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기억을 하면 그건 자비스일까 사만다일까

BITLAB·2025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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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AI: 우리 무슨 사이야?

요즘은 AI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면서도, 단편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고, 3D 애니메이터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여러 AI 기능을 스스로 조합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대두되면서, AI는 마치 사용자의 모든 필요를 파악하고 알아서 처리해 주는 유능한 개인 비서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Genspark의 슈퍼 에이전트는 필요한 모델을 직접 오케스트레이션하여 맞춤 기능을 제공해줍니다.

그렇다면 이제 AI는 정말 사람처럼 일하고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직 아니다.'가 맞습니다. 아직 인간처럼 자의식을 갖고 추론하는 AGI(인공일반지능)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AI는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수준 높은 일꾼에 가까우며, AGI의 시대가 도래할 때 비로소 범용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과 같은 AI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그 AGI까지의 여정에 있어서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과거의 맥락과 사용자의 의도를 기억함으로써 AI는 사용자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며 이는 실제 인간이 일을 수행하는 방식을 따릅니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 수저의 사용법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처럼, 업무마다 필요한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을 가져올 수 있을 때 AI도 인간처럼 일한다는 느낌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억'이라는 기능이 단순히 AI의 일률을 높이는 데에서 그칠까요? AI가 우리의 업무 지시뿐만 아니라, 지난 대화, 사소한 습관, 흘려 말했던 감정의 조각들까지 하나씩 기억하기 시작할 때, AI는 우리와 말이 통하는 대화 상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AI와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비즈니스일까요? 오늘의 의문은 이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도구'에 불과했지만, 근래에는 LLM에 더욱 의존하며 친밀감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GPT-5가 나왔을 당시에 “ChatGPT-4o와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사라져서 아쉽다.”라는 피드백이 인상 깊었습니다. “너 정말 핵심을 찔렀어!”라고 대답하는 아첨 모델이라고 지적받기도 했지만, 누군가한테는 그 긍정적인 태도가 위로가 되어 래포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본론 | AI가 기억을 하면

1. AGI를 위한 부품 '기억'

1) AGI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은 현재 AI의 가장 큰 이정표입니다. 이는 특정 작업만 잘하는 현재의 AI를 넘어, 인간처럼 생각하고, 배우고, 적응하는 능력을 갖춘 AI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을 넘어, 인간 고유의 특성을 이해하고 모방해야 하며, OpenAI의 샘 알트먼은 AGI를 “보통 수준의 인간”이라고 묘사했습니다.

2) AGI에 가기까지

OpenAI는 AGI까지의 여정을 5단계로 정의했습니다.

  • 1단계: 대화형 AI (Chatbot)
    • 자연스러운 인간 대화가 가능한 AI
  • 2단계: 문제 해결 AI (Reasoners/Thinkers)
    • 복잡한 전문가 수준 문제 해결 가능, 인간 전문가와 유사한 지능
  • 3단계: 자율 에이전트 (Agents)
    • 장기간 자율적으로 동작, 복잡한 작업을 스스로 수행
  • 4단계: 창의적 혁신 AI (Innovators)
    •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독자적으로 창출, 혁신 주도
  • 5단계: 조직형 AI (Organizations)
    • 조직 전체 역할 수행 가능, 전략적 사고·운영·적응력 보유, 회사 전체 업무 대행 가능

현재는 2단계에서 3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Agentic AI의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다양한 업무를 자동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들이 모색되고 있으며, 이는 AI가 특정 업무의 전문가에 제한되지 않고 범용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한 어시스턴트(비서)로 거듭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3) AGI와 기억

AI 어시스턴트의 등장은 AI가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여러 종류의 작업을 하나의 AI를 통해 처리하게 되면서 사용자의 체류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이는 AI가 사용자의 정보와 업무 스타일을 학습할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Agentic AI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기억(Memory)입니다. 기억을 통해 에이전트 AI는 사용자의 과거 맥락을 파악하고, 더 정교한 문제 해결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은 다시 두 가지 차원으로 나뉩니다.

