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과정을 끝내고 다짐

Heechul Yoon·2020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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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었던 3개월을 보낸 개발자 부트캠프를 끝내고 지금에 오기까지, 생각정리와 앞으로의 다짐에 대해서 적어보겠다.

어쩌다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었나요

2019년 겨울, 학교를 졸업하면서 치열하게 내가 하고싶은 일을 찾았다. 늦은 진로탐색이었다. 운이 좋게도 독일로 날아가 내가 꿈꿔왔던 외국에서의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정치외교학으로 학교에 입학해 무역학 학사를 받고 마케터가 된것이다.(정말 뭐든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고 4개월이 자났을 무렵, 나는 막연하게 멋있어 보이는 것이 내가 하고싶은 것이라고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과도 있었다. 내가 담당한 업무가 위성 송출 및 iptv스트리밍 기술에 가까이 있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일에 명확한 경계가 없었고 시장에서 들어오는 테크니컬 이슈를 정리하고 엔지니어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일을 주업무로 했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내가 처음 기술을 접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나에게 엔지니어는 부러움에 대상이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명백하고, 그들이 만드는 제품이 회사 서비스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대체될수 없는 인력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에서 요구되는 사항들이 전달되어 서비스가 점점 개선되고 좋은피드백을 받는 것을 보고, 기술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깊은곳에서 세상에 많은 영향을 줘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 또한 세일즈 마케터로서 나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결과 얕게나마 IPTV 스트리밍 영역에서의 기술적인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단순히 물건만 파는 사람이었다면 내 회사 제품만 잘 알면 되었겠지만, 나는 마케터로서의 역할도 수행했고, 유럽시장에 전반적으로 어떤방법으로 tv를 시청하는지(대표적으로 위성, 지상파, 케이블, iptv) 어떤채널이 어떤경로를 통해 최종 소비자의 화면에 뿌려지는지를 알아서 각 지역에 맞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집단이 한지역에 공존하는 유럽에서 IPTV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고, 이미 대세로 자리잡고 있었다.(문제는 그 IPTV를 어떻게 볼것인가였음) 이 과정에서 스스로 기술에 기반이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생겨났고, 많은것들이 궁금해졌다. 막연하게 일단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컴백과 동시에 앞으로 나를 계속 괴롭힐 위장병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기에는 이룬것이 없었고,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의미있고 성장이 느껴지는 일을 하고싶었다. 그래서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시차적응이 되기도 전에 파이썬을 다운받았다. 정말 뭐가뭔지 아무것도 몰랐고, 한달에 40만원하는 국비지원등록학원에 내돈주고 파이썬 기초 수업을 결제했다. 개발에대해서는 아무것도 영업사원의 멘트에 당해서 2년짜리 파이썬, 자바 등 프로그래밍 언어 종합선물세트같은 인터넷강의도 구매했다(결국은 환불받았음).
의욕만 앞서서 실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나 읽을법한 motivation용 책도 구매했다(30페이지 이후로 진도가 안나간다). 그 외에도 정보를 얻기위해서 카카오 개발자 커뮤니티방에도 들어고보고, 유튜브 영상들(생활코딩, 노마드코더 등등) 본다거나, udemy에서 만든 강의들도 보았지만 혼자서 이 모든걸 풀어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인공지능이 만연한 세상에 살고있어 다행스럽게도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수요자의 니즈를 정확하게 캐치했다. 부트캠프라는 존재를 알게되었고,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고싶어서 가장 빨리시작하는 6기가 마감되었는데도 담당자님에게 추가모집을 물어봤고 결국 추가모집 등록의 마지막에 위코드라는 부트캠프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나는 건강상 최악을 경험하고 있었다. 소화에 관여하는 모든 장기가 기능을 거의 멈춘 상태였다. 몸무게는 9키로 가량이 빠져있었고 입에 아무것도 넣을 수 없었다. 너무 화가나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정말 열심히 할 준비가 되었는데 달려가겠다는 사람의 다리를 누군가 분질러 버리는 심정이랄까ㅎㅎ..

지금은 조금 더 좋은곳으로 옮겼지만 최악의 몸상태로 서울로 올라와 사람이 살수 있을까 싶은 고시원에들어왔다. 죽기살기로 코딩을했다(오히려 아픔을 잊기 위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몸도 안좋고 잠도 불편해서 오래잘수가 없었다.
당시 내 수면시간은 5시간이었고, 눈뜨면 컴퓨터를 열고 블로그정리를 한다거나, 생각난 아이디어들을 실행시켰다.
돌이켜보면 자고 씻는시간, 밥먹는시간을 제외해도 하루에 16시간을 노트북앞에있었던것 같다. 위기의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걸까 짧은 수면시간에도 피곤하지가않았다.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한의원에서 먹으라고 하는 음식을 싸와서 먹었다. 처음에 한숟가락도 소화시키지 못했지만 점점 먹는양이 늘어났다. 일차프로젝트가 끝났을 즈음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몸상태가 호전되었다.

