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1 위코드 부트캠프 기간이 종료되었다. 다른 팀들과 달리 내 팀은 회사 사정 상 일주일 더 진행되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본가인 광주를 내려왔다. 1년 동안 개발자가 되기 위해 달려와서 너무 지쳐있었고 개인 시간이 필요했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아직 취업 오퍼를 받은 곳도 없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싶은 것이 나의 올 해 목표니까. 혼자 많은 생각을 하면서 왜 개발자를 선택했고 이를 위해 복수전공을 하고 앞으로만 달려왔는지 한 번은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개발자를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비트코인과 게임이다. '무슨 뜬금없이 비트코인이랑 게임이야? 헛소리마 임마!' 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진짜다. 게임은 어렸을 적 부터 지금까지 즐기고 있다. 요새는 하드웨어가 상향평준화 되어 엄청난 고사양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닌 이상 대부분이 잘 돌아간다. 하지만 예전에는 사양이 좋지 않아서 설치 오류가 나거나 게임 중 반복적인 이유로 에러가 나면서 종료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LOL 할 때 심지어 랭크게임을 하는 도중에 튕긴다면👿 그 분노는 많은 분들이 공감해 할 것 같다. 갖가지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구글에 검색을 하고 해결이 되면 굉장히 행복했다. 이 때는 그저 게임이 잘 돌아가는 이유로 행복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컴퓨터에서 생긴 에러를 내가 해결했다는 점이 알게 모르게 나의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실제로 복수전공을 할 때 게임이 좋고 직접 만들고 싶어 컴퓨터공학과를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연관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인 비트코인💰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도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생기고 핫 한 키워드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게 2017년 7월 전역이었는데 말차를 복귀하고 왔더니 부대가 비트코인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맡후임이 정보를 가져와서 얼마 안되는 월급을 거기에 다 넣고 있었고, 블록체인에 관한 A4 몇백장을 인쇄하여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때는 말도 안되고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심지어 돈을 인출하는 것도 봤는데 사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라 4년 전에 기사로 핫해지기 전에 가상화폐라는 개념이 받아들여지기 쉬웠겠는가? 결론적으로 후회했다. 그 때 가격보다 지금 약 18배 가격이 증가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궁금해졌던 것이 이게 뭐길래 돈이 되는 것인가였다.

그래서 블록체인에 대해 검색했고 프로그래밍 언어로 만든 기술이었다. 이 때부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역 후 개발자가 되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했다.
복수전공을 했지만 나의 원래 꿈은 승무원이었기 때문에 1년 동안 도전 후, 안됐을 때 개발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 바이러스가 생기기 전의 계획이다. 그래서 2020년 1월 부터 토익학원, 수영장을 다니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제주항공 서포터즈, 봉사활동 등등에 많은 시간을 썼었다. 모든 회사가 그렇겠지만 항공사는 특히 자신들 회사에 관심가지고 활동했던 사람들을 관심있어 하기 때문에 더 참여했다.
아무튼 전 세계적으로 우한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 중국에서 시작됐을 때 부터 느낌이 왔었다. 서비스 업계에서 사람을 뽑지 않겠구나.. 그리고 이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3, 4년 동안 노력했던 나의 노력은 한 줌의 재가 되듯이 사라졌다. 엄청나게 성장하던 항공업계는 순식간에 없어지거나, 적자를 메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변에 있던 서비스업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강제 휴직이나, 퇴사를 당하였다. 하물며 신입을 뽑겠는가? 그렇게 현실을 부정하며 2020년 상반기는 술로 보냈던 것 같다.
멘탈이 약하다고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전하지도 못하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고 3, 4년 간 노력했던 것들을 포기하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바이러스때문인 것. 이러한 이유는 아무리 긍정적인 나라도 멘탈이 산산조각났었다.