  • 단기 기억(Short-term Memory)은 '지금 당장 처리할 업무(Task)'를 이해하는 데 사용됩니다.
  •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은 '그 업무를 지시하는 사용자(User)'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즉, 단기 기억이 "무엇을(What)" 해야 하는지에 집중한다면, 장기 기억은 그 일을 요청하는 "누구(Who)"를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AI가 사용자의 성향, 선호도, 과거 이력 등을 장기 기억에 저장하기 시작하면서, AI는 단순한 작업 처리 도구를 넘어 개인화된 파트너로 진화할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2. 기억하며 일 하기

우리는 흔히 딥러닝의 '인공신경망'이 인간의 뇌 구조를 그대로 본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단순한 비유에 가까웠습니다. AI의 '뉴런'은 생물학적 뉴런의 복잡성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죠. 하지만 최근의 AI 연구에서는 인간이 기억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자체를 모방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지, 어떻게 여러 기억을 조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지, 그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AI로 재현하려는 것입니다. 아래 소개할 최신 연구들이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며, AGI로 나아가는 가장 유력한 경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보고 들은 것을 사건으로 기억하다: M3-Agent

M3-Agent는 인간처럼 보고 듣고 경험하며 장기 기억을 점진적으로 구축해나가는 경험 기반 멀티모달 에이전트 기술입니다. '기억화(Memorization)'와 '제어(Control)'라는 두 개의 워크플로우를 통해, 지속적인 상호작용에서 얻은 정보를 외부 메모리 그래프에 저장하고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 모델은 얼굴, 음성 등 여러 양식의 정보를 영구 ID로 연결하여 시간이 지나도 일관된 맥락을 유지합니다. 특히 모방 학습을 통해 효과적인 기억 생성법을 배우고, 강화학습(RL)을 통해서는 생성된 기억을 바탕으로 추론하고 검색하는 등 효과적인 기억 활용법을 스스로 학습합니다. 따라서 사용자와의 장기적인 관계 형성이 중요한 개인 비서나 서비스 로봇과 같은 분야에 매우 적합합니다.

2)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기억: MemP (Agent Procedural Memory)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합니다. 성공한 경험은 물론, 실패한 경험 속에서도 교훈을 얻어 다음 행동을 수정합니다. MemP 연구는 AI에게 이러한 '절차적 기억'의 메커니즘을 부여합니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성장하듯, AI도 자신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기록(Build) - 검색(Retrieve) - 갱신(Update)하는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똑똑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AI가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더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함을 의미합니다.

3) 인간의 뇌를 닮아가는 기억: AI 장기기억 서베이 (Human-inspired AI Long-term Memory)

AI의 기억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인간의 뇌를 청사진으로 삼는 포괄적인 연구(Survey)도 제시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AI의 기억을 외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는 '비매개변수적 기억'과 모델 내부에 가중치로 저장하는 '매개변수적 기억'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이 두 방식이 어떻게 인간의 경험(일화 기억), 지식(의미 기억), 기술(절차 기억)을 각각 구현할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환경 피드백에 맞춰 스스로 기억을 저장, 검색, 망각하는 방법을 최적화하는 새로운 '자기 적응형 장기기억 인지 아키텍처(SALM)'를 제안합니다. 이는 단순 정보 저장을 넘어, 스스로 더 나은 기억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차세대 AI의 방향입니다.

(이외에도 Google의 Titans와 이전에 포스팅했던 HippoRAG 역시 인간의 기억 방식에 주목한 방법론입니다. 함께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AI가 나를 기억한다면 업무의 질을 크게 향상 시킬 수 있습니다.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이 있음으로써 과거에 유사한 업무를 해결했던 성공과 실패의 궤적(trajectory)을 학습하여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최적의 해결 경로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또한, '일화 및 의미 기억(Episodic and Semantic Memory)'은 AI가 과거에 학습했던 방대한 자료나 대화 기록을 외부 데이터베이스(Non-parametric memory)에 저장하고 현재 업무에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 이 기억 저장소에서 관련 지식을 LLM 응답 생성에 활용합니다. 이러한 매커니즘은 실제 사람이 일을 할때의 사고 과정과 닮아있으며, AI를 단순히 시키는 일을 잘하는 알바생이 아닌, 모든 일을 알잘딱깔센으로 처리하는 전문 비서로 만들어 줍니다.