몸상태는 최악이었지만 하루하루 성취감에 살았다. 내인생에서 내가이렇게 똑똑한적이 있었나 싶었다.

처음으로 인스타그램 로그인을 만든 순간. 데코레이터를 만들고 동작하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

1차프로젝트 푸들리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델링이다. 30개정도의 테이블을 만들었고 많은 관계를 지었다.
이후에 두개의 프로젝트를 더 했지만 1차프로젝트때 했던 푸들리 모델링이 역대급이었다.
셀프참조, 주문과 장바구니, 상품과 프로모션... 어떤 서비스가 와도 고민해서 관계를 만들 수 있을것 같았다.
수연님과 몇일 내내 모니터를 보면서 머리를 싸매며 테이블 하나하나의 관계를 파고들었던 것이 앞으로 내 모델링의 근간이 되었다.

2차프로젝트 사운드클라우드

원래 이커머스쪽 클론을 하고싶었지만 지금생각하면 sns를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사운드클라우드를 하게 된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겨서 api를 기계처럼 뽑아냈다.
하지만 메세지부분의 마지막 벽을 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나와 상대방이 주고받은 메세지를 하나의 묶음으로 가져와야 했는데 그부분에서 억지 로직으로 구현하려다 보니 어느정도 맞는 값은 뽑았지만 미완성이었다.(나중에 기업협업때 번호관리용 테이블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여기서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로우기능, 알림기능, 구글소셜로그인 기능 등 많은 성과를 이룬 2차프로젝트였다.

브랜디 기업협업 프로젝트

위코드의 교육과정의 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수강생보다 운이좋게도 브랜디라는 이전 기수를 거쳐 검증된(?) 회사에서 기업협업을 하게되었다.
가장 어려웠던점은 프로젝트 초기세팅이었다.
이 때 장고는 정말 모든것을 다 갖춘 친구라는 것을 알았다.
장고에서 runserver, startproject, startapp 의 명령어를 통해서 했던것을 전부 만들어 주었다. 이 과정에서 파이썬, mvc패턴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상승해서 (언어가)다른 가벼운 프레임워크도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 째로는 이미지파일을 리사이즈해서 s3에 업로드 할 때 이다.
파일객체를 pillow로 리사이즈를 하면 pillow 객체가 된다.
pillow객체를 io를 사용해 메모리상에 buffer에 담아서 bytes형태로 일시적으로 저장시킨다.
그리고 그 buffer를 s3에 올리니깐 리사이즈된 이미지가 s3에 올라갔다.(원리를 알게되는순간 마법이아니다)
결국 bytes형태가 컴퓨터에 읽혀서 이미지로 된다는 것을 알게되었으며 컴퓨터공학에 대해서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지를 버퍼에 태워서 올려보낸다는 개념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현업에서 사용되는 중요데이터 이력관리 방법 중 하나인 선분이력개념을 배웠던 점이 큰 성과였다.
선분이력을 배우고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메세지의 chunk를 대화 대상별로 가져오지 못했는데 chunk관리용 테이블을 생성하여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마지막으로 같이 갔던 동기들과도 협력하면서 가까워졌다.
매일 점심식사 후 눈치보면서 이사님 포인트로 먹은 커피, 퇴근하면서 먹던 맥도날드 소프트콘.
최고의 한달이었다.
아쉬웠던 점은 협업 후 오퍼를 받지 못한 점이다.
내가 부족했으며 많은것을 배운 만큼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겠다. 이미 취업을 한 지금 생각을 해보면 당시 취업하고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쿨하지못했다.

어떤걸 느꼈나요

위코드가 끝난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바로 앞의 문제 하나를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온 경험들이 쌓여서 지금까지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
내가 풀어야할 문제가 있고 그것을 어떤 개념과 방법으로 해결하면서 새로운 것을 내 기술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이해로 풀어낸 기술은 나의 다음 문제 해결에 사용되었다.
앞으로의 내 개발자 인생도 이러한 과정의 반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현실의 문제들은 지금까지 보다는 더 크고 무겁게 눈앞에 나타나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 할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노트북에 파이썬을 다운받았을 때 만큼의 막막함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발자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앞으로 내가 할 일들중에 익숙한 것은 거의 없을 것이고, 이게 내 일이라는것을 인정해야 될 것이다.

눈앞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해결해왔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나를 믿는다.
열악한 상황에서 잘하고싶어서 순수하게 노력했던 지금 느낌을 잊지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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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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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0일

겨울이 지나고 봄이왔다. 그리고 여름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민엠씨 오모씨가 지었던 삼행시가 떠오르네요 ㅋㅋㅋㅋ
희철님 3개월동안 진짜 고생 많으셨어요!! 진짜 초반부터 위장에 문제가 생겨서 큽...ㅠㅠ
그렇게 오랫동안 아프셨을지 몰랐어요 ㅠㅠ 이제 진짜 꽃길만 걸을 차례입니다!! 앞으로의 개발자로서의 길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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