그러던 중, 오히려 개발자들의 수요가 많아지고 연봉이 높아지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대해서도 간단한 썰이 있는데, 바이러스가 터지기 전에는 개발자들이 일하는 것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했었다고 한다. 교수님들도 그랬고, 과로로 사망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봤었다. 지금이라도 개발자들이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다시 돌아와서 위기는 곧 기회란 말이 갑자기 떠오르며 개발자를 지금부터 바로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에 졸업을 하지 못했고,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CS를 배우지 실무에서 쓰이는 것들은 커리큘럼에 많지 않고 배워도 깊이가 얕다. 소프트웨어 공학, 운영 체제, DB, 정보 보안 등 이론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지 실무에서 많이 쓰이는 React, TypeScript, github 등의 수업이 따로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실무에 도움이 될 만한 외부 활동을 찾던 중, 국비 교육에 대해 알게 되었고 수강했다.
전남권에서 대학교를 다녔다면 혹은 거주했다면 이 포스터를 심심치 않게 보았을 것이다.

2020.07.03 실무에 도움이 될 만한 교육을 찾다 알게 되었고 커리큘럼에 내가 배우고 싶던 Java, 머신러닝/딥러닝이 있어서 수강했었다. 결론 부터 말하면 도움이 됐다. 물론 6개월이라는 시간 대비 비효율적인 결과였지만 순전히 공부 방법을 모르고, 욕심을 덜 부렸던 내 잘못이다.
커리큘럼을 요약하자면 Python, Java, Javascript, HTML, CSS, DB, 정보처리기사 등등 6개월 동안 저게 다 배울 수 있나?라고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것을 배운다. 얕게 많이 배우기 때문에 개발자로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3번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1번은 머신러닝이었기 때문에 제외하고, 2번은 백엔드를 맡아서 했다. 사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여기서 백엔드, 프론트엔드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웃기다. 템플릿을 가져와서 쓴 이유가 가장 컸고, 본인들이 하는 작업이 프론트인지 백인지 구분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나도 무지했기 때문에 Ajax, jQuery를 사용하면서 백엔드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부끄럽지만 이 때 까지는 프론트엔드가 웹 퍼블리셔랑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웹 퍼블리셔 분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프론트, 백을 구분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부끄럽다). 단순히 UI만 짜면 되고 나머지는 백엔드가 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깃허브도 사용하지 않아 USB, 이메일로 작업물 합치고 코드 자체를 카톡으로 보내서 복붙하고 진짜 무식하게 했던 것 같다. 덕분에 깃허브가 없었을 시절을 간접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래서 DB설계 하고, 데이터 넣고, API만들고, jQuery로 연결하고, 지도 API 가져와서 화면에 띄우고 기능 변경하고, 이것저것 많은 걸 했던 경험이었다. 강사님들이 중소기업가면 전부 다 하게 된다는 말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아쉬웠던 것은 욕심부리지 않았고, 컨디션관리를 못한 것이다. 분명 2차 프로젝트까지는 욕심내어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가장 중요하고 긴 기간 동안 진행되는 3차 프로젝트에서 컨디션 관리 실패와 번아웃이 와서 종료 2주 전 부터는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개발자는 나랑 안맞는다고 생각하고 흥미를 잃을 뻔 했었다. 이 때부터 번아웃이 오지 않게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일과 내 삶에 밸런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마인에서 얻은 큰 배움은 팀원과의 화합과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우리 팀은 2, 3차를 3명이 같이했다. 다른 인원도 있었지만 2차 때 셋의 궁합이 잘 맞아서 3차 때도 같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 사회에서는 중요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너무 편해서 서로 반말하고 농담으로 욕도 하며 지냈었는데 그러다 보니 서운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 크게 싸움이 있었다. 심지어 발표 전 날이었다😤.