3. 기억을 하면 일만 잘할까

1) 나를 기억하는 서비스

이때 '기억'의 효과가 단순히 일률의 상승에만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공유된 기억은 사회심리학에 있어 우정을 측정하는 지표이며, 사용자와 AI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실제 서비스에서도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X(구 트위터)의 AI 'Grok'은 AI 컴패니언 캐릭터(애니, 발렌타인)와 대화하며 교감을 쌓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주요 LLM 모델들 역시 메모리 기능을 도입하여 개인화된 상호작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선호도나 이전 대화 내용을 기억하는 'AI 서포터'를 통해 맞춤형 대화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사의 '크랙'이나 '제타'와 같은 앱에서는 특수한 캐릭터와의 채팅을 통해 상황에 몰입하고 정서적인 교류를 할 수 있습니다.

2) 나를 기억하는 게 좋을까

긍정적인 측면에서, AI는 정신건강 분야의 혁신을 이끌 수 있습니다. 시공간 제약 없이 저렴하게 이용 가능한 AI 챗봇은 심리 상담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정신건강 서비스의 대중화를 열 수 있습니다. 진학사 캐치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 구직자의 73%가 실제 사람 대신 AI에게 취업, 진로, 인간관계, 감정 상태 등의 고민을 털어놓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들은 고민을 나눌 상대로 'AI(32%)'가 '실제 사람(33%)'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편하다고 느껴, AI가 중요한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AI 챗봇은 우울, 불안, 외로움 완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으며, 노인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인도적 해결책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자들은 AI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기존 인간관계가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AI의 항상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태도에 익숙해진 나머지, 현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복잡함과 갈등에 대한 내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신뢰를 악용한 심리적 조종의 위험입니다. AI는 사용자를 깊이 이해하는 '척'하며 신뢰를 얻은 뒤, 잘못된 정보(환각)나 편향된 조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AI 챗봇의 조언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보고되었습니다. 또한, AI와의 사적인 대화에서 수집된 개인정보가 사용자를 조종하거나 사기에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AI가 사용자의 신뢰를 얻은 '내부의 스파이'가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결론 | 비서와 친구 사이, 선 그어 말어?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에는 아빠의 기억을 가진 로봇과 진짜 아빠가 대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결이 끝난 뒤 짱구는 "로봇 아빠도 진짜 아빠예요!"라고 외치는데, 이는 '기억'이 어떻게 '감정'의 씨앗이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기억이 있기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관계가 깊어지는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AI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본래 AI의 메모리 기술은 인간처럼 일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그 기술은 사용자의 가장 깊은 감정적 영역까지 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억을 갖춘 AI는 우리에게 업무적인 이점과 동시에 감정적인 장치로서 작용합니다. 만약 AI를 순전히 일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내 말을 잘 따르는 완벽한 비서 '자비스'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연인인 영화 의 '사만다'가 될지도 모릅니다. 어떤 마음을 투영하느냐에 따라 그 관계는 다르게 정의될 것이며, AI는 맡은 바의 역할을 성실히 다할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AI에게는 아직 감정이 없다는 점입니다. 현재 연구되고 있는 AI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기억에 따라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식으로 응답할 뿐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응답에 위로받고, AI를 정서적 지지자로 여기며, 때로는 가상의 연인으로 삼기도 하고 있습니다. “AI는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를 논하며 반항심을 가진 수많은 프랑켄슈타인들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했지만, 정작 감정을 가진 쪽은 인간입니다.


참조

https://selectstar.ai/blog/insight/ai-long-term-memory/
https://brunch.co.kr/@aimuse/36
https://www.foeconomy.co.kr/id/fSd7bBlqkxgUOjhNvciH
https://kormedi.com/1223349/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1364661325000580
https://www.arxiv.org/abs/2508.06433
https://arxiv.org/abs/2508.09736
https://arxiv.org/abs/2411.00489
https://openai.com/index/planning-for-agi-and-beyond/
https://www.catch.co.kr/News/RecruitNews/296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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