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고도 이틀이나 지났다. 누구나 힘든 한 해 였지만 나에게는 조금 남다른 한 해 였던 것 같다. 나는 인생을 그렇게 열심히 살아본 적이 없었다. 학창시절 게임하기 바빴고 대학교 생활도 그냥저냥 흘러갔고 학점도 별로였다. 그나마 군대에서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잠시 제대하고 뭘 할지 모른 채 20대 후반을 방황으로 보냈다.
그러다 펜데믹이 터지고 우연찮게 미국 어학연수가 1/3가격으로 책정된것을 보고 미국 어학연수를 가게 된다. 노는 것 하나만큼은 제일 자신있어하는 만큼 외국인 친구도 굉장히 많이 사귀었고 덕분에 영어실력이 눈에띄게 상승하였다. 대충 살던 인생에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스킬이 생기자 이것저것 다 하고싶은 욕망이란것이 생겼다. 그 떄 외국인 친구들이 노트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자기들은 업무를 세계 어느곳에서나 노트북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했고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었다.
또, 펜데믹 여파로 인해 개발자들 수요가 엄청나게 올라갔고 그에따라 부트캠프 및 국비 학원들이 고액연봉 보장이라는 광고를 때리니 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터넷 강의들을 들으며 독학으로 시작했고 귀국후에는 본격적으로 학원도 다니기 시작했다.
첫 번째 학원을 수료할때쯤 개발자 수요가 점점 줄어든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첫 번째 학원에서 배운것으로는 택도 없었기에 (3개월 과정) 더 실력을 쌓기 위해 부트캠프를 하나 더 다녔다.
입학을 하자마자 뉴스에서는 애플, 메타, 넷플릭스 등 해외 빅테크 기업에서 대량해고가 시작되었고 네이버, 카카오도 공채를 안 연다는 뉴스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는 사실 체감이 되지 않았기에 공부에만 치중했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나름 동급생들에서 우수한 편에 속했기 때문에 나 정도면 취업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부트캠프를 수료하고 매주 5개의 이력서를 인증을 해야했기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물론 이력서를 매우 열심히 쓰지는 않았다. 팀 프로젝트를 하나 추가로 하면서 그 쪽에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도 있고, 대기업 인턴들은 자신들의 템플릿이 있기에 거기에 맞춰서 쓰느라 본 이력서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약 30군데에 이력서를 광탈하면서 실망감이 들었다. 솔직히 엄청 공들여 쓰지 않더래도 한군데는 붙을줄 알았다. 한군데는 붙어서 면접 경험이라도 쌓으려고 했는데 면접 경험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내 프로젝트에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런 점을 몰라봐주는게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더군다나 엄청 공들여 쓴 대기업 인턴들도 마구마구 떨어지니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심각성을 깨닫고 이력서를 고치기 시작했다. 부트캠프에서 해주는 첨삭도 받고 여러가지 강의들을 보면서 고쳐보았다. 이력서 60개도 모두 광탈했다. 조금씩 실망이 절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에 이력서는 열심히 안했다는 핑계라도 있지 열심히 고친 이력서도 광탈이라는 게 더 자존감을 깎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깎인 자존감은 자책으로 바뀌었다. 내가 더 열심히 했어야 해, 더 잘했어야 해, 저 사람들보다 기술이 부족해 등등 내 스스로 부족한것을 알기에 마음이 슬퍼졌다. 부트캠프에서 잘한다고 까불어봤자 인생은 실전이었다.
그렇게 20개정도 더 광탈하니 우울증이라고 하기에는 과하지만 확실히 우울한 감정이 내 인생중에 가장 강하게 찾아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자책을 하면서 더 깊어져갔다. 인생 처음으로 열심히 해봤는데 결과물이 안나오니 너무나 답답하고 지쳐만 갔다. 지친 마음은 공부와 프로젝트를 하기 싫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쉬기에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더 광탈했다. 그리고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괴로워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취업한파 소식과 해고당하는 소식, 우주끝까지 뚫어버린 경쟁률... 안 좋은 소식만 접하다 보니 어느새 취업 플랫폼에서 다른 직업들을 검색하고 그 조건에 '이 정도면 괜찮은데?' 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너무 마음이 힘들어 혼자 맥주 한 잔 하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괴로우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다.
개발공부를 시작하게 된것은 단지 높은 연봉, 공간의 자유로움의 메리트를 느껴 시작했지만, 공부하면서 남들에게 받는 인정과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은 처음 느껴본 감정들이었고 그런것들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미있었다. 그간 하기 싫었던 감정들은 광탈하면서 떨어진 자존감 때문이었던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감정들을 극복해보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로 주변사람들에게 내 감정의 상황을 알렸다. 그런데 주위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숨긴다고 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내가 많이 우울해 보였나보다. 사실을 알리고 나니 그래도 내 편이 있다라는 감정이 들어 힘이 났다.
두 번째로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든 원인은 이력서 광탈이기 때문에 어디 한군데라도 서류합격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따라서, 금액을 지불하고 이력서를 첨삭 받았다. 부트캠프에서 받은 첨삭과는 달리 전문적으로 봐주기 때문인지 문제점을 콕 찝어주었고 잘 쓴 이력서를 보면서 다시 작성해보았다. 지금까지 두 번 첨삭을 받으며 내가봐도 많이 나아진게 보여 자신감이 많이 회복되었다.
세 번째로 이럴 때 멘탈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찾아보았다. 필자는 유튜브로 정보를 찾아보는 편이라 우울증 극복같은 키워드로 많이 찾아보았다. 그렇게 알고리즘이 바뀌었는지 위로하는 컨텐츠들이 메인에 등장했고 그 중 한 영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잘나가던 스케이트 선수가 슬럼프로 계속해서 부진하다가 마지막 올림픽 1,0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기자들이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나에게 1,000M는 무너뜨릴 수 없는 적이었다. 쓰러트리는 게 불가능한 존재를 어떻게든 굴복시키려다가 나만 번번이 넘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과 행동 방식을 바꿨다.
이길 수 없는 적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하는 것
이었다.
나는 이 불황에서의 취업은 내가 이길 수 없는 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쓰러트리는 게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나는 그냥 이 과정을 사랑하기로 했다. 사랑하기로 결정하니 그 동안 내가 왜 이렇게 이 일을 하려고 했는지 상기가 되고 마음이 벅차올랐다.
연인과 사랑을 할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느 연인이나 평생 사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때론 서운하고 미울 때도 있는 법이다. 취업과 공부과정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잠시 미워했던 기간인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사랑해보려고 한다.
해당 유튜브: https://youtu.be/2fX8G78GukM?si=QtGybYVpAsTwuyTc
개발자 수요가 즐고 공급은 한 없이 늘어나는 중이다. 상황만보면 다른 일 해야하는게 현명해보인다. 개발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부하면서 꼭 한 번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내가 배운것을 못 써먹으면은 억울해 돌아가시겠다. 취업한다고 탄탄대로는 아니지만, 취업 후에도 이런 시련과 고통이 온다한들 그 과정마저 사랑해버림으로써 이겨낼 것이다.