다툼의 원인은 서로 예민해져 있다 보니 싫은 소리를 자주 했고 나는 그 말이 듣기가 힘들었다. 모두 6개월 간 달려오며 지치고, 힘들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친하기 때문에 뒷담화를 나에게 자주 했는데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팀장이 이끌고 가야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친분을 이용해 뒤에서 말을 하는 것이 탐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팀의 문제를 다른 팀에 가서 이야기하며 우리 팀원들이 들으라는 식의 태도를 자주 보였었다. 이 외에도 다툼의 원인은 많았지만 더 이야기 하지는 않겠다. 서로를 배려해서 조금씩 참고 양보하고 팀의 분열이 아닌 화합을 이끌어 갔다면 웃으며 마무리 했겠지만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개발자로서 소통을 할 때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020814
6개월의 시간 동안 배운 것을 짧게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 새로운 기술을 접하는 것에 대한 이질감이 없어짐.
- 얕게 많이 배워서 하나의 웹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큰 그림을 그리게 됨.
- 소통, 배려, 양보, 화합, 리더쉽
- 컨디션 관리
스마인을 수료하고 개발자로 금방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내가 가졌던 기술 스택은 넓지만 실무에서 바로 일 할 수준의 깊이가 있지 않았다. 면접 질문에서 조금만 deep한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대답하지 못했다. 기억 나는 질문이 ACID에 대해서 설명해달라는 것 이었다. 이 때는 백엔드 공부할 때라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었다. 또한, 서울권의 스타트업에서 사용하는 기술스택에 한참 부족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전남권에서는 합격했지만 서울권은 모두 탈락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붙는 것이 이상한 것 같다. 서류도 워크넷에서 만든 고전적인 템플릿에 기술스택도 맞지 않는 곳에 무작정 지원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전남권에서 낮은 연봉으로 연차를 쌓아 서울로 경력직으로 갈 것인가, 공부를 더 해서 처음부터 연봉을 조금 더 높게 시작할 것인지. 이 때 서울에서 개발자를 하고 있는 지인을 통해 위코드를 알게 되었다. 커리큘럼을 보면서 확실히 스타트업에서 필요한 기술스택을 중점적으로 가르킨다고 생각했다. 또한 짧은 기간이 마음에 들었다. 6개월의 교육을 받았는데 바로 장기간의 교육을 다시 받는 것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짧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위코드를 등록하고 과정을 듣기로 했다. 혼자서 공부를 하기에는 공부 방법도 모르고 백엔드, 프론트엔드를 정해 깊게 공부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판단했었다. 나는 스케줄이 없으면 너무나도 게을러지기 때문에 자신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했다. 학원비와 생활비를 모아서 서울로 떠났다.
2021.02.14 위코드를 수료한 개발자 지인과 함께 서울로 상경하였다. 초반에는 지인의 덕분에 빠르게 서울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사전스터디 기간 동안 지인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월세 한푼 받지 않고 1대1로 스터디를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특히, 리액트생태계에서 꽤 유명한 실력을 가지고 있고 기본기가 튼튼한 사람한테 배우니 많은 꿀팁을 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공간이 작은 감옥 혹은 독방처럼 느껴졌다. 집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닌 잠자는 시간 외에 모니터 앞에서 코딩만 하고 밖을 나가지 않다 보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서 숨쉬기가 힘든 경험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는 나가서 놀기 시작했는데 이 부분에서 지인과 마찰이 생겨 친구와 같이 살게 되었다. (굳이 사적인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후에 이야기 할 내용의 빌드업이다)
나도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보다 2~3배 노력한 형 눈에는 모자랐던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때 안한 것에 대한 고통은 나중에 내가 오롯이 받게 된다. 이래서 무조건적으로 경험자의 말을 따르는 것도 문제지만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정이 시작되고 어느 집단에서도 그렇듯이 어색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금새 다들 친해지고 위코드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다. 그리고 복수전공, 스마인에서 미리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1차 프로젝트 시작 전 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1달의 기간은 HTML, CSS, Javasciprt의 기본 위주였기 때문에 복습한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React를 접하고, 프론트엔드, 백엔드로 나뉘어 협업을 하면서 부터 문제가 생겼다. React도 사전스터디 기간 때 공부를 했지만 당연히 잘 다루지 못했고, 그 놈의 github는 왜이리 충돌나고 내 뜻대로 되는게 없던지..