가짜가 섞인 자소서와 면접으로 합격했다. 1,2와 같은 가짜내용도 섞여있었지만 합격한 요인은 직무관련 수업에서의 텀프로젝트, 해외 경험, 미국 석사에 대한 의지 등 진짜 내용 덕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업무내용에서 진짜는 없었다. 지원 할 때만에도 진짜였던 '미국 석사에 대한 의지'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진로 방향을 재설정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그 방향이 미국 석사와는 멀어졌다. 이 활동에 지원한 진짜 이유가 희미해졌기에 본 업무에 소홀해졌다.

명확한 삶의 목표, 진로계획 수립, 연구자로서의 삶 체험, 석박사님들과의 인맥, 수준 높은 세미나 청강 이것이 내가 정출연 학생연구원을 하며 얻은 것이다. 인생의 관점에서는 엄청난 성장을 이뤘지만, 직무적으로 내 실력을 올린 내용은 거의 없다. 코드를 치거나 분석한 것도 전혀없고 논문 몇편 읽고 데이터셋을 모으다가 원래 있던 프로그램을 가지고 돌려본게 다다.


최근 정출연 학생연구원 생활이 끝났다. 취업적령기이기에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자소서를 쓰는 중이다.(이 블로그 활동 또한 취업준비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가짜로 만들어진 내용을 쓰면서 회의감이 몰려온다. 가짜 스펙, 가짜 경험으로 가짜 개발자 칭호를 얻으면 과연 나의 커리어는 행복할까? 삶 자체가 가짜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무섭다.

이제 의미없는 타이틀 따기는 그만두려한다. 직무적인 내공과 실속을 채워야한다. 타이틀이 아닌 코드로 매력을 풍기는 당당한 개발자. 이제 나는 진짜 개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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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삶을 즐기는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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