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달라져야 했는가

우주·2022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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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꼴등의 회고

초등학교, 영재가 아니었던 수학 영재

"공부 잘하게 생겼네~"
처음보는 어른들을 만날때마다 들은 말이다.

학교 성적은 평균 90점 정도였다.
그 중에서 수학 성적이 제일 좋았다.

그걸 보고, 부모님은 내가 영재고 수학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셨다.
갖은 칭찬을 해주시고 수학 영재 학원을 보내주셨다.

자신감이 생겨 공부를 열심히하고, 학교 수학 경시대회 1등도 받았다.
그래서 난 내가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주변 친구들은 밥먹듯이 시험에서 올 100을 받았고, 난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될 수 없었다.
내가 도저히 못 풀겠어서 포기했던 문제를 영재학원 친구들은 간단하게 해결했다.

아니야.
그래도 난 공부를 잘해.
나도 잘할 수 있어.

이 악물고 오기로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 최선을 다한 전력질주는
그들의 여유로운 걸음걸이 앞에서 무너질 뿐이었다.

계속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내 모든 삶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반복되는 실패에 나는 지쳤고
마침내 저항을 포기하고 인정했다.

나는 공부에 재능이 없구나

겨우 10살도 안된 어린 나이였다.

중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다

중학교 때부터 점차 성적이 내려가며 공부에 더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시험이 당장 내일인데도 책을 펴는 것이 죽어라 싫었고, 마침 주변에는 수많은 도피처가 있었다.

처음엔 시험을 망치고 집에 돌아오는게 정말 속상했다.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풀었는데 공부를 하지 않고 치른 시험 결과가 좋을 수가 없었다.

"하루만 더 공부할 걸... 그때 놀지 말걸..."

온종일 후회에만 깊게 빠져지내지만 자책만 하다가 다음 날 시험도 대비하지 못한채 치르곤 했다.

고등학교, 포기하는 법을 배우다

고등학교를 올라간 뒤에 배운 것은 "포기"였다.
공부하지도 않고 시험 성적 때문에 자책하기를 수 차례 거치다 보니...
마음이 너무 지쳤다.

시험이 당장 내일이네...
공부 하긴 해야하는데 진짜 너무 하기 싫어.
어쩌피 안 할건데 굳이 마음 불편하게 놀아야해?
그냥 놀아야지.

어쩌피 시험 망했는데 대충 보고 자야겠다.
괜히 문제 열심히 풀어봐야 결과는 뻔해.
그리고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 안 좋다고 나중에 속상해할거야.
그런거 생각하지말고 집가서 게임이나 하자.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다.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죄인이 된 것 같아서 누군가를 마주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지말걸...'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하지만
포기하고 나니 너무 편했다.

항상 "공부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에 짓눌려 있었다.
그래서 사는 것이 너무 괴로웠는데,
처음으로 그 굴레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기대를 한껏 받던 수학 영재는
어느새 전교 꼴등 성적표를 받으며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고싶지 않던 수능

수능 성적은 가관이었다.
나름 직전에 노력했으나 시험 범위를 다 공부하지도 못한 채 수능을 치뤘다.

부모님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시고는 시험장까지 직접 데려다주셨다.
부담스러웠다.
이렇게까지 신경써줄 필요없는데...

시험장에 들어갔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중요한 순간이지만,
나한테는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여니,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아들 힘내! 너무 긴장하지 말고 화이팅!"

마음이 착잡했다.
그렇게 응원해주셔도...
어쩌피 못 볼거란 말이에요.....

마음가짐의 변화로 시험을 더 잘 보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괴로웠다.
평소처럼 대충 시험보고 집가서 놀면서 죄책감을 외면하기에는
너무 큰 시험이었다.

수능 그 이후

대학을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냥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내가 뭐 해먹고 살아갈지, 그런걸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 중압감에서 해방된게 행복했다.

더 이상 수능을 볼 필요도, 학교를 갈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는 한심해보일 수 있을 것이다.
배부른 이야기로도 들릴 것이다.

하지만 19년 동안 도망만 다니던 그 어린 인생이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어졌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처음으로 살아있는게 행복했다.

하고싶은 걸 마음껏 했다.
요리를 하고, 베이킹에 도전했다.
그땐, 그냥 그러는게 좋았다.

대학 입학 후 변화

대학에 입학하는 심정

성적에 맞춰 대충 포천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을 고를 때 신중하진 않았다.
대학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중학교처럼, 고등학교처럼 가야하니까 갔을 뿐이다.