거기에 백엔드, 프론트엔드로 나뉘어 협업을 해본적이 없어서 서로 작업하는 내용도 모르고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이 때 사전스터디 때 형이 시켰던 것들을 다했다면..하고 후회했다. 그래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했지만 내 머리속은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어찌어찌해서 1차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 되었다.(프로젝트 후기는 다른 글에서 정리했으니 간단하게 넘어가겠다) 그리고 문득 서울와서 한강을 한 번도 가지 않아서 머리 식힐 겸 한강가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이 때도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전공자에 국비교육까지 듣고왔는데 동기분들이 일취월장 하는 것을 보며 내가 노력을 안했나 싶은 생각이었다. 한 달 반이라는 기간동안 이 정도의 성장을 할 수 있구나. 나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공부했는데 이뤄낸 것이 없구나. 마음이 조급했다.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현타가왔다. 사실 다 포기하고 모든 관계를 끊고 잠수 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 않나? 이 분들은 다른 직장에서 일을 했던 커리어도 있고, 다른 분야지만 나보다 공부를 더 많이 했다. 심지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승무원을 하셨던 분도 계셨다. 그럼에도 성장 속도가 같거나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가득채웠고 이 때 서울 올라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나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찰 때 쯤 동기분과 같은 지하철을 타고 집을 가게 되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셨다. 평소에 항상 잘 웃으시고 긍정적으로 보이셨던 분이었는데 위태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대화 중 이 말을 듣고 정신머리를 차리게 되었다. 내가 '너무 힘들어 보여요. 집가서 좀 쉬세요'라고 했고, '아니요. 저는 쉴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 한창 부족하고 더 공부해야해요. 저는 쉬면 안됩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솔직히 너무 충격이었다. 스마인에서 번아웃을 겪고 너무 한계까지는 몰아붙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해도 적당히의 선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든 생각이
'이 분들은 매일 매일을 이렇게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혀서 공부를 하니 실력이 수직상승 하는 거구나. 그러면 나는? 손주영 너는? 겁먹어서 적당히 하다가 안했잖아? 그러면서 무슨 실력의 성장을 원하는거야? 너무 이기적인 생각아니야? 성장통이라는 말이 왜 있겠어. 정신차려. 너도 아직 갈아넣으면서 해야 해. 쉬지마.'😈
라는 생각이 들고 오기가 다시 생겼다. 다시 달려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에게는 잔인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내가 서울에 와서 느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나도 열심히 하기 위해 온 것 아닌가? 문득 내가 서울에 오기 전에 다짐했던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4달 안에 취업해서 우리 엄마 걱정 덜어드리자. 4달 동안은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만하자'
그래서 2차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죽기살기로 했다. 위코드, 집, 주말 상관없이 계속 프로젝트만 했던 것 같다. 팀장도 맡았기 때문에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아침부터 도핑(몬스터)하면서 텐션을 올리고 농담도 많이 하고 최대한 팀원들의 작업 내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었다. 팀원도 공교롭게 남자 6명이라 으쌰으쌰도 잘 되었고 약간 군대처럼 하나의 분대같이 움직여서 재미도 있었다. 또한, 팀원들도 나이는 내가 막내지만 다들 잘 따라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결과물도 다른 사람들은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정말 특별하고 만족도가 높은 프로젝트였다.
한 가지 기억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우리 팀은 notion, trello을 둘 다 사용했는데 피드백으로 너무 내용이 없다, 둘 중 하나만 사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을 받았다. 그리고 회의 후 trello로 통일 시키자는 내용으로 협의가 되었고 각자 자리로 가서 내용 정리를 했다. MSG없이 10분만에 정리가 되었다. 군대같다고 자주 느꼈는데 이런 부분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싶었다. 예비군들 조기퇴소 시켜준다는 말에 갑자기 전투력이 올라가는 것처럼 갑자기 전투력이 뿜뿜하더니 순식간에 정리가 끝났다👍. 물론 그 후에도 관리가 잘 되었다. 팀원들 각자는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팀이 정말 좋았다.

