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분명 얼른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고 싶었고 성숙해지고 싶었는데 문득 2023년이 되고 나니 내년에는 벌써 서른이라는 나이에 깜짝 놀라고 기분이 뒤숭숭해졌다.
매년 새해의 연도를 일기장에 쓰는 것이 설렘이고 즐거움이었는데 삶의 무게에 짓눌려 무뎌졌는지 자연스럽게 산술적으로 한 해를 더해 끄적인 이후로 살아온 여정이 짧지는 않았구나 하며 내 삶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게 됐다. 머릿속으로 유년 시절까지 되돌아봤지만, 그때의 특별함은 내 마음속에 간직해두고 워킹홀리데이 이후로부터 내 삶을 글로 기록해보려 한다.
나는 25살 때 큰누나의 권유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로 떠났다. 반 50살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독특한 특별함과 첫 해외여행의 설렘이 25살 청춘에 적절한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호주에는 호주 사람 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개체 수가 더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가기 전에 계획한 것들을 모두 해보기 위해 겁도 없이 도전, 도전 또 도전이 일상이었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도 해보고, 셰어하우스에서 살아보고 그 외에도 한국에서는 느끼기 쉽지 않은 경험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다양함을 즐기고 도전에 끊임없던 일상을 보내다가 문득, 한국에 다시 돌아가면 뭘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호주에 평생 살고 싶을 정도로 너무 행복한 나날이었지만, 문득 떠오른 고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일주일 동안 사색에 빠졌다.
당시 매형이 안정적인 공기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취업하고 나니 더 멋있어진 모습에 나도 저렇게 취업해서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바로 귀국을 마음먹고 곧장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서 매형과 이야기도 나누고 순조롭게 진행되나 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공부가 너무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금 사색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았다. 이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한 직군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대구시에서 진행하는 직업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양한 직군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배우 역할을 통해 연기도 해보고, 상담사가 되어보기도, 공방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당시에 실제로 종사하고 계시던 현직자분께서 직업에 대해 설명도 해주시면서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직업을 탐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분과 우연히 눈인사를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정말 특별한 계기인데, 정말 초면이던 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원래 미리 선착순으로 신청해야 했는데 갑자기 한 분이 취소하게 됐다고 IT 회사 채용 설명회를 하는데 참여할 건지 의사를 여쭤보셨다. 나는 곧장 알겠다고 했고, 이때 처음으로 개발자라는 직업을 알게 됐는데 설명회를 듣고 나서 바로 ‘이거다 !’하고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이 지루할 틈이 없이 재밌을 것 같았고, 머릿속의 생각을 프로그래밍한다는 것과 창의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 전문적이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이에 걸맞은 독특한 사내 문화와 복지가 내 선택에 대한 근거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곧장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면서도 즐거움이 있었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한 것으로 사람들이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꿈이 생긴 것이 민망한 웃음을 짓게 하면서 내 삶의 동력이 되어주었다.
취업할 때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8곳에 최종 합격을 하고 가장 원하는 곳에 선택해서 갈 수 있게 되었다. 공부했던 부트캠프에서 가장 취업이 잘 됐다고 인정해줘서 유튜브 광고도 찍게 되었다.
글쓴이의 강점테스트 결과
취업을 서울에 하게 되었는데, 1.5평 고시텔 → 5평 원룸 → 지금은 10평 LH 전세로 1년 사이에 나에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고시텔에서 추워서 패딩을 껴입고 자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추억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인사가 나를 개발자로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하며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집 평수가 넓어진 것처럼 팀의 규모도 꽤 늘어났다. 이제부터는 팀이 늘어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위의 글에서 개발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취업할 때까지를 되게 짧게 축약해서 적었지만, 많은 노력과 고난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세상에서 본인이 제일 힘든 사람이 아니겠나.
사람을 쉽게 판단했다.