첫 학기를 마치며

성적을 확인하고 눈을 의심했다.

3.0 / 4.5

누가봐도 높은 점수는 아니다.
하지만 평균 점수.
즉, 나보다 낮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전처럼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위권의 성적.
기뻤다.

왜 중위권을 받고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될 것이다.
그리고 바보같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모든 도전에서 패배했던 인생에게
처음 맞이하는 패배 외의 결과는 너무나도 신선했다.

같은 행동, 다른 평가

대학에 들어가서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했다.
공부는 시험 전날이 아니면 죽어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늦게 일어나서 시험을 안 본 과목도 있다.

하지만 내 평가는 이전과 정반대였다.

나보다 노력 안하는 친구가 태반이었고, 성실하고 싶어하는 친구는 몇 없었다.
그랬기에 교수님은 날 좋게보셨다.
'성실하다', '열심히 한다'라는 이야기를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경험이 너무나도 새로웠기에 마음이 뭉클했다.
"여기서라면 나도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인정은 인정이고 애초에 난 딱히 다르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20년간 노력없이 회피하던 삶이 말 몇마디로 달라질리는 없었다.

군 전역, 그 이후

2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신청했다.
해군으로 입대했으나, 해병부대로 발령받아 2년간 해병대로 생활했다.
군대에서의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다루려고 한다.

그 힘든 군 생활을 버티고, 다시 사회에 나오기까지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겨냈고, 나는 전역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인정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다.

복학까지 6개월이 넘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먹고 싶은 것을 다 먹고, 놀고 싶은 만큼 다 놀았다.

그러고 나니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해병대에서 만기전역한 사람이었고, 내가 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인생 첫 도전

...누가 뭐래도 나는 해병대에서 만기전역한 사람이었고, 내가 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건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온라인 코딩 강의를 구매하여 도전해봤는데, 난이도가 확 올라가자마자 포기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집중이었다.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의자에 앉아있는게 고통스러웠다.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게 힘들었다.
머리 속에 지식을 넣는 것이 괴로웠다.

공부에 전념하려고 온갖 방법을 써봤다.
환경을 바꿔보고자 독서실을 다니고, 인근 카페를 모조리 돌아다녔다.
습관을 만들어보고자 공부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이 되면 항상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도 헛수고였다.

놀고 싶어서 그런가?
별로 절박하지 않았나?

그런 마음가짐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 절실하게 이 강의를 마치고 뭔가 이뤄내고 싶은데.
공부를 시작하는 순간, 온몸이 뒤틀리고 뇌가 짓이기는 듯한 통증에 구토감이 몰려온다.
점점 눈앞이 회색으로 변해가며 현기증에 온몸이 마비되는 듯 감각이 사라진다.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 시간 동안 억지로 강의를 듣고 난 뒤, 거울을 보면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눈은 흰 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빨간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몸은 그만하라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시위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군대 이후 첫 도전을 좌절시킨게 나라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고 황당했다.

어째서 내 몸이 공부를 이토록 병적으로 거절했는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그저 무식하게 앉아서 이런 간단한 것도 못하는 나를 원망할 뿐이었다.

그렇게,
결국 나는 그 강의를 완주하는데 실패했다.

복학, 그리고 인생 첫 성공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온 이후로 정신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더라.
그래서 1등을 하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해병대에서 만기전역한 사람이었고, 내가 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작은 학교에서, 작은 학과에서도 1등하지 못하면 이 근거 없는 자신감조차 사그라질 것 같았다.
내 기억에 여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 1등을 못하면... 대체 내가 어디가서 뭘 하겠는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1등을 해야했다.

교수님들에게 자주 질문하고, 상담을 여러 번 부탁드리며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어필했다.
내가 공부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못 하겠어도 그정도는 할 수 있었다.

열심히 하는 척.
군대에서 맨날 하던 거라서...

대충 사진으로 실습 결과를 인증하는 과제도 보고서, PPT로 정리해서 제출하고,
시험지에는 객관식이더라도 내가 공부한 내용을 전부 적어냈다.

나는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열정있는 학생이다.

이 두 가지를 교수님께 어필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한 학기가 끝나고, 그 결과를 확인했다.

4.4 / 4.5

학과 1등
성적 우수장학생 선발

마침내,
전교 꼴등은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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