2차 프로젝트 후, 마지막 코스인 기업협업을 가게 되었다. 착한 의사 앱을 개발하고 서비스 중인 비바이노베이션으로 가게 되었다. 사실 아르바이트는 수 없이 많이 해봤지만 회사로 출근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대도 됐지만 걱정이 됐었다.
2021.05.17 양재에 있는 비바이노베이션으로 첫 출근을 하였다. 회사 분위기는 내가 상상했던 개발 문화와 굉장히 가까웠다. 복지 또한 유연한 출, 퇴근, 간식, 식사, 그리고 안마의자 등 많은 것 들이 좋았다. 그리고 인턴 기간이 끝날 때 쯤 에어팟을 선물로 받았고, 교통비도 따로 주셨다🤩. 다만, 회사 사정 상 OT와 초기세팅 후에는 인천으로 출근해야 했는데 이 점이 가장 힘들었지만 송도에 도착하면 바닷가와 가깝기도 해서 공기도 좋고 동네가 조용해서 먼 것 빼고 최고였다.

비바이노베이션에서의 시간은 사수분들께 배운 것들이 많은 기간이었다.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배웠지만 사수분들의 태도에 정말 감탄했다. 본인들이 할 일이 분명 많지만 매일 매일 해주시는 PR과 질문에 대해 바로 답변을 못하시더라도 기억하셨다가 꼭 해주셨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정말 크게 다가왔다. 나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일만 하는 것보다 몇 배가 힘들다는 것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와중에 자주 리뷰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신 스티브최고👍
그리고 비개발직군과 협업을 하는 것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유튜브에 개발자와 디자이너 사이의 괴리감 같은 영상들이 많다. 그 만큼 서로 분야가 겹쳐있지만 사용되는 단어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한 가지 예시를 들자면 admin페이지를 개발하는데 디자인에 차트가 있었다. chart.js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데 zeplin 상에는 차트 위에 선이 그어져 있었다. 하지만 라이브러리다 보니 CSS를 내 마음대로 컨트롤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 그리는 방법 찾는 데에 5시간은 쓴 것 같다. 고집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은 이유는 사수분이 하신 말씀 때문이다.
디자인을 바꾸고 다른 작업을 하면 안되냐는 나의 질문에 '디자이너분도 전문가시고 프라이드가 있으신데 그걸 함부로 바꾼 다는 것은 그 프라이드를 무시하게 되는 것이니 최대한 방법을 찾아보고 정말 없으면 그 때, 말해보겠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최대한 방법을 찾아보았고 사수분께서도 같이 방법을 찾았지만 정말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 선은 디자인에서 없어졌지만 서로 존중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개발자끼리의 협업이 아닌 개발자와 비개발자 간의 소통에 대해서 공부했던 좋은 경험이었다.
위코드에 와서 기술적으로 성장한 부분도 있지만 개발자로서 자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떠한 멘토님에게 들었던 말도 있고, 개인적으로 생각한 부분도 있다.
- 개발자로서 항상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자.
- 프로젝트는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팀이 잘하는 것이다.
- 꾸준한 자기계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
- 소통은 두말 할 필요없이 가장 중요하다.
- 팀원이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내가 부족한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발자가 되자.
-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팀원을 옳은 방향으로 가게 해 작업 시간을 단축하는 동료가 되자.
-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후에 그 것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 팀원이 물이라면 나도 물이되고 팀원이 기름이라면 나도 기름이 되자 물과 기름은 섞이지 못하니까.
