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 정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퇴사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퇴사를 결심했을 당시의 고민들과 앞으로의 다짐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입사 3년 차부터 팀 내 사수가 없어졌고, 자연스럽게 팀장 바로 아래로 가장 연차가 높은 직원이 됐다. 이후에 입사했던 팀원들을 가르치는 일은 재미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나누고, 누군가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었다. 이때 도움이 되기 위해 사내 기술 블로그를 제작하고, 업무 노하우를 꾸준히 기록하면서 회사의 지식 재산을 늘릴 때마다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문제는 반대 방향이었다. 정작 내가 무언가를 배워야 할 때, 배울 만한 대상과 프로젝트가 마땅치 않았다. 남아있는 건 도메인 지식에 깊게 얽힌 레거시와 운영 뿐이었고, 새로운 기술이나 관점을 얻을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고 느꼈다. "나는 지금 기술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입사 초기 우리 팀을 포함한 전체 개발부는 코드 리뷰 없이, 개발부터 배포까지 개인이 전 과정을 혼자 처리하는 도제식에 가까운 방식으로 일했다. 특정 인원에게 지식과 책임, 관리 포인트가 몰리는 구조가 유지보수 측면과 개인의 업무 부담 면에서 위험하다고 느꼈고, 팀원들과 함께 이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레거시 프로그램을 웹으로 옮기는 마이그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티켓 발행 → 티켓 선택 → 작업 → 코드 리뷰/테스트 → 배포로 이어지는 협업 포맷을 새로 만들었다. 약 8 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팀에 실제로 자리잡는 걸 지켜보며 큰 만족감을 느꼈다. 이 포맷을 제안했던 나뿐만 아니라, 팀장을 포함한 모든 팀원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 특히 회사를 10 년 이상 다녔던 팀장님이 "이제 혼자 일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라고 말했을 때 나의 기여로 소외감 없는 업무 환경이 만들어진 것에 큰 감동을 느꼈다.
그런데 이 마이그레이션 프로젝트 자체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실제 사용자들이 기능이 좋아졌다고 한들 더 많이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사의 판단이었다.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애써 만든 업무 프로세스도 흐지부지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1차 배포를 앞두고 있었지만, 여러모로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코드 리뷰 문화를 만들면서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시니어의 기술적 피드백이었는데, 실제로는 비슷한 연차의 주니어들끼리 리뷰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물론 코드 리뷰가 없던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큰 변화가 있었지만, 크게 기술적으로 배우고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다.
보수적인 조직 분위기상 자발적으로 뛰어들 만한 새로운 업무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업무 외적인 곳에서 성취감을 찾아보려 했다. 필라테스와 러닝을 시작했고, 기타와 비즈 공예, 뜨개질 같은 취미도 새로 배웠다. 분명히 즐거움은 있었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는 결국 일에서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취미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매년 견뎌왔던 것들이 더 이상 견뎌지지 않기 시작했다. 특히 입시로 바쁜 시즌(11-2월)에 혹시나 있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야근하고 주말에 출근하는 시간이 그랬다. 이때는 어떤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보다는, 실제 사용자(교직원)에게 전화를 받고 문제를 해결하는 CS에 가까운 역할로 바뀌곤 했다.
업계 특성상 시즌이 되면 크리티컬한 이슈가 몰렸고, 미숙한 사용자의 기능 문의 전화부터 데이터 롤백 요구까지 모든 것을 즉시 혹은 1 시간 안에 해결해야 했다. 심할 때는 거의 동시에 전화가 5 통이 오기도 했다. 잠깐 자리를 비울 때는 꼭 팀원들에게 말하고 가고는 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반복되다 보니 스트레스도 커지고, 개발자로서의 전문성을 기르기 어렵겠다는 불안이 점점 커졌다.
여러 고민이 겹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나? 내가 원하던 일하는 방식인가?"
답은 점점 명확해졌다. 나는 프론트엔드 업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 다만 그동안 써온 기술 스택이 요즘의 모던 프론트엔드 진영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고, 재직 중 이직보다는 퇴사 후 준비 기간을 갖는 쪽을 선택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면담을 했을 때, 팀장님은 감사하게도 나를 계속 붙잡아주셨다. 지금 취업 시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걱정하며 차라리 재직 중 이직을 권할 정도로 진심으로 내 앞날을 걱정해주셨다.
너무나 좋아했던 팀원들도 따뜻한 말을 많이 나눠줬다. 그 말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부장님은 마지막 점심을 사주시며 내 고민을 들어주시고, "지금 떠나는 게 어쩌면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며 응원해주셨다. 믿어주시는 모습에 살짝 목이 메여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대답했었다.
협업했던 다른 부서의 매니저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들, 특히 "신입 때 다정하게 많은 걸 가르쳐주셔서 감사했다" 는 매니저님의 인사가 기억에 남는다. 매 순간 친절하고자, 다정하고자 했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떠나는 이유는 분명했지만,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고, 첫 직장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게 한순간에 터진 문제는 아니었다. 성장의 정체, 성취감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던 시도와 그 한계, 그리고 반복되는 대기 야근과 CS 업무까지.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이 환경에서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 어렵겠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프론트엔드에 좀 더 깊이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고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작은 참고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