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회고록

준삼촌·2025년 10월 13일

1년 반의 첫 회사 생활을 마쳤다.

I'm Left, You're Right, He's Gone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저마다의 맞음이 동시에 설 자리가 없을 때, 우린 이별한다. 눈물 대신 춤을 택하고, 미러볼은 어김없이 돌아간다. 반사된 빛의 조각들이 무겁고 찌뿌둥한 삶의 틈새를 구석구석 비춘다. 관절 하나하나가 불꽃처럼 터지며, 나는 외친다. 단 한마디로 — 자유!

퇴사 후, 나 스스로에게 한 달의 시간을 주었다. 그 이상 쉴 수 없을 것 같았기에. 그간 미뤄 놓았던 책들을 전부 읽었다. 전시란 전시는 모조리 보러 다녔다. 혼자 말하는 작가와 대화하는 작가의 차이를 느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진정, 연구자(Researcher)이자 수집가(Archiver)였다. 기술 전에 삶이 먼저 존재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파헤치고 드러내려는 사람들. 낡은 확신을 벗어던지고, 자리를 박차 일어나,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에 겸허히 귀 기울이는 이들. 필요를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끝내 ‘찾아내는’ 이들.

이들을 만나 무척 기뻤지만, 동시에 조금은 슬퍼지기도 했다. 개발을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과 지금의 마음이 너무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술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남아 있다. 처음 공허함을 느꼈을 때는 개발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가치’였다. 나는 정말 가치 있는 것을 만들고 있는가? 그건 누구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가? 그리고 그 가치가 나 자신에게조차 설득력을 지니는가?

회사를 나온 이유는, 내가 만들어내던 가치가 나에게 더 이상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설득되었을 것이다. 그건 좋은 일이다. 같은 가치를 좇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니까. 지금은 새로운 만남을 준비 중이다. 아마 또 다른 가치를 좇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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