이 외에도 더 많지만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이다. 처음에 3달에 약 800만원이라는 금액이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여기서 느끼고 배우고 생각과 태도가 바뀐 것은 그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달의 기간 동안 변한 나는 변했고 쉽지 않은 일이 일어났고 투자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아쉬웠던 점은 프로젝트도 중요하지만 내 개인공부에 비중을 더 뒀어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사실 완성도가 50에서 100으로 확 오르진 않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비중을 조금 낮추고 내 개인공부를 통해 개인적인 성장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본다.
여기까지가 내가 개발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지 약 1년이 되는 시점에 이야기이다. 아직 취업이 되어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곧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설레발일 수도 있지만 수 많은 기업 중에서 쉴 새 없이 달려 온 나의 노력들을 인정해주는 곳이 한 곳은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긍정의 힘을 믿고 힘내야겠다는 다짐을 한번 더 한다.
그리고 이 뒤 부터의 이야기는 개발자로서 이야기가 아닌 내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TMI일 수도 있지만 이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겠나 생각하기도 하고 멘토님 중 한 분께서 개발자이기 전에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정리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기왕 길이 길어진 김에 더 써보려고한다.
서울에 올라온 이야기를 하면서 빌드업 했던 것이 이것이다. 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나에 대해 조금 자세히 알게 된 사람들은 다들 같은 말을 한다. '좋은 친구, 지인이 참 많네요'. 인복이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서울을 올라오게 되고 확실하게 느꼈다. 월세 한 푼 받지 않고 서울에서 선뜻 같이 살자고 했던 지인 형,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이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이 있지만 몇 일을 이야기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짧게 이야기한다.
물론 싸운 일도 많다. 특히 위에서 자꾸 언급했던 지인 형과는 친형처럼 느껴지는 가족같은 사람이다. 가끔은 가'족'같은 사이가 되기도 했는데 그래도 항상 내 생각을 해주는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 금방 풀었다. 서울에 올라오고 특히 자주 싸웠는데 내가 노는 것을 좋아하고 형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이유였다. 결국 나를 생각해줬던 것이었는데 서로의 생각이 너무 달라 자꾸 부딪혔던 것 같다. 나도 이를 갈면서 노력했는데 그 만큼의 퍼포먼스가 안나오니 답답해서 더 뭐라고 했다고 생각한다(TMI최근에도 또 싸웠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내가 성공하길 바라면서 자신이 화내고 답답해 할까? 이런 사람도 드물다 정말. 요즘같은 세상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항상 미운데 고맙고 감사하다.
그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내 사람들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고 호의를 베풀거나 호의에 대해 감사해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내 주변은 좋은 사람들로 가득차게 된 것 같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통해 내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고 감사해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위 4가지의 키워드는 내가 즐기는 것들이다. 단어만 보면 동네 양아치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특히 음악을 제외하면 술, 담배, 게임은 보통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고 자주 뜨는 키워드이다. 하지만 나는 술을 마시고(적당히), 게임을 하고, 담배도 남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전자 담배를 피면서 나는 내 스트레스를 관리한다. 운동이나 밖에서 활동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위 4가지는 가장 편하고 빠르게 나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빠르게 해소시켜 주는 나의 최애 키워드들이다. 애초에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어서 병나는 것 보다는 음악을 듣는, 술을 마시든, 담배를 피든, 게임을 해서 해소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웃길 수도 있는 이야기긴 한데 어렸을 적에는 게임하는 시간을 조절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커가면서 나는 게임으로 절제력을 길렀다. 정말이다. 지금은 시간이 붕 뜨거나 여유가 있을 때 한 두판 씩 하면서 내 스트레스를 푼다. 그리고 술도 내 주량을 알아서 어느 순간이 되면 마시지 않는다. 혹은 자버리거나 집으로 도망간다. 문제는 백해무익하다는 담배인데, 요새는 전자 담배도 잘되어 있고 연기 자체도 수증기라 주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주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즐기는 위의 키워드들은 제일 간단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나의 방법이다. 