평소에 나의 태도를 돌이켜 보면, 겉으로 사람을 쉽게 판단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보면 늦게까지 남아서라도 도와주고 가고, 어르신이 힘들게 무언가를 옮기고 있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드리고, 최근에는 에스컬레이터에서 할아버지가 뒤로 쓰러지셔서 순간적으로 바로 달려 나가 도와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동안 그 사람을 보면 나를 기준으로 더 나은 사람인지 못한 사람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사람을 보면 나름의 기준치를 정하고 그에 미흡하면 도와주려는 마음도 들지만, 최소한의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쉽게 그 사람을 깎아내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새로 들어오신 신입께 말이다..!
‘아무리 신입이라지만 이 정도도 모르고 온다고?’ 하면서…
여태 내가 노력해서 들어온 회사에 내가 정한 기준치에 충족하지 못하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더 노력해서 들어왔지만 같은 연봉을 받아서 억울한 기분…
나는 빌런일까..?
회고를 하면서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봤다.
당시에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개발 공부를 했고, 어느 공부를 할 때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부트캠프에서 취업 잘했다고 인정을 해줘서 자존감도 매우 높아지고 주변에서 해준 응원에 부응한 기분이 들어 한껏 들떠있는 데다가 유튜브 광고까지 찍고 조회수가 100만이 넘어가니 유치하지만 신이 났었나보다…
그동안 맛보지 못한 희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잘못된 태도를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이 시의 한 구절처럼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하다 보니 그 사람의 장점을 알게 되고, 되려 내가 더 부족한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우리 회사 도메인에 해당하는 분야의 전공자셨다. 내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과 더 다양한 연관관계에 대해 고려하시는 모습을 보고 존경스러움이 치밀어 오면서, 여태 내가 했던 태도에 부끄러움이 몇만 배로 치밀어 다가왔다.
다른 부분에 더 강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느리지만 전체적으로 더 넓게 보았던 것이고,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마다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강점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처음에는 단점으로 보일지라도 그 사람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팀이 아닐까 싶다.
동료를 경쟁 상대가 아닌, 배울 부분을 찾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신입을 평가한다면, 신입께서는 악당(나)을 아주 멋지게 처리한 ‘사이다’ 같은 역할을 한 역할로 각광받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되게 부끄러운 태도를 지녔다. 함부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됐다.
함께 자라기라는 책에서 강조하는 ‘커뮤니케이션’
이 책을 읽고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상대방의 생각 흐름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주로 나의 관점대로 생각하고, 판단했지만 이 기회를 통해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를 더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나와 생각이 다를 때는 커피 한 잔 사서 다가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며 상대방을 알아가려고 노력한다. 보통 PR 코멘트나 회의 때 의견을 하나로 합치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신기하게도 노력이 빛을 내고 있다.
상대방에게 신뢰가 떨어졌거나,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든 우선 부정적으로 사고가 흘러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평소에 친분도 두텁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상태라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좋을 것이며, 같이 일을 해도 웃으면서 일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각 잡고 깊은 대화를 하는 것도 좋지만, 평소에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았을 때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최근 개발팀 회고하는 날에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팀원이 회고 전날 타코야끼를 드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식의 흐름에서인지 리멤버의 타코 문화가 거론됐다. 팀 내에 적용되진 않았지만, 회고 때마다 서로 칭찬해주는 문화가 생겼다. 그 덕분인지 더 돈독해져 이후로 슬랙방의 소통이 더 활발해졌다.
가볍게 시작된 대화가 취업 준비 시절 우연히 눈이 마주친 인사만큼의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힘든 일이 있으면 위로해줄 수 있는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같이 즐거워해 줄 수 있는
떠들고 싶으면 같이 떠들어 줄 수 있는
언제든지 편하게 대화해줄 수 있는
대화가 즐거운 개발자가 되고 싶다.
긴 글이지만 술술 읽었어요 ! 필력 부럽습니당.. 앞으로도 성장할 Dale님을 응원합니다!(•̀ᴗ•́)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