누군가는 왜 건강에 좋지 않는 것들을 많이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맞다, 건강에 그렇게 좋지 않는 것들이니 몇년 뒤에는 위의 키워드들이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이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직설적인 말투를 자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오해를 산 적도 꽤 있긴 했다. 너무 직설적인 말투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친구들한테 혼난 적도 많다. 그래서 노력하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지금도 툭툭 던지는 말투가 나와서 바로 사과를 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게 됐는지 생각해보니 군대에 있을 때 부터 그런 것 같다. 인사병이었는데 다른 간부와 자주 부딪히고 설명해야 할 일이 많은데 두루뭉실하게 말하거나 뱅글뱅글 돌려서 말을 하면 화내는 모습을 자주 봤고, 그에 맞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이런 식의 말투를 자주 사용하다보니 습관이 된 것 같다.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고쳐진 편이다..믿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성격은 굉장히 낙천적이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될 것도 안되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에 따라 부정적으로 대해야 할 때는 그렇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최선의 상황을 생각하고 좋은 상황을 그린다. 또 말이 많다. 이 글도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 쓰다보니 TMI + TMI가 되어서 장문의 글이 되었다. 그래도 말 없는 것보다는 많이 하면서 표현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위코드에 와서 귀에 닳도록 들었던 말이 블로그였다. 항상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려야한다. 꾸준히 올려야 한다. 그 이유는 개발자를 채용할 때 블로그를 참고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생각은 50 대 50이다. 물론 개인적인 기술블로그는 개발자로서 무조건은 아니지만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만 정리하는 것이 아닌 글로 정리하면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채용을 위해서 내 성실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살없는 블로그를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기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위해 알고리즘 문제를 풀고 그 해답인 코드만 띡 하고 올려놓거나, 어디서 Ctrl + C, Ctrl + V하거나 그대로 타이핑을 치는 것은 기술 블로그로써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 블로그를 작성할 때는 아는 것이 없어 여기저기 참고해서 썼지만 어느 순간 '이럴거면 왜 쓰지? 내 공부인데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게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에 소홀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냥 쓰기 싫어서 핑계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내가 느꼈던 것은 이게 맞다. 정말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느껴서 이건 블로그에 정리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쓴 글은 나중에 다시 봐도 만족스럽지만 반대로 의무적으로, 주기적으로 올려야해서 반 강제적으로 올렸던 내용들은 글에서 부터 벌써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쓰는 느낌이 팍 난다😫.
최근에 한 세션에서 블로그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었는데, 너무 블로그를 자주 써도 일은 안하고 블로그만 쓰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 물론 나처럼 너무 자주 안쓰면 얘는 공부안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술블로그는 자신이 정말 배우고 남들도 알았으면 하는 내용에 대해 적거나, 깊게 공부한 내용들을 요약하거나 본인이 이해한 것에 대해 공유하는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덧붙혀서 사실 블로그를 자주 올렸든 올리지 않았든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면 면접에서 다 들통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자신이 공부했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한 기술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취업 목적만을 위해 포스팅하는 블로그는 반대한다.
우리는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개발자이지 전문적으로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가 아니니까.
사실 요양하러 광주에 왔는데 심적으로 불편하게 있었는지 몸이 더 안 좋아졌다. 아마도 취업이 아직 안됐고, 내 마음은 급하고, 서류는 탈락..그만...머...멈춰...!!🖐🖐

그런데 이렇게 내가 1년 동안 달려왔던 과정을 정리해보니 열심히 살았구나싶다. 그리고 속이 시원하다. 친구들과는 구두로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글로 정리해놓고 언제든지 와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아직 내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는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미래는 창창하다고 믿는다. 시작부터 너무 위축되지 말고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긍정의 아이콘손주영이 되야겠다. 물론 자기계발은 지금보다 2배 3배 더해야겠다!!
크으...열정맨 보기 좋아요 👏🏻 👏🏻 👏🏻 👏🏻 👏🏻 👏🏻 👏🏻 👏🏻 👏🏻 👏🏻 👏🏻 또 많이 배우고 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